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탁한 손, 그리고 그 사내의 손에 끼워진 짧은 담배,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눈 속을 아이와 걸어가는 아낙네, 지나간 인생을 이렇고 저렇고 이야기할 수 없지만 그들의 사진에는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시대의 삶 속에서 한국 사진의 정체성을 찾던 사진가 강운구가 2008년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전시한 '저녁에' 이후 9년만에 '네모 그림자'로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 사진들을 강운구는 '그냥 주워 담은 사진들'이라고 한다.
고집스러우리만치 사진에 대한 생각을 지켜온, 날카로운 시선으로 자신의 소신만을 담아온 강운구의 이번 사진전 ‘네모 그림자’는 이 땅뿐 아니라 온 세상의 네모와 그림자를 흑백, 컬러, 아날로그, 그리고 디지털 사진들로 보여준다. 다양한 형식과 색으로 오래도록 모아왔던 사진들은 같은 자리에 있는 듯 변화하는 그림자처럼 세월과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사진가의 반듯한 네모 화면 속에 차곡차곡 담겨 있다.
빛과 그림자는 사진의 본질이다. 화려한 빛 속에 숨겨져 드러나지 않는 그림자는 그동안 우리가 간과해온 진실이기도 하다. 필연적으로, 내 그림자는 나와 동행한다. 그림자는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고 돌아보고 멈춘 그 순간에만 사진에 담을 수 있다. 그 순간을 만나기 위해 사진가는 한 발치 뒤에서 산책자처럼 차근차근 빛을 관찰한다. 그리고 선택된 찰나 그림자는 한쪽 구석에 수줍게 때로는 화면 가득히 길게 늘어서 언제나처럼 실재의 일부가 된다. 허상으로서의 그림자가 아닌 당당한 존재이며 그가 바라본 세상이며 자신이 살아온 풍경이다. 그의 시선은 이 땅의 본질을 발견하려던 패기 넘친 그때, 다시 말하면, 이 땅을 일궈낸 깊은 주름의 손과 땀을 찾아 걷고 또 걷던 그때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낯선 세계와 부딪히고 자신과 대면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어떤 이에게 인생의 저녁은 어두움이지만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여명의 시기는 달라진다. 비록 우리는 강운구의 거친 화면과 그 속에 머물고 있는 이 땅의 사람들을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오히려 밝음 속에 감추어진 그림자의 본질을 보는 사진가의 삶을 보게 되었다. 이제 저녁이 지나고 내려가는 강운구의 사진인생은 아직 남은 여명을 기다린다.
강운구는 한 몇 해 전부터는 이 땅의 사진가로서 의무 복무가 끝났다고 여겼다. 그러고 나니 사진이 더 재미있어졌다고 한다. 그 이후의 작품들은 여진인 셈이다. 오랜 기간 경험하며 축척해온 생각들이 후기의 사진 작품들에는 스며있다. 그러니 후기의 작품들 또한 주목할 만하다.
1962년부터 현재까지 국내외 여러 전시회에 참여했다. 외국 사진이론 잣대를 걷어내고 우리의 시각언어로 포토저널리즘과 작가주의적 영상을 개척한 사진가다. 강운구는 스스로를 ‘내수(內需) 전용 사진가’라고 말한다. 그가 천착하는 내용은 과연 그러하며, 여기에는 ‘국제적’, ‘세계적’이란 명분으로 정체성 없는 사진들이 범람하는 현상에 대한 저항의 의미도 담겨 있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