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임재희 기자 = "수습이나 인턴, 아르바이트도 산재(산업재해) 보상이 돼요. 노동자에게 과실이 있어도 보상받을 수 있답니다. 보험료는 100% 사용자가 부담하니 걱정하지 마세요."(이진아 공인노무사)
"제가 실수한 부분은 당연히 제가 보상해야 할 줄 알았어요. 모두 다 내 책임이 아니라 사업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이지민 대동세무고등학교 2학년 학생)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동세무고등학교 계산홀. 서울시가 주관하고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진행하는 '찾아가는 노동아카데미'에 참여하기 위해 대동세무고 2학년생 100여명이 좌석을 메웠다.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 서울고용노동청은 지난달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노동인권보호 대책중 하나로 실습생 전원을 대상으로 노동인권교육 의무적으로 실시키로 했다. 노동아카데미는 내년 의무시행에 앞선 시범사업이다. 당장 현장실습을 앞둔 예비 고3 학생들을 상대로 진행된다.
오순섭 대동세무고 교감은 "학생 신분으로 현장에 나갔을 때 선배나 아버지의 심정으로 잘 돌봐주는 곳도 있지만 사각지대도 있으니까요. 학생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주장할 수 있으면 안타까운 일들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며 노동아카데미 신청 배경을 밝혔다.
지난달 9일 제주의 한 제조업체에서 특성화고 3학년 이민호(18)군은 현장실습 중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29일엔 경기도 안산의 한 공장에서 현장실습생 박모(18)군이 회사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크게 다쳤다.
이지민(18)양은 "특성화고 현장실습 사고들은 얼마든지 제 얘기나 친구 얘기가 될 수 있잖아요. 뉴스를 접했을 때 친구들끼리 '우리도 특성화고 애들인데 이렇게 되면 어떡하지'란 걱정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 때문이었을까. 겨울방학을 앞두고 연극 발표가 코앞인데도 학생들은 노무사가 강조한 내용을 메모하느라 바빴다. 특히 노동현장에 첫 발을 내딛으며 작성해야 하는 근로계약서 필수 항목 6개(임금, 노동시간, 주휴일, 연차휴가, 업무내용, 업무장소 등)를 받아 적는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서울시가 발간·배포한 '청소년 노동권리수첩' 빈 곳마다 볼펜과 샤프로 주요 사항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이진아 노무사가 치킨집에서 주방 및 배달 일을 하며 받은 월급 100만원을 지각비 10만원과 서둘러 치킨을 튀기다 고장 낸 기름기 구매비용 90만원으로 날렸다는 얘기가 나오자 학생들 사이에선 탄식이 터져 나왔다. "말도 안 된다"며 안타까움도 감추지 못했다.
아르바이트하며 실제 겪었던 사례가 나오면 무릎을 치며 옆자리 친구들과 대화를 나눴다.
이랜드 계열 패밀리 레스토랑 '애슐리' 등의 사례가 나오자 여기저기서 학생들 목소리가 들렸다. 초과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근로계약시간을 실제보다 1시간 늘려 잡고 강제 조퇴 처리하거나 근무시간을 15분 단위로 쪼개 계약하는 행위를 예로 들자 자신의 경험을 친구들에게 털어놓은 것이다.
강의를 들은 이지민양은 "부당행위를 당하면 제일 먼저 친구들과 고민을 나눌 텐데 각자가 노동인권에 대해 많이 알아야 도움이 될 것 같다"며 노동인권교육 확대를 바랐다.
시와 교육청, 고용노동청은 이번 시범사업을 거쳐 내년부터 서울 지역 특성화고 70개교(상업계 40개교·공업계 30개교)와 마이스터교 4개교 현장실습생 3학년을 대상으로 노동인권교육을 의무화한다. 현재 사이버 필수 이수 교육을 현장 맞춤형 상담, 질의응답, '찾아가는 노동아카데미' 교육과 병행해 진행한다.
아울러 특성화고 담당 교사나 현장실습 기업 대표 및 노무담당 직원을 대상으로 한 노동교육 도입까지 검토하고 있다. 학교현장에선 물리적인 시간 부족 등 노동인권교육 추진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잇단 특성화고 현장실습 사고에 정부가 노동 착취 방지대책까지 마련했지만 노동인권교육의 중요성은 유효하다.
정부는 내년부터 학생을 노동력 제공 수단으로 여기는 '조기취업 형태 현장실습'을 전면 폐지하고 '학습 중심 현장실습'만 허용하기로 했지만 임금체불 등 현장에서 각종 부당노동행위가 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진아 노무사는 강의 말미에 학생들을 향해 "지금 현장실습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데 교육비 명목으로 임금만 삭감하는 '열정페이'에 처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교육을 받지 못하고 사업장 수습 노동자처럼 일하고 있을 땐 노동자처럼 임금을 다 받으시고 불합리한 상황이 생기면 공인노무사 등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해 시는 120 다산콜센터를 현장실습 통합 신고 창구로 활용한다. 권익을 침해받은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누구나 120 다산콜센터에 신고하면 공인노무사인 서울시민명예노동옴부즈만과 상담할 수 있다.
limj@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