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은 져도 번역은 이긴다…인간, AI에 압승

기사등록 2017/02/21 17:10:35
【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21일 오후 서울 광진구 세종대학교 광개토관에서 열린 '인간 대 인공지능 번역대결' 행사에서 관계자들이 구글, 네이버, 시스트란 번역기를 이용해 번역을 하고 있다. 이번 행사에는 전문 번역사와 구글 번역기, 네이버 번역기 파파고, 시스트란 번역기가 즉석에서 번역 대결을 펼쳐 정확도 등에 따라 승패를 가르는 방식으로 한국 최초로 열렸다. 2017.02.21. myjs@newsis.com
번역사 4명·번역기 3팀 맞대결…취재 열기 뜨거워
 심사 기준 '정확성·표현력·논리성'…'속도'는 빠져
 세종대 신입생 설문조사서 '인간 승리' 예상 앞서

【서울=뉴시스】변해정 기자 = 바둑계에서는 인간의 열세가 갈수록 고착화하고 있지만 번역 분야에서는 달랐다. 인간 번역사와 인공지능(AI) 번역기의 번역 대결에서 인간이 압도적 점수로 이겼다.

 국제통역번역협회(IITA)와 세종대학교·세종사이버대학교 공동 주최로 21일 오후 세종대 광개토관 629호에서 인간 대 AI의 번역대결이 펼쳐졌다.

 통·번역대학원 출신으로 5년 이상의 번역 경력이 있는 번역사 4명(남성 3명·여성 1명)이 구글, 네이버 파파고(Papago), 시스트란 번역기 3팀과 대결했다.

 문학과 비문학 영한 지문 각 2개씩 선택해 이중 영자 지문은 한글로, 한글 지문은 영어로 각각 번역하는 방식이다. 영한 번역은 총 452단어, 한영 번역은 299자다.

 문학 영자 지문으로 뉴욕타임즈 칼럼리스트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L. Friedman)의 저서 '늦어서 고마워(Thank You For Being Late)', 문학 한글 지문으로는 강경애씨의 장편소설 '어머니와 딸'이 각각 선택됐다.

 비문학 영자 지문은 폭스(Fox)뉴스 경제 기사인 '영화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브랜드로 거듭났다(How a Movie Propelled Lego Back to the World's Most Powerful Brand)', 비문학 한글 지문으로는 한국일보 오피니언인 '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셀프빨래방'이 선정됐다.  

 인간 번역사에게 주어진 번역 시간은 50분이다. 번역 도중 인터넷 검색도 허용했다. 

 AI 번역기에 지문을 넣는 작업은 세종사이버대 영어학과 곽영일 교수와 김대균 교수가 맡았다. 20분이 주어졌지만, 18분 만에 번역이 끝나 속도는 인간 번역보다 매우 앞섰다.

 하지만 속도는 이번 평가 항목에서 빠졌다. 심사위원 측이 평가한 기준은 정확성과 언어 표현력, 논리·타당성 등 3개 항목(1항목당 2개·60점 만점)이었다.

【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21일 오후 서울 광진구 세종대학교 광개토관에서 열린 '인간 대 인공지능 번역대결' 행사에서 전문 번역사들이 번역을 하고 있다. 이번 행사에는 전문 번역사와 구글 번역기, 네이버 번역기 파파고, 시스트란 번역기가 즉석에서 번역 대결을 펼쳐 정확도 등에 따라 승패를 가르는 방식으로 한국 최초로 열렸다. 2017.02.21. myjs@newsis.com
 학계와 IT업계 예상대로 승리는 인간의 몫이었다.

 번역사는 총점 49점을 받아 3대 번역기 중 최고점을 받은 28점보다 크게 높았다. 나머지 2대 번역기는 각각 15점, 17점을 받았다.

 심사위원장인 한국통번역사협회 곽중철 회장(한국외대 교수)는 "저작권 문제가 없으면서 한번도 번역된 적이 없는 상당히 까다로운 텍스트를 번역 문제로 출제했다"면서 "번역기가 번역한 문장은 90% 이상 어법과 맞춤법에 맞지 않았다. 단어의 다의어적 성격과 맥락을 파악하지 않은 단순 번역을 해 인간을 따라올 순 없었다는 결론을 냈다"고 설명했다. 이번 심사에는 곽 회장과 통·번역 전문가 2명이 참여했다.

 앞서 세종대가 본교 신입생(공과대학 181명·인문대학 110명) 291명을 대상으로 사전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인간이 우세할 것이라는 답변이 66.6%(194명)로 더 많았다. 다만 인간의 승리를 점친 비율은 인문대생(90.9%)이 공과대생(51.9%)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국내에서 펼쳐진 인간과 AI 간 대결은 이번이 세번째다. 번역 부문에서는 최초다. 이 때문에 수 십여명의 취재진이 몰렸다.

 지난해 3월 이세돌 9단과 구글 '알파고' 간 바둑 대국에서 1승 4패로 인간이 패배하면서 AI 기술에 대한 위기 의식을 불러왔다.

 8개월이 지난 그해 11월 인간 퀴즈왕과 한국전자통신연구(ETRI)이 개발한 AI 프로그램 '엑소브레인(Exobrain)' 간 퀴즈 대결에서도 160점의 점수 차로 인간이 졌다.

 그러나 대결 전부터 번역 분야에서는 인간의 승리가 유력하다는 전망이 나왔다. 최근 사업자들이 문장을 통째로 인식해 맥락을 이해하는 인공 신경망 번역(NMT) 기술을 적용해 AI 번역 품질을 크게 높였다고 하나 섬세한 인간 번역에는 한참 뒤진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AI 번역은 인간 번역보다 속도가 훨씬 빠르지만 정확도는 인간 번역의 70∼80% 수준으로 평가된다. 특히 번역 내용이 미묘하고 섬세함을 요구하는 문학 텍스트에서 AI 번역의 수준은 더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종대 신구 총장은 "많은 교수들이 AI가 미세하고 미묘한 감정까지도 인식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는 아직 구축된 단계가 아니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했었다"면서 "승패에 관계없이 향후 10년 안에 AI가 인간이 표현하고자 하는 수준까지 완벽히 통번역하는 수준에 도달해 우리가 곁에 늘 가지고 다니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hjpyu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