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의 길냥이들]혐오 테러에 맞서는 성대 ‘수선관고양이’

기사등록 2018/05/13 15:16:22

캠퍼스에 웬 고양이?…대냥이 향한 테러 자주 발생

"타이레놀 먹였다" "자경단 만들어 다 없애버리겠다"

며칠 전에도 다리 심하게 훼손된 고양이 사체 발견

학교 측에선 예산 등 문제로 급식소 설치에 부정적

그래도 호응하고 응원하는 학생들 적지 않아 힘내

"모든 동물권 위해 활동하는 동아리로 성장했으면"

【서울=뉴시스】박민기 기자 = 10일 성균관대 수선관고양이 동아리 부스에서 고양이가 그려진 양말, 메모지 등의 굿즈를 학생들이 구경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박민기 수습기자 = "지구 전체가 원래 고양이들의 집 아니었나요? 그 위에 도로를 깔고 빌딩을 지은 게 사람들이잖아요. 저희는 길고양이들이 원래 누렸던 권리를 되찾아주고 싶어요."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던 지난 10일, 축제를 맞은 성균관대학교 인문사회과학캠퍼스는 저마다 부스를 차려놓고 동아리 홍보활동을 하는 학생들로 가득 찼다. 그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부스가 있었다. 학생들은 머리에 고양이 귀 모양의 머리띠를 쓰고, 테이블에는 ‘고양이 사료 3000원’이라는 팻말을 달아놨다. 고양이 분장을 한 채 사료를 판매하던 학생들은 대냥이(대학 캠퍼스 안에 사는 길고양이)들을 위해 모인 동아리 '수선관고양이' 회원들이었다.

 대냥이들의 '동물권'을 되찾아주기 위해 애쓰는 수선관고양이는 굶기 일쑤인 대냥이들의 밥을 챙겨주고 건강 상태를 수시로 확인하는 게 주된 임무다. 회원들은 캠퍼스 안에 밥그릇 설치하기 등 길고양이들의 '복지'를 위해 여러 시도를 하며 고민한다. 동아리 산하에 있는 '꼬밥'(꼬박꼬박 밥 주는 사람들)팀은 매일 한 번씩 캠퍼스를 돌며 사료를 주고 대냥이들 건강 상태를 확인한다. 건강이 안 좋아 보이거나 몸에 상처가 있는 고양이들을 위해 임시보호소를 찾아주기도 한다.

 회원들은 순수한 뜻으로 모였지만 동아리 활동이 순탄치만은 않다. 우선 대냥이를 향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이다. 정현화(24) 수선관고양이 회장은 "가끔 문자메시지로 '학생들이 다 같이 사용하는 캠퍼스에 왜 길고양이를 끌어들이느냐'며 불만을 얘기하거나 학교 측에 항의하는 학생들이 있다"면서 "모두가 이해해주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대냥이를 향한 테러도 자주 발생한다. 이푸른(24) 부회장은 "대학 커뮤니티에 '길고양이한테 타이레놀을 먹였다'는 글이나 '고양이 자경단을 만들어 고양이를 다 없애버리겠다'는 글이 올라온다"고 전했다. 며칠 전에는 수풀 안쪽에서 고양이 사체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오른쪽 앞다리와 뒷다리가 심하게 훼손되고 배가 하늘을 향해 발랑 뒤집어진 채 죽어있었다"며 "아직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훼손 형태를 봤을 때 사람으로부터 혐오테러를 당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박민기 기자 = 성균관대 캠퍼스 안의 한 수풀 속에 혐오테러를 당한 '대냥이'의 사체가 방치돼 있다.
수선관고양이 회원들은 학교의 지원도 받지 못한다. 이 부회장은 "캠퍼스 안 급식소 설치를 위해 지난 달 학교 측과 협상을 했는데 별로 협조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학교 윗사람들이 대냥이들이 몰리는 걸 싫어해 지금 있는 밥그릇들도 치우게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호중 성균관대학교 학생지원과장은 "대냥이를 위한 활동 자체가 나쁜 건 아닌데 현실적으로 동물권까지 챙겨줄 여력은 안 된다"며 "학생들을 위한 예산도 줄어든 마당에 대냥이들 급식소를 설치해줄 예산은 없다"고 했다.

 그래도 축제날 수선관고양이 부스엔 호기심 어린 표정의 학생들이 계속 찾아왔다. 고양이가 그려진 양말, 사료, 메모지 등 회원들이 직접 디자인한 굿즈들을 볼 땐 "귀엽다"고 하며 응원의 말을 건넸다. 정 회장은 그런 반응에 쑥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앞으로의 계획이요? 수선관고양이가 대냥이를 넘어 모든 동물들의 권리를 위해 활동하는 동아리로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무표정으로 일관했던 정 회장이지만 포부를 밝힐 땐 얼굴에 금세 밝은 미소가 번졌다.

minki@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