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나온 대한항공 직원들 "조씨 일가 갑질 못 참아 촛불 들었다"

기사등록 2018/05/04 20:44:35

광화문에 500여명 운집…대한항공 직원 350여명에 일반 시민 150여명 가세

사회에 '땅콩회항' 박창진 전 사무장…"대한항공 사랑하는 마음으로 집회 참여"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대한항공 직원들과 시민들이 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옆 계단에서 '조양호일가 및 경영진 퇴진 갑질 STOP 촛불집회'에 저항을 상징하는 벤데타 가면과 선글라스를 끼고 참석하고 있다. 2018.05.04. park7691@newsis.com
【서울=뉴시스】한주홍 기자 = "모두 같은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회사에서 갑질 횡포에 시달리고 사람 취급 못 받는 직원들이 한 마음으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조 씨 가문이 경영에서 벗어나는 게 목표입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연이은 갑질 논란에 뿔난 직원들이 거리에 직접 촛불을 들고 나섰다. 조 회장 일가의 갑질을 근절하고 조 회장의 경영 퇴진을 촉구하기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선 것이다.

 대한항공 직원 연대는 4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 옆에서 '조양호 회장 일가 퇴진과 갑질 근절' 촛불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에는 대한항공 전현직 직원 350여명에 일반 시민 150여명이 가세해 총 500여명이 모였다.

 이날 예정된 집회 시간은 오후 7시였지만 오후 6시가 넘어서자 집회 장소에는 벤데타 가면을 쓴 대한항공 직원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거나 썬글라스와 마스크를 쓴 차림이었다.

 각종 피켓들도 눈에 띄었다. 직원들은 '돈에 환장한 조씨 일가 창피합니다' '조씨일가 전원 아웃 조현민 국외 추방' '우리가 지켜낸다! 대한항공' 같은 피켓을 들고 있었다.

 본격적인 집회가 시작되자 인원은 더 몰려 세종문화회관 옆 계단은 집회 참가자로 가득 메워졌다. 사회는 2014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의 피해자인 박창진 전 사무장이 맡았다.

 박 전 사무장이 벤데타 마스크를 쓰고 등장하자 직원들은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박 전 사무장은 "아마 가면을 쓰고 있어도 제가 누군지 아실 것"이라며 "대한항공을 음해하거나 해하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게 아니다. 대한항공을 사랑하고 더 사랑받는 존재가 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 모두의 마음이 같지 않느냐"고 밝혔다.
박 전 사무장이 '조씨일가 욕설갑질 못참겠다' '갑질원조 조양호는 퇴진하라' '갑질폭행 이명희를 구속하라'는 구호를 외치자 직원들은 큰 소리로 따라 외쳤다.

 집회는 대한항공 전현직 직원들과 집회에 동참한 시민들의 자유발언으로 꾸며졌다.

 자신을 17년 전 노조를 만들었다가 해고를 당한 조종사라고 밝힌 참가자는 "저희가 조양호 일가와 대한항공을 바꾸려고 하는 과정에서 계속해서 (사측이) 딴지를 걸던 게 기억난다"며 "이 자리에 나오니 기분이 좋아지고 이 기운이 모여서 대한항공이 새롭게 될 수 있다는 희망찬 마음을 갖게 된다"고 밝혔다.

 시민들의 발언도 이어졌다. 벤데타 가면을 쓰고 등장한 일반인 남성이 "(조 씨 일가 같은) 경제권력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우리 같은 사람에게 갑질하고 물병을 던진다. 기득권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우리 같은 시민의 힘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말하자 집회 참가자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가삿말을 개사한 노래와 파도타기도 이어졌다. 대중가요 '아 대한민국'을 개사한 '아 대한항공' 노래 반주가 나오자 직원들은 "아아 우리 대한항공 아아 우리 일터 아아 영원토록 사랑하리라"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남편이 대한항공 직원이라며 무대에 오른 여성은 "이분들이 나서서 먼저 내가 송곳이 되겠다고 나서서 대한항공을 바꿔보겠다, 좋은 회사를 만들어보겠다고 했을 때 외롭지 않도록 함께 싸워줄 수 있는 분들이 많았으면 한다'고 발언했다.

 박 전 사무장이 호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사랑스런 대한항공' '사랑한다 대한항공' '지켜내자 대한항공' 같은 구호를 외칠 때마다 참가자들은 큰 소리로 함성을 지르며 박수로 화답했다.

 현직 조종사라고 밝힌 한 직원은 집회에 참여한 이유를 묻자 "그동안 내재된 문제가 있었지만 다들 공론화 못했던 게 이번 일을 계기가 돼서 나타났다"며 "적절히 견제하고 의사표현을 하지 못한 게 결국 이런 사태를 만들었다. 지금이라도 조 회장이 한국사회와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고백하고 이어져온 적폐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벤데타 가면을 쓰고 동료 5명과 함께 집회를 찾은 한 운항 승무원은 "조씨 가문이 소유와 경영을 분류해 경영에서 벗어나는 게 목표"라며 "경영에서 모두 물러나고 직원 모두가 인간적인 대접을 받는 날을 위해 함께 오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대한항공 직원들과 시민들이 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옆 계단에서 '조양호일가 및 경영진 퇴진 갑질 STOP 촛불집회'에 저항을 상징하는 벤데타 가면과 선글라스를 끼고 참석하고 있다. 2018.05.04. park7691@newsis.com
사측에 신분 노출을 우려해 벤데타 가면을 쓰고 얼굴을 숨기고 있음에도 용기를 낸 이유에 대해 직원들은 한 목소리로 "조씨 일가의 반복된 갑질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한 승무원은 "신분이 드러날까 겁이나지만 반복된 갑질로 인해 모든 부서의 전 직원이 전부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된 게 이 자리의 계기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조종사 의상에 벤데타 가면을 쓴 한 직원은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어서 나왔다"며 "미약하나마 변화가 있었으면 한다. 이걸로 큰 변화가 있을까 싶지만 조금씩이라도 변화가 있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한 객실 승무원은 "좀 더 나은 회사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왔다"며 "직원들끼리는 아직 적극적으로 집회 참여를 독려하지는 못했지만 조용히 다들 함께하자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정비직군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사랑하는 대한항공이 갑질을 통해 이미지가 추락하고 그간에 조양호 회장 일가의 만행으로 인해 직원들이 참아왔던 분노를 표출한 것"이라며 "이 기회에 동참하고 해서 왔다. 이번 기회에 문제점들을 바로잡아서 정상적인 회사로 돌아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 직원은 "그동안 직원들의 인권을 대변하고 목소리를 대변할 단체가 없어서 지금의 사태까지 왔는데 저희들 직원 전 직종 모두가 모여서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걸 보니까 눈물이 난다"며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고취되고 직원들, 동료들 간 하나된 마음을 읽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힘을 보태기 위해 집회를 찾았다는 시민들도 눈길을 끌었다. 집회를 보기 위해 서울 강서구 공항동에서 부인과 함께 왔다는 50대 김모씨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 왔다"며 "조 씨 일가가 퇴진해야 한다는 직원들의 주장에 동의한다. 도저히 가만히 지켜볼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인천에서 집회를 찾았다는 40대 일반인 여성은 "오늘 30분 정도만 함께 할 수 있지만 일부러 찾았다"며 "아들딸이 있는 입장에서 이런 갑질을 그냥 볼 수 없어서 왔다. 조씨 일가는 경영권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말했다.

 hong@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