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아트클럽]국격을 대변하는 그림…'한국미술사의 절정'

기사등록 2017/02/12 15:26:31 최종수정 2017/11/14 10:49:02
【서울=뉴시스】백자달항아리,18세기, 높이48.2cm 몸통 50cm 입지름 22cm 굽지름 16.8cm ,개인소장  
■서울 인사동 노화랑 15일 개막…총 16점 전시
프리마호텔 '백자대호'등 보험가액만 400억대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절정(絕頂). 최고의 경지에 달한 상태를 뜻한다. 절정은 도전이고 파괴적이다. 절정에 오른다고 하고, 치달은다고 한다. 절정의 끝은? 결국 추락이거나 꺾임이다.

 지난해 연말, 절정으로 치닫던 탄핵정국이 지지부진해지고 있는 가운데, 주춤하던 미술시장에 '미술품의 절정'을 맛볼수 있는 전시가 개막한다. 원래 작년 11월 30일 하려고 했지만 '촛불혁명'의 시국때문에 미뤄진 전시다.

  '한국미술사의 절정'전이 15일부터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 열린다. 유독 '절정'이라는 글자를 키운 도록도 눈길을 끌지만, 전시 제목에 '절정'이라고 단 것도 독특하다.

 노화랑 노승진 사장(69)이 '야하다'고 하며 '절정'을 '클라이막스'라고 영어로 말하자, 전시를 기획한 미술사학자 이태호 명지대 석좌교수(65)가 '오르가즘'이라며 껄껄 웃었다.

 제목만 보면 섹시한데, 알고보면 품격있다. 다른길을 가던 노 사장과 이 교수는 미술인들로서 의미있는 재능기부에 나섰다. '가장 한국적인 명작'이란 대의 아래 지난 13년전 2004년 의기투합했다. 당시 노화랑에서 '20세기 7인의 화가들'이란 전시를 하면서다.

【서울=뉴시스】겸재 정선, 박연폭도, 1750년대, 종이에 수묵, 119.7cmx52.2cm, 개인 소장.
'가장 한국적인 명작' 2탄격으로 기획한 이번 '한국미술사의 절정'전은 40년 전통 노화랑의 '문화 사회공헌'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명작'을 선보인다는 취지로 마련한 이 전시는 상업화랑이라는 노화랑의 면모를 달리하고 있다. 화랑은 그림을 파는 곳이지만, 이번 전시는 판매하고는 거리가 멀다. 모두 개인소장자들이 대여한 전시로, 우리 한국미술을 남녀노소 누구나 가까이서 볼수 있게한다는 취지다. 관람료도 없다.   

 이태호 교수는 "공사립미술관에 소장된 작품 못지않은, 개인 소장 가운데 최고 걸작으로 전시장을 채운다"며 "16점으로 꾸민 소규모이지만 한국미술사의 절정에 걸맞는 대형전시"라고 자부했다.

 ◇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이렇게 '호들갑일까'. 

 전시에 나오는 18세기 달항아리, 겸재 '박연폭도', 단원 김홍도의 '죽하맹호도', 이중섭 '복사꽃 가지에 앉은 새', 박수근 '독서하는 소녀', 김환기 '산월'과 '무제'등 전시작품 총 16점은 국내 명품중의 명품이다.

 모두 개인소장품으로, 미술관 박물관도 아닌 화랑에 대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알차고 학구적인 전시기획과 40여년 전통 노화랑의 신뢰 덕분이다. 그 마음을 아는 노 사장은 소장자들을 위해 보험가액만 400억대의 보험을 들었다. 국내 상업화랑에서는 이례적인 일로, 노화랑은 "전시기간 작품의 안전을 위해 야간 경비도 세울 것"이라고 했다.

 일단 전시는 지난 300년간 한국미술사의 대표 거장 다섯명을 뽑았다. 민족의 자존감으로 내세울만한 18세기 조선미(겸재 단원)와 그 조선미를 토대로 삼은 20세기 세 화가(이중섭 박수근 김환기)가 주인공이다.

【서울=뉴시스】단원 김홍도, 죽하맹호도,1790~1800 년대 , 종이에 수묵담채, 91.3 x 34.3 cm , 개인소장  
전시 간판은 겸재 정선이 말년인 1750년대 그린 '박연폭도(朴淵瀑圖)' 다. 정선의 3대 명작(금강전도·인왕제색도·박연폭도)가운데 유일한 개인소장품이다. 국내 전시장에 이 그림이 나온 것은 7년 만이다.

이태호 교수는 "30년전 이 그림을 처음 본 순간, 그 폭포소리의 위력에 그만 뒤로 넘어질뻔한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고, 소장자는 '지금도 여전히 폭포물보라에 온몸이 젖는 듯하다'고 한다.

 과장같지만, 그림을 보면 문외한이라도 좀 이해가 된다. 시원하게 쫙 흐르는 폭포가 압도적이다.

 우레와 같다는 폭포 소리의 리얼리티를 적절히 이미지화한 것으로 현장에서 온몸으로 느낀 순간의 감명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세로로 1m가 조금 넘는 그림의 실제 길이보다 훨씬 길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개성미 넘치는 겸재의 박연폭도는 '인왕제색도' 보다 노익장을 과시하는 걸작이다.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한국미술사에서 회화예술의 최고 절정을 빛낸 작품으로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무가지보(無價之寶)'로도 일컫지만 현재 100억대에서 300억대까지 작품값이 논의중으로 알려졌다.

 호랑이보다 더 사실적인 단원 김홍도의 '죽하맹호도'도 뽐낸다. 송하맹호도(삼성미술관 리움소장)에 비해 호랑이의 크기가 작지만 동작의 위세와 섬세한 묘사가 빼어난 걸작이다. 소리없이 움직이는 꼬리와 등을 세워 경계를 취한 호랑이의 자세는 생동감 넘친다.

 2011년 '화원-조선시대 화원대전'(삼성미술관 리움)에 출품되어 주목받았다. 그림 상단 오른쪽 공간에는 '세상 사람들이 간혹 호랑이를 그릴 때 개처럼 비슷하게 될까 우려한다. 이 그림은 도리어 진짜 호랑이가 자괴감을 갖게 한다'는 자신감이 써있다. 또 '조선이 서호산인 김홍도가 호랑이를 그리고, 수월옹 임희지가 대나무를 그리고, 능산도인 황기천이 평을 쓴다'고 밝혀놓았다.

【서울=뉴시스】김환기, 산월, 1960년경,캔버스에 유채, 72.7cm×100cm,개인소장.
대나무와 호랑이를 짝지은 죽호도는 당시 일본에서 유행한 소재다. 이태호 교수는 "그림 화평에 보면 김홍도 앞에 '조선'이라고 표기한 것으로 미루어 '죽하맹호도'는 통신사와 관련하여 일본에 건너간 그림으로 짐작되지만 그런 내력을 밝혀줄 근거를 찾지 못했다"며 "본래 호랑이 그림은 궁중의 세화로서 악귀를 막는 벽사를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는 2점의 백자 달항아리도 출품된다. 한점은 이 48.2cm, 지름 50cm의 균형잡힌 몸매를 과시하는 대호다. 살짝 주저앉은 둥근 형태에 연푸른 기운도 감도는 유백색이 단아하며 아름다운데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 건너간 슬픔을 간직하고 있다. 2007년 3월 이 달항아리가 환수문화재로 귀국하면서 주목받았다. 서울 청담동 프리마호텔 이상준 사장이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받아, 프리마호텔의 유명브랜드가 된 백자대호다.

 다른 한점은 47cm높이로 프리마호텔 소장품보다 일그러짐이 심하다. 굽받침을 보완해서 세울 정도로 아랫부분이 심하게 주저앉았지만 보는 방향에 따라 달리 보이는 감상 재미가 있다. 

 이태호 교수는 "백자 대호를 보면 어릴적 끌어안았던 어머니 엉덩이 같은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면서 "달항아리야말로 우리나라 문화재중 가장 한국적이고 조선미의 대표작"이라고 극찬했다.

 '백자사랑'하면 김환기를 빼놓을수 없다. 김환기는 도자사 연구자인 고 최순우 관장이나 정양모 관장보다도 제일 먼저 달항아리를 높이 평가할 만큼, 그 가치를 일찍이 예찬했다. 해방 직후인 1946년에는 '이조 항아리'라는 시를 통해 달항아리를 노래했다. '조형미의 극치이자 조형의 전위'에 위치한 예술이라며 달항아리를 극찬한 김환기는 자신의 작품에 항아리를 녹여냈다. 1950~1960년대 그림에 달항리는 누드여인과 등장하기도 하고 달이나 산, 구름, 매화등과 조화를 이루며 늘상  주요자리를 차지했다.

 이번 전시에 나온 김환기의 작품은 5점중 1960년경 제작한 '산월'이 눈길을 끈다. 두툼하고 거친 질감의 유화작품으로 커다란 블루문을 담았다. 컴퍼스가 아닌 손으로 둥그스름하게 그렸기에 완벽한 원형이 아니어서 오히려 친근하고 약간 좌우로 넓적한 모양새는 김환기가 사랑했던 백자항아리의 넉넉함을 연상시킨다. 훤한 보름달도 푸르게 그린, 푸른 색감을 주조로 한 화면은 미묘하면서 신비롭다.

【서울=뉴시스】이중섭,복사꽃 가지에 앉은 새, 1955년경, 종이에 유채,54.5 x 37cm, 개인소장   
'흰소' 이중섭은 이번 전시에서 동물과 사람이 없는 봄풍경 그림으로 색다르게 다가온다. 1950년대 중반 통영시절에 남긴 그림으로 그동안 '벚꽃과 새'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그림이다. 이태호 교수는 "이그림을 자세히 보니 벚꽃이라기보다 핑크색 꽃잎과 함께 자란 연두색 새싹들이 복사꽃을 닮아 있다"면서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 제목을 '복사꽃 가지에 앉은 새'라고 고쳐 사용했다"고 밝혔다.

 이 작품은 지난해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에서 소 그림을 제치고 '유화 작품중 가장 인상깊은 작품'으로 꼽혔다. 현재 이중섭전은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전시중이지만, 이 그림만은 서울에 남아 노화랑에 전시하게 됐다.

 '국민화가' 박수근의 작품은 1950~60년대 전성기의 걸작 소품들이 나왔다. 특히 1955년작 '독서하는 소녀'는 박수근의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대표작으로 꼽힌다. 붉은 저고리에 짙은 갈색치마를 입고, 그 아래는 흰 버선이 살짝 보인다. 우툴두툴한 백새조 질감 바탕에 올린 색이 굉장히 화사하다. 색채화가로서의 박수근을 새롭게 보게 한다.

 ◇달항아리부터 김환기 추상까지 관통하는 건 '조선미'

 이번 전시는  조선후기 '조선미'와 근현대 '한국미'를 한자리에 놓고 한국미술의 동질성, 정체성을 확인해보려는 속 뜻이 깔렸다.

 겸재, 단원, 달항아리에 이어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의 작품에 조선미, 한국미의 미감이 자연스럽게 스미듯 이어진 건 중국과 일본에서도 따라하지 못한 우리 근현대미술의 백미이자 독보적인 한국미술이라는 자부심이 담겼다.

【서울=뉴시스】박수근, 독서하는 소녀, 1955년, 캔버스에 유채, 22 x 14 cm, 개인소장
지난 300년은 한국미술사에서 그야말로 절정을 창출한 시기였다. 한국미술사의 전체 흐름중에서 가장 조선적인 것, 혹은 한국적인 것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가들이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현재 최고의 값을 형성하고 있는 점으로 볼때 우리나라 문화사 전체를 통틀어서 최고의 유산으로 최고의 부른 이룬 시기임이 틀림없다.

 19세기 후반 20세기 전반, 조선말기와 일제 식민지 기간이 커다란 공백기로 남는다. 우리가 겪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를 기준삼아 돈으로 환전한다면 민족적인 재산을 엄청나게 잃은 시기라 할수 있다.

 이 혼란기를 딛고 1950~70대에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가 한국미술사의 절정으로 제 2의 황금기를 만들었다. 이런 측면에서 절정을 끝으로 미술사는 하강기다.1960년대 70년대 민주화 운동과 군파시즘 시절,새로운 서구 모더니즘을 수용하면서 앵포르멜이나 추상주의 단색화물결이 이어졌다.1980년 5월 민주화항쟁이 계기가 되어 민중미술이 맹위를 떨쳤고, 2000년대초 팝아트와 극사실주의 대세로 미술시장을 흔들었다. 이후 다시 단색화 물결로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해외에 알리고 있다.

 미술사학자 이태호 교수는 "어찌보면 우리시대는 절정을 찍은후 지금은 하강기의 어느 지점일듯 싶다.이는 한국사회가 퇴행 몰락한다고 보는 시각도 없지 않기 때문"이라며 "작년부터 열리고 있는 광화문 광장의 열기를 호흡하며 과연 우리가 이 하강기를 딛고 또 하나의 절정기를 맞이할까를 그려보곤 했는데,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지금 이 같은 우리 '한국미술 절정'의 작품들을 톺아보면서 민주주의 사외화 문화의 격조가 상승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번 전시 놓치면 안된다'고 강조하는 이태호교수에 물었다.

 ◇왜 꼭 봐야하는가?

 "국립현대미술관은 '겸재'전을 안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김환기'전을 안한다. 근현대가 나눠져 서로가 다른 것은 안본다. 이렇게 양쪽에서 분리해서 할 전시를 상업화랑 노화랑에서 묶은 것이다. 18~19세기, 20세기 미술을 통합한 전시이기도 하다. 한국 미술사는 물론 국내 정치현실이 하강기이지만 우리 민족의 국격이 이 정도로 훌륭하고 품격있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이번 전시 작품은 국격을 대변하는 그림이다. 그래서 꼭 봐야 한다." 전시는 28일까지.

hyu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