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몰카' 분노 활활…"여성 생존 걸린 문제 계속 방관"

기사등록 2018/05/14 17:37:06

"상습 몰카범도 멀쩡…이번엔 구속에 포토라인까지"

"이렇게 바로 수사 가능한데 여성들 사건 왜 방치?"

"경찰 의도 떠나 결과적으로 여성계 오해할 상황돼"

서울경찰청장 "성별 따른 수사 차별 있을 수 없어"

【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홍익대학교 회화 수업 도중 남성 모델의 나체 사진을 촬영해 인터넷에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는 여성 모델 안모(25)씨가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12일 오후 서울 마포경찰서를 나서 서부지법으로 향하고 있다. 2018.05.12. kkssmm99@newsis.com
【서울 = 뉴시스】 남빛나라 기자·천민아 수습기자 = 남성 누드모델의 나체 사진이 유포돼 논란이 인 '홍익대학교 누드모델 몰카' 사건이 외려 여성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여성이 피해자일 땐 미온적이던 수사기관과 언론이 피해자와 가해자 간 성별이 뒤바뀌자 종전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비판이 나온다.

 모델 안모(25·여)씨는 12일 홍대 누드 크로키 수업에서 동료 남성 모델의 나체 사진을 불법 촬영해 인터넷에 유출한 혐의로 구속됐다. 앞서 서울 마포경찰서는 긴급체포된 안씨에 대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카메라 등 이용촬영) 위반 혐의를 적용해 사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포토라인에 선 안씨의 모습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분출했다. 불법촬영 관련 범죄로 피의자의 모습이 언론에 공개된 것은 2015년 '워터파크 몰카' 사건 이후 처음이다. 당시에도 20대 여성이 30대 남성과 함께 범행에 가담했단 점에서 화제가 됐다.

 직장인 조모(27·여)씨는 "몰카 상습범도 멀쩡히 일상 생활을 하는데 초범인 홍대 사건 피의자는 구속에 포토라인까지 서는 게 어이가 없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조씨는 재작년 거주 중이던 오피스텔 엘리베이터에서 배달원으로부터 불법 촬영을 당한 경험이 있지만 해코지가 두려워 신고조차 하지 못 했다. 이후 해당 배달원은 다른 여성으로부터 같은 혐의로 고소를 당했는데도 버젓이 계속 동네에서 배달을 했다.

 하예나 디지털성폭력클린센터 대표는 홍대 사건을 지켜본 소감을 "당황스럽다"고 표현했다. 하 대표는 "여자가 피해자인 상황에서 가해 남성이 유포를 빌미로 '네 인생을 망쳐버리겠다'고 협박해도 구속이 안 됐다"며 "이렇게 바로 수사가 가능한데 여태까지 아이피(IP) 추적이 안 된다느니 하면서 잡지 않은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뉴시스】 홍익대 미대 수업에서 동료 남성 모델의 나체사진을 찍어 유포한 혐의를 받는 20대 여성 모델이 구속된 가운데 포털 사이트 다음 카페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는 오는 19일 오후 3시께 서울에서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를 연다고 예고했다. 장소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SNS 갈무리)
2016년 경찰통계연보에 따르면 안씨와 같은 혐의로 기소된 3986명 중 3.4%(135명)만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았다.

 이윤호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 입장에선 사건이 특이한 만큼 신속하게 구속수사를 했다고 볼 수 있다"며 "하지만 경찰의 의도가 무엇이냐를 떠나서 결과적으로 여성계가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고 진단했다.

 일선 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관계자는 "여러 명을 찍거나 자주 찍은 경우가 아닌 이상 (불법촬영으로) 구속이 쉽지 않다. 호기심에 지나가는 여자를 몰래 한 번 찍었다고 구속영장이 나오겠느냐"라고 반문했다.

 통계를 보면 불법촬영 피해자 10명 중 9명이 여성이고 가해자의 98.0%가 남성이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2016년 불법촬영 범죄로 검거된 1만6201명 중 98.0%(1만5662명)가 남성이었다. 반면 피해자 2만6654명 중 여성이 84.0%(2만2402명)를 차지했고 각도 등의 이유로 성별을 분간할 수 없는 경우가 13.7%(3652명)로 뒤를 이었다. 남성은 단 2.3%(600명)로 집계됐다.

 비난 여론이 식지 않자 이주민 서울경찰청장은 14일 기자간담회에서 "경찰이 성별에 따라 수사 속도를 늦추거나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범행 장소와 수업 참여자가 한정된 데다 안씨가 최근에 휴대전화를 바꾼 사실을 확인해 바로 피의자로 특정했다는 취지다.

 여론은 싸늘하다. 해당 기사 댓글엔 "여성이 나오는 몰카들은 왜 야동 사이트에 즐비한가?", "몰카범이 포토라인에 서는 것은 처음봤다. 무슨 토막살인이라도 난 줄 알았다"는 등 냉소적인 댓글 일색이다.

 다음 카페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의 회원 수는 개설 나흘 만인 14일 기준 2만여명을 기록 중이다. 이들은 남성 가해자에게도 홍대 사건과 같은 잣대를 들이대라고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예고했다. 참가 자격은 '생물학적 여성'이다.

 '여성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를 요청합니다' 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 청원도 등록 사흘 만에 정부 답변 기준인 20만명을 넘어섰다.

 이나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10년간 소라넷 등 불법촬영에 대해서 여성계가 문제 제기를 해왔다. 하지만 수사기관은 여성의 생존이 걸린 문제를 계속 방관했다"며 "이번에 남성 피해자가 나오니 아주 철저하게 수사했다. 여자가 살 땅이 없다고밖에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south@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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