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리용호, 지난해 3분 대화…당국자 "추진" 공식화
강경화 외교장관은 내달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오는 31일 출국한다.
강 장관은 내달 1~2일 약 15개국 외교장관과 양자회담을 가진 다음, 3~4일에는 한-아세안 외교장관회의, 한-메콩강 외교장관회의, 아세안+3(한·중·일) 외교장관회의,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의, ARF 외교장관회의 등 총 5개 회의에 참석할 계획이다.
공식 일정 중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ARF다. ARF는 북한이 참여하는 유일한 지역 다자안보협의체다. 북한은 매년 ARF에 외무상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을 파견해 자신들의 안보·자위권에 대해 발언해왔다. 지난해까지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자신들에 대한 미국의 적대시 정책에 대한 부당함을 주장해왔다.
이러한 관계로 ARF 참석을 계기로 한 남북 간 외교장관회담은 지난 2007년 당시 송민순 외교장관과 박의춘 외무상 간의 외교장관회담을 끝으로 개최되지 않았다.
강 장관은 지난해 취임 후 첫 ARF 참석을 계기로 북한 리용호 외무상과의 회동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의장국 주최 환영만찬 대기실에서 3분가량 짧은 대화를 나눈 것이 전부였다. 당시 강 장관이 정부의 베를린 구상을 언급하며 호응을 촉구하자 리 외무상은 '한미 대북압박 공조'를 언급하며 진정성이 결여됐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올해는 남북 외교장관회담을 개최하겠다는 방침이지만 구체적인 일정은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외교부 당국자는 추진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게 밝혔다.
전례에 비춰볼 때 북한 대표단은 리 외무상을 단장으로 ARF 외교장관회담 개최 전날인 내달 3일께 싱가포르에 입국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당국자는 "일정에 따라 3일 또는 4일 다자회의 기간에도 양자회담이 개최될 수 있을 것"이라며 남북 외교장관회담 개최 의지에 무게를 실었다. 상황에 따라 심야 회담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남북 외교장관 간 양자회담이 성사될 경우 한국전쟁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과 북한의 미사일 엔진시험장 해체 추진 등 4·27 판문점선언과 6·12 센토사합의 후속 이행 상황을 공유하고, 나아가 핵심 의제인 연내 종전선언 관련 상호 의견을 교환하게 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북미 외교장관 간 회동 가능성도 주목된다. 리 외무상은 지난해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 등 핵심 우방국하고만 접촉했다. 올해도 5~6개 정도 국가하고만 양자회담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자회담 추진 대상국에 미국이 포함됐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미 센토사합의 후속 이행을 위한 고위급회담을 총괄하고 있는 만큼 이번 ARF 외교장관회의를 계기로 만나 후속 협의를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 유해송환 등에 대한 입장 표명이 예상된다. 폼페이오 장관의 카운터파트가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지만 리 외무상과의 회담도 격(格)에서는 문제 될 게 없다는 관측이다.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회동 가능성은 크지는 않지만 배제할 수는 없다는 관측이다. 이 당국자는 "(남북미중) 4자 간 뭐를 추진하고 있지는 않다"며 무게를 두지는 않았지만, 오는 9월 유엔총회를 계기로 한 종전선언 추진 가능성이 제기되는 데다가 북한이 종전선언에 적극적인 만큼 어떤 형태로든 만남이 성사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다.
jikime@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