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아트클럽] 낙서 같은 그림…73세 오세열의 '무구한 눈'

기사등록 2017/11/16 08:00:00 최종수정 2017/11/16 09:18:16
【서울=뉴시스】오세열 화백의 인물화만을 선보이는 '무구한 눈' 개인전이 18일부터 학고재에서 열린다.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물들어 올 때 노 저어라' 속담이 있다. 좋은 기회가 찾아올 때 이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현재 미술시장에서 오세열 화백(73·목원대 명예교수)이 딱 그렇다.

 지난 2016년부터 주가가 치솟고 있다. 개인전이 잇따르고 작품 판매도 호조세다. 지난 2~3년간 단색화 열풍이 이어지면서 그 이후 한국미술을 이을 작가로 떠오르면서다.

 지난 2월 학고재에서 개인전을 연 뒤 아트바젤 홍콩, 키아프 등 국제 아트페어에서 컬렉터들의 '필수템'으로 꽂히며 소장품 목록에 올랐다. 크리스티 홍콩, K옥션 등 국내외 미술경매 시장에서도 추정가를 뛰어넘는 낙찰가를 기록하는 등 뚜렷한 성장세를 보였다. 현재 100호 크기 작품값은 6000만원선이다.

 지난해 외국에서 5번의 전시를 치른 후 올해 벌써 4번째 개인전을 연다.

 대개 화가들이 2~3년만에 한번씩 여는 개인전과는 이례적인 행보다.  1975년 조선화랑에서 데뷔전을 한후 2015년까지 10번의 개인전을 연 것과 맞먹는 횟수다. 최근 2년만에 화가로서 40년 세월을 보상받는 듯한 분위기다.

 하지만 잦은 전시는 화가에게 '양날의 검'이다. 작품의 희소성 가치를 미안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그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전시 많이 한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또 개인전을 앞두고 만난 오 화백은 되레 반문했다.

 "'어떤 물건을 사는데 그 물건이 어디에 가면 있다'하고 '그 물건이 어디에 가야만 구할 수 있다', 어떤게 좋겠어?"

   빤히 쳐다보자 그가 답했다.

   "'어디에 가야만 구할수 있다'가 좋지 않아? 사실, 자주 전시하는 것도 작가의 이미지에 도움은 안돼. 작가 자신이 관리를 철저하게 냉혹하게 해야하지"

 그는 "전시 많이 한다고 좋은 것은 아니야"라며 읊조리듯 말하다 입을 다물고 팔짱을 꼈다. 그 순간 복화술처럼 노래소리가 흘러나왔다.   "원래 흥얼거려~. 신경안써도 돼. 나는 꽃하고도 대화해. 아침에 가면 첫 인사를 하지. 너 잘있었니? 어제보다 춥다. 너도 춥겠다. 하하하"

  계면쩍은 듯한 표정으로 힐긋 상대를 바라보는 그는 그의 그림같았다. 한쪽눈만 동그랗게 두드러진 그림속 인물, 혼자 서있는 그 사람 모습이었다.

【서울=뉴시스】오세열, 무제 Untitled, 2017, 혼합매체 Mixed media, 117x91cm
  
  오 화백은 오는 18일부터 학고재화랑에서 '무구한 눈'을 타이틀로 또 개인전을 연다. 지난 2월 오브제로 만든 작품을 선보인 전시와 달리 이번 개인전은 인물화만 32점 모았다. 그의 '인물화'가 미술시장에서 가장 인기라는 것을 입증하는 셈이다. 

 "그림속 인물이 나를 닮았네."

  그는 40년 넘게 다른 사람을 상상하며 특징과 분위기를 그렸는데 결국 돌아보니 "타인의 초상화가 아니라 자화상 같다"고 했다.
 
   ‘인물’은 오세열의 40년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커다란 주제다. 인물을 중심으로 숫자 그리고 오브제로 소재를 발전시키며 작품 세계를 넓혀 왔다.
    
 이번 전시는 197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작업한 인물화 32점을 시대별로 살펴볼 수 있다. 어둡던 옛날 그림과 달리 최근 신작은 밝아지고 단순해진 차이가 보인다.

  낙서같고 아이가 그린 것 같은 그림이다. '못그렸다'고 하자 "성공했다"고 했다. "못그리는 그림처럼 그렸다"면서 껄껄 웃었다. "옛날부터 똑같이 그리는 것, 사진보고 그리는 것 싫어했다. 이미지를 나름대로 상상해서 그린 것이다"

 오세열의 인물은 1980년대에 칠판에 백묵으로 낙서한 듯, 벽을 긁어낸 듯 거칠게 등장했다. 표현적인 필치로 그려진 인물과 어둡고 차갑게 가라앇은 배경의 조화가 강렬한 인상을 표출한다. 1990년대의 인물화에는 색채를 도입했다. 이 시기부터 인물 형상이 더욱 부각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부터 최근작에 이를수록 이러한 특징이 더욱 두드러진다. 배경은 아예 검은색이거나 노란색, 빨간색 등 높은 채도의 단색이다. 인물의 형상은 배경으로부터 눈에 띄게 분리되어 물고기처럼 유영하거나, 화면에 가로눕는 등 변화된 동세를 보이고 있다.

인물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다. 그는 "그냥 사람"이라고 딱 잘라말했다.

모든 그림은 즉흥적으로 그렸다. 표정을 자세히 그리지 않는다."구상도 하지 않아. 에스키스한게 아니라 떠오르는대로 상황에서 작업하다보면 엉뚱한 그림이 항상 나오지. 처음부터 이런 모습 이런 분위기를 그리려고 한게 아니라 그리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려지는거야."

 화면속 사람은 가늘고 길다. 오 화백은 "그런 형상을 좋아한다"고 했다.

살펴보면 인물은 직선이 만들어냈다. 그가 "직선이 있으니 어떠냐"고 또 반문했다. '차가워보이고 질서정연해 보인다'고 하자 "내 성격이 그렇다고 했다. 부드러울것 같지만 차갑고 냉정하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림은 '화가의 영혼의 지문'이다.
【서울=뉴시스】 오세열, 무제 Untitled, 2017, 혼합매체 Mixed media, 63x73cm (1)

  오 화백은 요즘 "행복하다."

 "딴게 아니고 원하는 작업을 할수 있다는 것. 이전엔 생활이 어려워서 그릴수 없었는데… 이젠 삶의 질도 좋아졌다. 내가 원하던 작업실에서 하루 종일 작업한다는 것 얼마나 감사한 일이야."

 3년전 대전에서 올라와 양평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그의 작품을 소장한 컬렉터가 힘을 보탰다. "어느날 우연히 만났는데 지원하고 싶다고 해서, 조건이 맞았다. 거기까지만 알아라." 그 컬렉터는 지금까지 물심양면 그를 도와주고 있다.

 이전 그림에 팔다리가 없거나 신체가 부자연스런 인물이었다면 2017년 신작들은 발이나 손이 정상적으로 돌아와있다. 색도 밝아지고, 물감층도 두터워졌다.(돈을 벌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는 벤자민(영화 벤자민의 시간을 거꾸로간다)처럼 되고 있다. 일흔살이 넘어가면서 더 어려지고 있다. 백발이 성성하지만 마음도 그림도 자꾸 '어린애스러워'지고 있다.

 "70대라고 70대같은 그림을 그리는게 아니라 점점 더 어린 사람이 그린 것처럼 보였으면 좋겠어. 내 나이가 연상이 되지 않는 그림이면 좋겠다는 생각이지"

  실제로 이전 그림과 비교하면 요즘 그림은 더 아이 같아졌다. 어린이가 칠판에 그린 듯한 그림처럼 보인다.

  전시 타이틀 '무구한 눈'은 그래서 정해졌다. 마치 '어린아이 같은 무구(無垢, innocent)의 시선'이 화면을 지배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김복기 평론가가 썼다.

 '무구한 눈'은 곰브리치(Ernst Gombrich)가 “무구한 눈은 신화에 불과하다”고 말한 것에서 따왔다. 모든 지각은 많든 적든 이미 코드(code)화되어 있다. "무구한 눈은 단순히 유년시절로의 회귀로 회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선으로 획득‟해야 하는 것이다. '예술가란 과거와 시원으로 퇴행하는 재능보다 미래와 종말로 전진'하는 재능을 가진 존재다. 따라서, 현대예술에서 '무구한 눈'은 마땅히 어린이의 눈이라는 좁은 틀을 뛰어넘어야 한다.
   
【서울=뉴시스】오세열. 무제 Untitled, 1992, 혼합매체 Mixed media, 76x55.5cm

  "나이가 들수록 어려지고 화려한 색을 좋아도 하지. 그게 이치야. 나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더라."
 
 이번 전시에는 노란색과 주황색등 화려한 색으로 치장한 그림이 많다. "나이 먹으니 화사한 색이 좋다면서도 그래도 검은색, 블랙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이번 신작에도 검은 칠판같은 그림을 대표작으로 내세웠다.

  '검은색 자부심'이 있다. "똑같은 색이라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다르지. 내가 쓰는 블랙은 그 속에 엄청난 색이 들어있지. 곰삭은 색이라는 표현이 맞을꺼야. 내 '블랙'은 다른 사람하고는 달라."

  검은색 그림은 바삭해보인다. 유화인데 유화같지 않다. 기름기가 없다.

  "기름기를 빼는 건 작업하는 내 나름대로의 방법이 있지. 그건 요리사의 레시피 비밀처럼 영업비밀이야. 그런데 나는 윤나는걸 싫어해. 건조하걸 좋아해. 그래서 작품도 영향을 받나봐."

   그림속 인물은 눈만 강조되어 있다. 단추로 붙이기도 한다. "얼굴에서 눈이 가장 중요하지 않나? 사람마다 눈 모양이 다르잖아. 눈을 잘못뜨면 인상쓴다고 하고...그냥 즐겁게 작업하는 거야, 즐겁게"

 그림은 숫자가 있는 것도 특징이다. 그는 "숫자로 보이지만 하나의 드로잉"이라면서 "그렇다고 막 쓰는 건 아니다"고 했다.

  "왜 썼냐고? 어렸을때 몽당연필 연습시키잖아. 누구든지 그런 추억이 있을거야. 생각해봐 숫자는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떠나서는 살수 없어. 싫든 좋든 숫자에 의해서 울고 웃고, 행복하고 불행하지. 모두 숫자에 매달리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현대인들한테 어떤 느낌을 주기위해서 썼지."

 모든 작품은 제목이 없다.

 "보는 사람의 폭을 넓혀주려고 안단거야. 작품을 보면서 동시에 제목을 보면 연결시켜서 감상하잖아. 작가의 의도가 빗나가는거야. 관람자를 해방 시키기위해 제목을 안붙인거야. '무제'도 제목이 될 수 있는데, 그것도 없애야한다. 내 작품은 어떻게 감상하든 상관없다."

【서울=뉴시스】오세열, 무제 Untitled, 2017, 혼합매체 Mixed media, 130x97cm

오 화백은 예술을 매개로 현실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한국전쟁 이후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후기 산업 사회를 살아낸 세대의 사람이다. "문명의 급속한 발달로 인한 인간은 불행해졌고 물질적인 것에만 매달리다 보니 정신적인 것이 소멸해가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번뇌와 해탈은 한 몸이다. 멍한 듯 표정 없는 얼굴, 큰 동작 없이 움츠린 신체. 미숙한 듯 보이지만, 틀에 얽매이지 않는 그림은 역설적으로 치유의 메시지를 전한다. 불완전한 인물들 주위로 단추, 장난감등의 천진한 오브제를 늘어놓고 숫자나 낙서 같은 기호들을 새기는 건 그의 따뜻한 마음의 조각들이다.

  보는 순간 딱 끌리는 그림. 본능과 무의식의 세계로 단박에 끌어들이는 작품은 그의 유년 기억이 힘이다.

  "어렸을때 낙서를 많이했어. 새로 도배한 벽 위에 연필로 신나게 그렸지. 그럴때마다 얼마나 호되게 혼났는지 몰라~ 그런데 나는 지금도 흰벽만 보면 그리고 싶어. 여백만 있으면 그리고 싶은 마음이 마구 솟구쳐. 허허허" 전시는 12월 17일까지.

 hyun@newsis.com

 ◇오세열 화백=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 미술부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969년 서라벌예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1974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구상 공모전에서 두각을 나타낸후 1976년 제 3회 한국일보사 한국미술대상 최고상을 수상했다. 30대에 조선화랑, 진화랑 등 당대 최고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39살에 유럽의 대표 아트페어 피악 (Fiac, 1984)에서 남관,박서보, 김기린,이우환 등과 함께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때 프랑스 미술계 평론가들에게 높은 평을 받았고 작품이 판매돼 더욱 주목받았다. 당시 한국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작품이 팔린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프레데릭 R. 와이즈만 예술재단등 국내외 주요 미술 기관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