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보호나 시장 육성 위한 법적 틀 없어…정의조차 미흡
협회 자율규제 역부족,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 5개는 계류중
【서울=뉴시스】천민아 기자 = 지난해 9월1일 금융위원회·법무부·방송통신위원회 등은 '가상통화 관계기관 합동 TF(가상통화TF)' 회의를 열었다. 곧바로 가상통화 첫 규제가 나왔다. 당시 비트코인은 한 달만에 60%가 폭등해 4500달러를 돌파하는 등 가상통화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뜨거웠다.
가상통화TF는 가상통화를 악용한 불법거래나 가상통화 투자를 빙자한 유사수신다단계 등 사기범죄로 소비자 피해가 우려된다면서 건전한 거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법 제도를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가상통화 거래 행위에 대해서도 법적 테두리 안에서 규율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금융위, 국무조정실 등 정부부처는 ▲거래실명제 전환 ▲금융기관의 가상통화 투자 금지 ▲미성년자와 외국인 거래 금지 방안 등 가상화폐에 대한 규제 방안을 발표했다. '거래소 폐쇄를 고려하고 있다'는 폭탄선언까지 나오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발표들이 시장을 뒤흔들어놨을 뿐 투자자 보호나 시장 육성을 위한 제대로 된 법적 틀은 제공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가상통화에 대한 명칭이나 정의가 명확히 정해지지 않은 점이다. 현재 정부는 '가상화폐', '가상통화', '암호화폐' 등 시장에서 부르는 여러 명칭을 '가상통화'로 통일해서 부르고 있다. 하지만 법적·학술적 자료에 근거한 것이라기보다는 '화폐'로서 인정하지 않기 위한 성격의 명칭에 가깝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초 국회 업무보고에서 "정부는 법정화폐로 인정하지 않기 위해 가상통화라는 용어를 쓴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상통화 거래 시장은 해킹, 개인정보 유출 등의 문제에 노출돼있다. 비교적 강력하게 보안을 지킨다고 알려진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조차 지난 6월 회원 개인정보 6만건을 유출당했다. 지난 달에는 350억원 규모의 코인을 도난당하기도 했다. 최근 약 1년간 거래소 해킹 피해액만 1000억원에 달한다.
가상통화TF는 지난해 12월 TF 주무부처를 금융위에서 법무부로 이관한 뒤 단 한 차례도 규제안 등을 발표하지 않았다.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셈이다.
한국블록체인협회 등 업계는 자구책을 내놓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블록체인협회는 11일 보안성 심사 등을 포함한 1차 자율규제심사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세부적인 보안 편차를 공개하지 않아 실효성에 논란이 있었다. 또한 최근 해킹을 당했던 거래소를 포함해 심사에 임한 12곳 거래소 모두 평가를 통과했다.
협회 차원에서 가상화폐 보험 개발을 논의하려는 움직임도 보이지만 협회에 가입한 거래소별로 요구사항이 달라 보험 가입까지는 긴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업계 측의 걱정이다.
전문가들은 가상통화에 대한 법적 제반 체제가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암호화폐 공개 등 관련 법 전문가인 법무법인 광장 윤종수 변호사는 "세금, 이용자 보호, 형사 문제 등에 대한 첫 출발부터 없는 상태"라며 "단순히 문제가 발생할 경우 어떻게 해야할지 접근하기보다는 우리 일반적 법제로 어떻게 끌어들일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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