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고 긁고 뚫어야 나왔다…한지에 빠졌던 화가 권영우
【서울=뉴시스】무제, 1980 한지 84.5 x 66.5 cm 사진: 박준형 Courtesy of the artist’s estate and Kukje Gallery 이미지제공 국제갤러리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수묵의 전통을 버렸다. 1962년 필묵을 버리고 택한 건 우리 종이 '한지'였다.
초기에는 동양화 전공자 답게 패널에 한지를 붙여 제작했다. 60~70년대 한지는 그에게 '백색 연작'시리즈를 선사했지만 그는 만족하지 못했다.
한지와 지독한 사랑에 빠졌던 화가 권영우(1926~2013). 한지와의 밀월은 '찢김'으로 더 강렬해졌다.
한지와 한몸이 되고싶어 한 것이었을까. 손톱으로 긁고, 찢고, 뚫고, 붙이며 종이와 함께 리듬감에 취했고 백색에 빠졌다. 필묵을 빼고 몸으로 만난 한지와의 격렬한 몸부림은 오히려 한국성이 도드라졌다.
【서울=뉴시스】무제, c.1970s 한지, 45 x 55 cm 사진: 박준형 Courtesy of the artist’s estate and Kukje Gallery 이미지제공 국제갤러리
여러 겹으로 겹쳐진 한지는 섬세한 질감이 강조되어 입체감 있는 표면과 리드미컬한 다양한 조형성으로 회화이자 설치같은 변신을 거듭했다. 약 40여년이 넘도록 권영우가 추구했던 이 고유의 기법들은 기존 동양화를 실험적으로 재조명하고 새로운 문법을 개척한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사후 그의 진가는 더 빛나고 있다. '종이 화가'로 닉네임을 얻으며 단색화의 대열에 섰다.
권영우 마케팅은 국제갤러리에서 본격화했다. 2015년 런던에서 열린 프리즈 아트페어의 '프리즈 마스터'에 한국의 대표적인 단색화 작가로 소개한 후 국제갤러리에서 그의 개인전을 열며 꾸준히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오는 23~26일까지 열리는 아트바젤 홍콩에도 선보인다. 동시대의 재조명되는 작가들을 특화하여 소개하는 캐비넷 (Kabinett) 섹터에 '권영우 아카이브' 전을 마련했다.
【서울=뉴시스】바닷가의 환상, 1958 한지에 채색, 137.5 x 138 cm 사진: 박준형 Courtesy of the artist’s estate and Kukje Gallery 이미지제공 국제갤러리
이와 함께 국제갤러리는 2년만에 다시 권영우 개인전을 16일부터 연다. 다양한 백색(Various Whites)를 타이틀로 권영우의 백색 한지 연작 시리즈를 전시한다.
이 전시에는 '종이 화가'가 되기전 1958년에 제작된 권영우의 초기 작품 '바닷가의 환상'도 나왔다. 당시 국전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한 이 작업은 당시 동양화의 답습을 벗어난 실험적인 작품으로 초현실적인 심상을 보여준다. 전시에는 전문 아카이브 섹션도 마련해 생전에 진행한 작가 인터뷰 영상과, 작가가 사용한 미술 도구들 등도 소개한다.
'종이 화가'로 불렸던 권영우는 그림인지 입체인지 설치인지 모호한 '종이 작품'에 대해 생전 이렇게 말했다.
【서울=뉴시스】권영우(1926–2013)는 1946 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의 1 기로 입학하여 동양화를 전공하고 1957 년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64년부터 1978년까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교수로 부임하였고, 1978 - 1989년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체류하여 작품활동에 전념했다.1998 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수상, 2001 년에는 은관 문화 훈장을 수여 받았다. 소장처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런던 대영박물관 등 유수의 기관 및 미술관 등이 있다. 작가는 2013년 서울에서 작고했다.
“저 나름대로 생각할 적에는 회화이지 동양화, 서양화란 구별을 굳이 두지 말자. 그것이 기름 물감으로 그렸건, 서양화적인 화법으로 그렸건, 요는 그 작품이 발산하는 어딘가 그 체취가 동양적인 것을 발산할 적에 그것은 동양화다, 저는 그렇게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전시는 4월 3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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