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조인우 기자 =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한 버스에서 성폭행이 자행되는 광경을 담은 영상이 유포돼 여성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24일(현지시간) 북아프리카포스트 등에 따르면 이날 모로코 수도 라바트와 최대도시 카사블랑카 시내에서 수백명의 여성들이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우리는 두렵지 않다" "공공장소를 자유롭게 하라" "거절은 거절이다(No is No)" 등의 팻말을 들고 도시 중심에서 행진했다.
이 행진은 지난 18일 촬영돼 20일 온라인에 유포된 성폭행 영상으로 촉발됐다. 영상에는 버스 안에서 10대 소년 6명이 지적장애인인 24살 피해자의 옷을 찢고 성추행하는 모습이 담겼다. 승객과 버스 운전사가 아무도 현장에서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큰 충격을 안겼다.
특히 페이스북에서 이 영상은 열띤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대다수가 이 사건에 분노와 좌절을 표한 반면 일부는 피해자의 옷차림을 비난하며 피해자에게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 너무 많은 남성이 타고 있는 버스에 탄 것 자체를 문제삼는 사람도 있었다.
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모로코 내 NGO와 인권단체들이 들고 일어났다. 1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행진에 동참할 의사를 밝혔다.
라바트 행진에 참석한 한 남성은 모로코월드뉴스에 "우리는 더이상 침묵할 수 없다"며 "어디서나 내 두 딸을 지켜야 한다. 거리도 학교도 버스도 안전하지 않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대체 무엇이냐"고 분노를 표했다.
카사블랑카 행진에 참석한 21세 학생은 인디펜던트에 "충격적인 것은 버스운전사 뿐 아니라 다른 승객들도 모두 눈을 감고 있었다는 것"이라며 "우리는 강간범들에게 원하는대로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줘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희생자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들었다"며 "그러나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도 부모의 보호를 떠나 자유롭게 돌아다닐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청한 17세 참석자도 "수동적인 방관자는 강간범만큼 나쁜 사람"이라며 "여성인권 측면에서 몇 가지 조치를 더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화가 난다"고 말했다.
행사 주최 측은 "집을 떠나기가 두려운 상황"이라며 "폭행을 당할 것 뿐 아니라 아무도 우리를 도우려하지 않을 것도 두려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위대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 및 성추행 방지 법안의 신속한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이 법안은 지난 2013년부터 의회에 계류돼 있다.
라바트의 여성인권단체 대변인은 모로코월드뉴스에 "여성에 대한 폭력방지 법안은 의회 서랍에서 먼지가 쌓이고 있고 여성장관과 인권장관은 세계 어디에나 성희롱이 존재한다며 현실과 단절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정부가 조치를 취하기 전에 대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강간당하고 죽어야 하냐"며 "피해가 촬영되거나 문서화되지 않은 사람은 더 많다. 그들에게 어떤 정의가 존재하겠냐"고 토로했다.
성폭행이 발생한 버스 회사는 "자사 소유의 버스 중 하나에서 발생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영상이 너무 짧기 때문에 버스 운전사가 실제로 사태를 방관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책임을 회피했다.
모로코 경찰은 15세부터 17세 사이의 가해자 6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모로코에서는 여성에 대한 희롱과 폭력 및 학대가 만연하다. 당국이 실시한 전수조사에 따르면 모로코 여성 중 약 3분의2가 신체적/정신적/성적/경제적 학대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달 초에도 남성 그룹이 여성의 뒤를 따라가며 위협하는 영상이 유포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여성의 옷차림을 문제삼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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