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대통령제 도입…민주주의 저해 vs 강력한 리더십

기사등록 2017/04/17 10:27:18
【서울=뉴시스】이지예 기자 = 터키의 대통령 중심제 개헌안 국민투표가 가결되면서 민주주의가 저해될 거란 우려와 리더십 강화로 경제안보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 거란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터키 선거관리위원회는 16일(현지시간) 국민투표 개표가 99% 진행된 가운데 찬성이 51.3%로 반대(48.7%)를 2.6%포인트 앞섰다고 발표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곧바로 투표 승리를 선언했다.

 개헌안은 의원 내각제를 폐지하고 통치 구조를 대통령 중심으로 바꾼다는 내용이었다. 총리직 대신 부통령직을 신설하고 대통령에겐 행정명령 발표, 국가비상사태 선포 등의 막강한 권력을 부여한다.

 개헌안 가결로 터키는 94년만에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전환한다. 터키는 '건국의 아버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1923년 공화국을 설립한 이래 줄곧 의원내각제를 지켜 왔다.

 이제 터키 대통령은 제왕적 권력을 누리게 된다. 부통령과 장관을 의회 승인 없이 임명하고, 의회를 우회한 입법도 가능하다. 사법부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임명권을 행사한다.

 에르도안은 개헌한이 통과되자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정부 개혁을 시작했다"고 환영했지만 야권은 선거 부정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터키의 자유 민주주의가 위험에 빠졌다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미 싱크탱크 중동민주화 프로젝트(PMED)의 하워드 잇센스타트 교수는 "(개헌안은) 에르도안 개인의 엄청난 권력 강화를 뜻한다"며 "터키에 꼭 필요한 견제와 균형에 치명적인 타격"이라고 분석했다.

 잇센스타트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에 "국민투표 이전부터 터키의 사법 독립성은 엄청나게 약화돼 있었다"며 "새로운 시스템은 이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터키 정부는 작년 7월 군사 쿠데타 진압 이후 대대적인 반대파 숙청을 진행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에르도안은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경찰, 군, 사법부 관계자들을 물갈이했다.

 유럽외교관계위원회(CFR)의 아슬리 아이딘타스바스 연구원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에르도안)은 국가 자원을 모두 보유하면서 언론을 통제하고 야권의 손발을 묶었다. 과연 이게 단가?"라고 폴리티코에 지적했다.

 개헌안 지지 진영은 전혀 다른 주장을 편다. 이들은 중앙 집권화된 강력한 정부를 통해 경기 침체, 난민 유입, 테러 위협, 쿠르드 무장반군 등 터키가 처한 숱한 문제들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심복인 비날리 이을드름 터키 총리는 국민투표 승리 연설에서 "이번 투표로 터키 민주주의 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며 "개헌안을 국민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터키는 정치 혼란으로 해외 투자와 경제 개혁이 지체되면서 경기 하락을 겪고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과 쿠르드 반군의 테러가 잇달면서 핵심 산업인 관광이 큰 피해를 입었고, 안보도 흔들리고 있다.

 싱크탱크 독일 마샬 펀드(GMF)의 오즈구르 운루히사르시클리 터키 지부장은 "에르도안의 승리는 정부의 안정을 향상시키겠지만 사회 안정은 약화시킬 것"이라고 NYT에 말했다.

 그는 개헌안 찬성표가 훨씬 많을 거란 예상과 달리 찬반 득표율 차이가 크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터키에 새로 설립된 사회 계약은 매우 취약한 기반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에르도안은 "(투표 결과는) 찬반 모두의 승리"라며 야권에 화해의 손짓을 하는듯했지만 말뿐일 거란 평가가 많다. 그는 사형제 재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야권 탄압이 심화될 거란 지적이 제기된다.

 잇센스타트 교수는 "문제는 중앙 권력 강화와 억압 확대를 통해 에르도안이 사회 안정과 경제 부흥을 이룰 수 있는가"라며 "지난 10년간의 기록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우려했다.

 ez@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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