‘언발에 오줌누기’...건설업계, '생활SOC'에 ‘시큰둥’

기사등록 2018/08/07 16:00:19 최종수정 2018/08/07 16:23:12

대한건설협회 "도로, 수도 등 토목이 생활 밀착형"

【서울=뉴시스】이영환 기자 = 서울과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경보가 이어지고 있는 3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에서 시민들이 책을 읽으며 더위를 피하고 있다. 2018.07.31.  20hwan@newsis.com
【서울=뉴시스】박영환 김가윤 기자 =  주요 건설사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청와대 회의에서 언급한 생활 SOC투자 확대 방안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도서관이나, 체육시설 등은 교량이나 항만 등 대형 인프라를 대체하기에는 그 규모가 턱없이 작아 식어가는 건설경기 회복의 불씨를 당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다만, 문 대통령의 '건설투자' 관련 발언이 지극히 '이례적'이라는 점에서 올들어 '일자리 쇼크' 등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현 정부 정책 선회의 신호탄으로 작용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내놓았다.  건설업계를 이른바 '토건족'에 빗대 비판해온 시민사회 단체 출신의 부동산 정책 실세들이 현실을 인정하고 업계와 접점을 찾고 있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7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전날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생활SOC투자를 과감하게 확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생활 SOC를 통해 국민 삶의 질 향상과 함께 지역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고 일자리도 늘리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생활SOC가  균형발전, 일자리 창출, 살의 질 등 3마리 토끼를 잡는 '묘약'이라는 뜻이다.

 생활 SOC는 ▲도서관 ▲체육시설 ▲교육시설 ▲문화시설 등을 두루 일컫는 용어다. 이용자들이 평소에 손쉽게 방문해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는 등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지역 밀착형 시설을 지칭한다. 명절이나 여행 때나 간혹 이용하는 공항이나 교량, 철도, 역사, 항만을 비롯한 대형 SOC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문 대통령은 이러한 생활SOC에 대해 “과거 방식의 토목 SOC와 달리, 토목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투자”라고 규정했다. 생활SOC는 그 온기가 사람들에게 골고루 퍼지는 미래지향적 투자라는 것이다.  이용객도 별로 없는 지방에 공항을 새로 지어 지역민들에게 생색을 내거나, 특정 건설사의 배를 불리는 방식의  대형 토목공사를 향한 불신을 엿볼 수 있는 발언이다.

 하지만 주요 건설사들은 문 대통령의 생활SOC 투자 발언에 대해 대체적으로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올 들어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건설투자’가 정부 규제의 여파로 뚜렷이 둔화되고 있지만, 문 대통령의 현실 인식은  업계의 위기 의식과 동떨어진 게 아니냐는 것이다. 지난 2분기 건설투자는 전분기 보다 무려 5.6% 감소했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제안한 생활SOC 투자에 대해  “대형 건설사가 뛰어들 사업은 아니다. 도서관은 커봤자 100억원 규모”라고 아쉬움을 피력했다. 생활SOC 투자가 확대돼도 그 수혜는 중소 건설사들이 입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올들어 주택경기 하강, 해외수주 부진 등 이중고에 시달리는 대형사들의 살림살이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하소연이다.

 이 관계자는 특히 생활 SOC투자 이행 가능성에도 불신을 피력했다. 그는 “SOC투자는 (정부가) 한다고 해놓고도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 뒤 "(정부가 이번에는) 제대로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사직전인 중소 건설사들이 그 수혜를 입으면, 건설경기가 좋아지고, 더 나아가 대형사들도 '정책선회를' 향한 기대를 걸수 있지만, 그 가능성이 커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하여 발언을 하고 있다. 2018.08.06.pak7130@newsis.com
또 다른 대형사 관계자도  “(생활SOC가) 건설경기의 불씨를 되살리지는 못할 것”이라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는 발언”이라면서 “SOC예산이 줄어서 건설경기가 안 좋아지고 있다. 어제 발언이 건설경기의 불씨를 살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낙수효과가 큰 대형건설사를 대상으로 예산을 늘려야지  군소업체들에 찔끔 배정하는게 무슨 효과가 있냐는 반문이다.

 건설업계의 이러한 불만은 생활SOC확대가 결국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판단을 반영한다. 건설경기가 빠르게 식어가는 주된 원인이 ▲정부의 주택시장 규제 ▲SOC예산 감소에 있는데도, 규제 완화나 SOC예산 대폭 증액 등 정곡을 찌르지 못한 채 변죽만 울리고 있다는 것이다.  SOC예산은 지난 2009년만 해도 25조5000억원으로 정부예산의 8.4%에 달했다. 하지만 ▲2010년 25조1000억원(8.6%)▲2011년 24조4000억원(7.9%) ▲2012년 23조1000억원(7.1%)▲2013년 25조(7.2%) ▲2014년 23조7000억원(6.7%) ▲2015년 26조1000억원(6.8%)▲2016년 23조7000억원(5.9%)▲2017년 22조1000억원(5.5%) ▲2018년 19조(4.4%)다.

 건설 업계는 다만 문 대통령의 SOC관련 발언이 '이례적'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것 (생활SOC)은 우리가 수주할 게 아니다. 소규모 건설사에나 해당된다"면서도 "오랜만에 문 대통령이 SOC 관련 발언을 한 만큼 건설사에서는 최대한 불씨를 살려보고자 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귀띔했다. 생활SOC투자 확대를 발판삼아 더 큰 것을 얻어보자는 뜻이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도로, 수도, 하수처리장 등 토목이 사실상 생활 밀착형"이라며 "도서관 이용자보다 도로 이용자가 더 많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생활밀착형 SOC범위를 넓게 잡아야 한다"면서 " 문 대통령이 그동안 SOC 관련 내용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며 "이걸 발판 삼아 SOC에 대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꾸고 20조수준의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협회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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