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장윤희 기자 = 3일 북한의 고강도 6차 핵실험 도발로 청와대의 하루는 분초 단위로 매우 긴박하게 흘러갔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세번째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주재하며 "참으로 실망스럽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력 규탄하면서 최고 수준의 응징 방안을 강구할 것을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고강도 도발이 있을 때마다 NSC 전체회의를 긴급 소집해왔다. 앞서 문 대통령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주장하는 '화성-14형' 1차 발사와 2차 발사가 이뤄진 각각 7월 4일과 7월 28일에도 NSC 전체회의를 긴급소집한 바 있다.
3일 오전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새로 제작한 대륙간탄도로켓(ICBM)에 장착할 수소탄을 개발했다"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무기연구소를 찾아 핵무기 병기화 실태에 대한 종합보고를 들었다"고 보도했다. 이어 김 위원장이 "우리는 앞으로 강력한 핵무기들을 마음 먹은대로 꽝꽝 생산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고 위협 수위를 높였다.
이윽고 점심무렵인 오후 12시29분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인근에서 추정규모 5.7 진도의 인공지진이 발생했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공식 밝혔다. 핵실험 여파로 길주군 인근 지반이 붕괴돼 여진이 이어지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즉각 NSC 전체회 긴급 소집을 지시했고 이날 오후 1시30분 문 대통령 취임 세번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가 열렸다. 이날 전체회의는 오후 3시까지 한시간반가량 무거운 공기 속에서 진행됐다. 회의에는 국가안보실장과 1·2차장, 국무총리를 비롯해 국방부·외교부·통일부·행정안전부 등 관계 부처 국무위원들이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장문의 모두 발언에서 "이번 도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의 명백한 위반일 뿐만 아니라 국제 평화와 안전에 대한 매우 심각한 도전으로서 강력히 규탄한다. 참으로 실망스럽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북한은 ICBM급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 연이은 도발을 통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킬뿐 아니라 세계 평화를 크게 위협함으로써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을 더욱 가중시키는 실로 어처구니 없는 전략적 실수를 자행했다"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이번 북한의 도발에 대해 국제사회와 힘을 모아 강력한 응징 방안을 강구할 것이며 북한으로 하여금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해 나갈 것이다. 북한의 도발을 결코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통해 정권의 생존과 발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규탄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북한은 하루 속히 핵미사일 개발 계획을 중단할 것임을 선언하고 대화의 길로 나와야 할 것"이라며 "그 것만이 자신의 안전을 지키고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며 북한이 대화의 길로 나올 것을 촉구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북한에 추석명절 이산가족 상봉, 평창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 남북 군사회담 등을 제안했지만 북한의 답변을 얻지 못했다. 청와대는 북한의 도발 수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도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적 차원의 남북 교류 여지는 남기려 했지만 이날 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이 마저도 불투명하게 됐다.
한편 북한은 조선중앙TV를 통해 우리 시각으로 이날 오후 3시30분 핵실험 결과를 공식적으로 알렸다. 조선중앙TV는 "김정은 위원장이 오전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수소탄 시험 명령서에 친필 서명했다"면서 "ICBM 장착용 수소탄 시험이 완전 성공했다. 주체적으로 설계된 핵공학 구조가 믿음직하다"고 수소탄이 성공적으로 시험됐다고 주장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해 1월 6일 수소탄 실험에 처음으로 성공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우리나라와 미국은 위력이나 지진파 규모면에서 기존 핵실험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아 수소탄일 가능성이 매우 적다며 북한이 수소탄 개발에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한 바 있다.
그러던 중 이날 북한이 1년8개월 만에 신형 수소탄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힌 것이다. 이날 청와대는 북한의 6차 핵실험이 ICBM 완성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레드라인(Red line·한계선)까지도 아직 이르지 않은 것으로 평가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ICBM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서 무기화하게 되는 것이 레드라인"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오후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의 핵실험이 레드라인을 넘어선 것으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 "북한이 오늘 '완성단계 진입을 위해서'라고 얘기를 계속하는 것으로 미뤄볼 때 아직 ICBM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아직도 (레드라인까지) 길은 남아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고위 관계자는 "북한이 주장하는 내용들이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ICBM 완성까지는) 핵탄두 소형화·경량화,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며 "이전에 발사한 ICBM급 미사일과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도 원하는 목표지점에 떨어졌느냐, 대기권 재진입을 극복했느냐 여부에 대해 확인된 바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레드라인 단계까지 이르지 못했다고 해도 추가적인 도발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북한의 정권수립 69주년 기념일인 오는 9일 일명 '9·9절'이 다가오는데다 조선노동당 창건 기념일인 다음달 10일에도 핵실험 등의 대형 도발을 또다시 벌이는 것 아니냐는 국제 사회의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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