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김난영 기자 =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로 치러지는 조기대선이 18일 정당별 후보들 지지층 간 '낙인찍기' 경쟁으로 비화되고 있다. 단순히 단어를 요약한 줄임말이 아니라, 정치적 의도와 맥락이 담긴 신조어들이 속속 등장하며 대선 후보 진영에게 프레임으로 작용하는 상황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전후 '문재인 대세론'을 간명하게 표현하기 위해 등장한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 '아출문(아빠가 출마해도 문재인)' 등은 정치권 '신조어 열풍'의 단초 격이라고 볼 수 있다. 해당 신조어들은 지지자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긍정적 영향을 주기 위해 만들었다는 면에서 유머러스하게 받아들여졌다.
반면 최근 등장한 '홍찍문(홍준표를 찍으면 문재인이 대통령 된다)', '안찍박(안철수를 찍으면 박지원이 상왕 된다)' 등 신조어는 후보에 대한 지지 표현보다는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게 현실이다.
홍찍문의 경우 중도보수 유권자들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지지하도록 '전략적 선택'을 유도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으며, 이에 방어하기 위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직접 만들어낸 용어가 '안찍박'이다. 최근엔 '문찍김(문재인을 찍으면 김정은한테 간다)'이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대한 색깔론 공세 차원으로 활용된다.
후보뿐만 아니라, 각 후보 지지자들에 대한 신조어도 넘쳐난다. 문 후보에 대한 맹목적 지지를 보이는 열성 지지층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 탈레반에 비유한 '달레반(문재인을 뜻하는 '달'에 탈레반을 합성한 단어)'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응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지지자들을 비하하는 단어로 등장한 게 '안슬림(안철수+무슬림)', 또는 '안베충(안철수+일간베스트 이용자)' 등이다.
민감한 정치적 이슈를 교묘하게 연결시켜 각 후보의 공식 입장인 것처럼 표현하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이른바 '안박사(안철수를 찍으면 박근혜가 사면된다)'라는 단어가 대표적이다. 안 후보가 사면심사위원회 설치 발언으로 박 전 대통령 사면 논란에 휩싸였던 상황이 반영됐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신조어 등장이 SNS 발달로 인해 각종 줄임말이 유행하면서 불가피하게 나타난 현상이라는 데 공감대를 갖고 있지만, 유권자들에게 전달되는 선거정보를 왜곡할 가능성에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박상병 인하대 초빙교수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안박사, 문찍김처럼 전혀 근거가 없는 사실로 낙인을 찍어서 후보들을 몰아가는 건 걸러내야 할 부분"이라며 "선거전략으로 볼 수도 있지만, 질이 안 좋은 마타도어"라고 지적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번 대선에 특히 신조어 등장이 많아진 이유는 요즘의 '줄임말' 세태가 정치권에도 반영된 것"이라며 "정치가 권력투쟁의 과정인 만큼 (네거티브성 신조어 등장은) 불가피하다. 그 자체가 선거"라고 평했다.
신 교수는 그러면서도 허위사실에 기반한 신조어에 한해서는 "신조어를 만든 사람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처벌해야 한다"며 "허위사실이라는 점을 알면서 이를 쉽게 기억되게 하기 위해 신조어로 만드는 건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있고, 이같은 단어가 SNS를 통해 한 번 퍼지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러오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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