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일명 '아트테이너', 배우이거나 가수인데 그림을 그리는 사람, 요즘엔 흔하다.
화가로 변신은 이색 취미와는 다른 '연예인의 품격'으로 '있어 보이게' 하는 효과도 난다.
대표적으로 심은하·김혜수가 화려하게 주목 받았고, 이후 수많은 연예인이 '나도 화가'라고 커밍아웃 했다. 한창 아트테이너 상승세일때 찬물을 끼얹은건 '아트테이너 원조'였다. 미술시장에서도 잘팔리는 작가였는데, 그의 작품은 정작 대작(代作)이어서 문제가 컸다. 법정까지 갔고 전시는 뚝 끊겼다.
희열은 고통에서 생긴다. 아픔을 예술로 승화한 이들이 다시 등장했다. 가수 솔비·이혜영이 아트테이너 대열에 올랐다. 대중적 인기는 작품 판매에도 영향을 미친다. 온라인에서 들뜨는 전시 홍보로 작품도 대부분 팔려나간다.
유명세는 독이다.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특히 '진짜 화가'들 입장에선 영업 침해다. 반면 프렌차이즈 가맹점처럼 '보복 영업'도 할수 없다. 화가들은 화가나도 지켜만 보는 추세다.
'얼마나 하겠어' 라며 제쳐 놓지만, 싸이의 노래(좋은 날이 올거야) 가사처럼 '결국, 질긴 놈이 이긴다'.
'노력하는 놈은 즐기는 놈 절대 못 이겨' 이런 가사 측면에서 화가들을 긴장하게 하는 아트테이너가 있다.
“쉬운 시작은 아니었지만 작업은 내게 큰 즐거움과 행복을 준다”는 배우 하정우다.
“집중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이 필요해 그림을 그리게 됐다"는 그는 2010년부터 해마다 개인전을 열고 화가로서 입지를 다졌다. 수많은 그룹전과 해외전을 치르며 '배우 화가'라는 명성까지 쌓았다.
유명세 덕분에 그림값도 상승세다. 지난해 3월 한 경매장에서 그의 작품 '킵 사일런스'(Keep Silence)가 1400만원에 낙찰되면서 공개된 그림값은 화가로서 몸값도 올렸다.
하정우의 '팬덤'이 작용한 측면도 있지만 화랑이 아닌 경매장에서 판매는 의미가 다르다. 그림을 산다는 건 영혼의 주머니를 터는 일이다. 돈을 모아서 집을 사는 것과는 다른 일이다.
그러니까 화가 하정우는 배우 유명세에서 '순수 미술가'로 인정받고 있는 단계에 와있는 셈이다.
“그림을 그릴 때 나는 내 의식과 무의식이 사이의 균형을 얻는다”는 그의 그림은 '하정우 표 초상'으로 굳히기를 하고 있다.
시간은 명확하게 보여준다. 햇수를 거듭할수록 초기 바스키아풍에서 벗어나면서 하정우만의 패턴과 이미지로 진화하고 있다.
배우로서 틈틈히 작업하며 7년만에 벌써 11회째 개인전을 연다.
28일부터 서울 이태원 표갤러리에서 'PLAN B'를 타이틀로 인물화등 신작 50여점을 전시한다.
이전 '삐에로'에 그림에서 'WORK'를 명제로 단 신작들은 형형색색 입술을 가진 인물들이 눈길을 끈다. 서울과 하와이에서 제작된 그림속 인물들은 하정우가 만나고 스쳐지나간 사람들이다.
특유의 유쾌함과 자유로움이 넘치는 그림은 이전보다 안정적으로 보인다. 그동안 그림이 도안적인 펜드로잉 같았다면 신작은 회화적인 느낌으로 변화를 보인다. 자신감있는 면의 붓질과 선 드로잉이 부드러워졌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내게 휴식을 주었고 삶의 질을 향상시켰다"는 하정우의 작업은 이제 '개인기'를 벗어났다. 상업화랑에서 전시한다는 것은 작품을 판매하는 일이다. 인기 배우인 만큼 대중은 '아트테크'까지 꿈꾼다.
아직 인기는 여전하다. 표갤러리는 "전시 소식과 함께 작품값 문의가 잇따르고 있지만, 하정우 작가가 원치 않아 전시전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2014년이후 표갤러리에서 3년만의 여는 전시로 작품값은 올랐다. 107.7x77.9cm 크기 작품은 1000만원에 판매한다.
권불십년 (權不十年)처럼, 배우 이름세로 그림이 팔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 진짜 화가, 중견화가들의 개인전이 뜸한 이유다.
똑같은 그림, 매번 사주고 봐줄수는 없다. “변해도 추락하고 변하지 않아도 추락한다”(단색화가 박서보 화백 대표 어록)는 말은 화가들의 삶의 무게다. 하정우의 개인전 'PLAN B' 는 기로에 서있다. 지켜보는 눈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전시는 7월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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