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아트클럽] '숯의 화가' 이배 "가난해서 택한 재료, 이젠 유럽서 우리문화 환기"

기사등록 2016/11/20 11:03:50 최종수정 2017/11/21 12:04:17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숯 덩어리를 묶어 놓은 설치작품. 지난해 파리 기메미술관에서 선보였다.
작년 유럽 최대 기메박물관서 초대전, 한국인 처음
90년대 도불 후 숯 사용…'서체적 추상 회화' 창출
"숯은 회화의 본질" …조현화랑서 13년만에 개인전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바베큐를 굽거나, 천연 가습제로 쓰는 일상용품인 '숯'의 위대한 변신이다. 김춘수의 시 '꽃'처럼 '다만 새까만 탄소 덩어리에 불과했던 숯은 화가의 손이 닿자 예술'이 됐다.

 '숯'이라는 재료와 흑백의 서체적 추상이 독특한 작품은 유럽에서 러브콜이 이어졌다. 파리 페르네브랑카 파운데이션(2014), 생테티엔 현대미술관(2011), 베이징 투데이 아트미술관(2009)등 프랑스 뉴욕 중국 등 유수 미술관에서 50여회 초대전이 열렸다. 국제적으로 활동하며 1995년 국내 미술계에 소개된 작품은 2000년 가장 권위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2013년 한국미술비평가협회 작가상을 수상하며 한국 화단에서도 인정 받았다.

 지난해에는 유럽 최대의 동양예술품 박물관 프랑스 국립 기메 동양박물관에서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숯’이라는 재료와 흑백의 서체적 추상을 통해 ‘한국 회화’를 국제무대에 선보이며 가장 ‘동양적인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이배 화백이 부산 조현화랑에 걸린 자신의 거대한 숯 작품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20년 넘게 한국과 파리 뉴욕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이 화백은 1990년 도불 이후 서양 미술재료 대신 숯을 작품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1990년 도불한 후 파리, 뉴욕, 한국을 오가며 활동 하고 있는 이배(60 본명 이영배)화백이다.

 이 화백은 지난 10여년 전부터 최근까지 검정과 '크림 빛' 흰색의 서체적 추상회화들을 주로 선보여왔다. 2000년대 초 '숯' 자체를 이용한 재질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검은 숯가루와 숯덩어리를 공중으로 던지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고, 그 이후 아크릴 미디엄과 검은 안료를 사용해 밀랍을 연상시키는 매끄럽고 부드러운 입체적인 회화를 선보였다.

  압권은 숯을 잘라 캔버스 화면에 붙이는 ‘이수 뒤 푸'(Issu du Feu)다. ’불의 근원'이라는 뜻의 이 작품은 그의 대표작으로 절단한 숯 조각을 나란히 놓아 접합 한후 표면을 연마하는 방식으로 제작한다. 수백개 숯의 단면이 화면을 가득 메워 다양한 방향의 각도에 따라 각각 다른 빛으로 반짝인다. 마치 숯 덩어리 묶음 작품을 단면으로 잘라놓은 모습을 띈 것 같기도 한데 나무 결 같기도하고, 나무테 같기도 한 세밀하고 섬세함이 돋보인다.

 또 숯가루를 짓이기고 아크릴을 녹여 화면에 두껍게 붙이는 '랜드 스케이프'(landscape) 시리즈도 인기다. 숯의 본질을 더욱 두드러져 보이는 다양한 조각적 형태로의 확장을 시도하는 작품이다. 아크릴 미디엄이 섞인 숯가루로 모티브를 그린후 그리는 과정을 반복하면 2차원의 단순한 평면이 아닌 3차원적인 입체감으로 조용한 울림을 선사한다. 또 소용돌이같기도 하고, 떠다니는 부호 같기도 한 서체같은 추상화는 개념에 집중한 듯한 시간의 깊이와 여유가 느껴진다.

 '숯의 화가'로 유명하지만, 처음부터 숯 작업을 한 건 아니었다. 물감을 버리고 '숯'을 재료로 선택한 건 가난 때문이었다.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숯을 이용한 독특한 작업으로 작업할때면 온 몸에 숯 검정이 묻어 난다.
홍익대 미술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1990년대 프랑스로 건너갔다. 1991년 '소나무 협회'를 창립하는등 화단에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지만 경제적으로 힘이 들었다. 물감 살돈이 늘 부족했다. 과거 그의 작품은 캔버스 위에 물감을 쏟아붓는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층층히 유화물감을 축적시키는 작업이었다.

 당시 그는 유화물감과 캔버스등의 과중한 재료비를 감당해 낼 길이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물감대신 목탄으로 이것 저것 드로잉 하는 것에 만족하는 상황에 이르렀을때 우연히 그의 작업실 근처에서 헐값으로 판매하는 숯포대를 발견하면서 눈이 떠졌다.

  이 화백은 "어릴때부터 그림을 배우면서 뎃생을 한다던지 할때 주로 목탄을 많이 사용했는데 그런 기억의 한 일부분으로 숯이 나한테 첫번째로 관심을 끌었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숯이 어떤 화학적인 재료가 아닌 자연으로부터 왔다는 것과 어릴때 시골(경북 청도)에서 태어났고 성장하며 자연에서 자라왔던, 성장기 속에 잠재해있던 감성이 잘 만난 것이라고나 할까요." 

 '한국인'이라는 원천을 일깨우며 이배를 일으킨 숯은 이배와 함께 부활했다, 검게 타버린 숯의 소멸에서 영원으로 나아갔다. 그는 "숯은 모든 물성, 모든 물질의 마지막 모습"이라며 "검정색의 깊이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숯은 얼핏보기에 아주 빈약하고 상당히 하찮은, 우리의 일상에서 늘 볼 수있는 재료입니다. 이 하찮고 일상적인 하나의 재료일지라도 숯에 어떤 예술적인 감성을 넣었을때 그것이 역동적으로 상당히 화려하고 아주 부유하고 굉장히 찬란하게 발광하며 저를 매료시켰습니다."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숯을 절단해 캔버스에 붙여 만든 회화. Issu du feu, charcoal on canvas, 162 x 130cm, 2000
'숯'을 사용하기 시작한 초창기 관심은 우선 사람의 인체였다. 메마르고 접착력이 없는 숯으로 화면위에 인체를 그려내는 것은 수십 번 반복되는 덧칠을 요구하는데, 덧칠과정에 숯가루를 접착시키기위한 방법도 고안했다. 송진으로 된 아교나 수용성 미디엄을 사용하게됐다. 이 접착용제의 사용으로 숯이 무엇을 그리는 도구가 아니라 화면에 직접적으로 붙게 되어 스스로 의미체로 탄생했다.

 숯 조각 하나하나를 붙이는 일은 엄청난 노동과 끈기를 요하는 작업이다. 특히 2000년에 나온 숯 조각 하나하나를 붙이는 ‘이수 뒤 푸' 시리즈는 노동 집약적이다. "바베큐용 숯의 절반을 쪼개어 그 절반을 캔버스 화면에 마치 모자이크를 붙이듯하는 이 작업은 오랜시간이 걸립니다."

 작업을 하다보면 '숯 검정'이 되기 일쑤다. 단순하게 붙이기만 하는게 아니다. "저는 이 숯을 어떻게 붙이느냐를 계산합니다. 숯이 가지고 있는 특성, 나무가 가지고 있는 재질과 마지막으로 남은 탄소의 재질, 효과등을 생각해 모양에 따라 퍼즐을 맞추듯이 붙여나가지요. "

 그는 작업을 하면서 "카오스를 정렬한다"고 했다. "큰 의미에서 보면 숯은 자연으로부터 왔고, 굉장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 카오스적인 재질을 갖고 있다"면서 "이런 카오스적인 재질을 내 생각과 내 개념을 어떻게 잘 접목시키는가를 퍼즐처럼 맞추는 게 작업의 의미"라고 전했다.

 숯은 상징적 의미가 강할 뿐 아니라 고유한 한국문화를 재발견하게 하는 재료다. 이 화백 작업에서의 숯은 일차적 질료외에 검정이라는 동양적 감성을 2차적 질료로 아우르고 있다.

【서울=뉴시스】UNTITLED ACRYLIC MEDIUM, CHARCOAL BLACK ON CANVAS 162 x 130 cm 2016
그는 "모든 색을 포용한 검은 색에는 한 가지의 검은 빛깔이 아닌 백가지의 색이 들어있다"고 말한다.

  검정색,흑백의 작업이지만 '단색화가'라는 인식을 허문다. "숯은 사실 단색으로 보이지만 숯에는 수 많은 색깔이 있고 거기에는 색의 수 많은 다양성이 포함 되어있습니다. 숯이 불로 부터 왔다라는 그런 의미를 더 생각하면 모든 색을 흡수하고있는 것이 숯이고 또 숯 그 자체만으로도 검정톤의 수 많은 뉘앙스가 있는 거지요." 

 그렇다면, 숯을 가지고 무엇을 추구하는가, 숯으로 예술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숯을 가지고 무엇을 추구하는가, 이것을 가지고 예술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블란서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가 '예술은 현실과 이상을 엮는일'이라고 했는데 그말에 공감합니다."

 "화가는 현실과 이상의 경계선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예술은 우리의 연약한 상상력을 북돋는 일'이기도 하지요. 예술이 무엇인가라는 것은 삶이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같습니다. 예술이 무엇인지 알기위해서 어쩌면 내가 예술을 하고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조현화랑은 6년만에 여는 이 배 개인전을 2017년 1월 8일까지 펼친다. 이번 전시는 숯을 재료로한 2000년대 초기 회화중 대표작 10점과 신작을 선보인다.
그런면에서 이 화백은 "한국사람으로서 숯을 가지고 작업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양사람이 숯을 가지고 하는 작업과 제가 하는 작업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숯은 서양이 보는 단순히 어떤 물성의 세계를 가진게 아닙니다. 동양의 먹의 문화권은 동북아시아의 중국과 한국과 일본이 가지고 있는 수묵의 세계가 숯에서 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서구의 정신에 의해 만들어진 현대 사회에서, 또한 도시문명 안에서, 동양인으로서 이 자연에 대한 물성을 나의 문화권과 연결 관계를 어떻게 맺을수 있을까라는 것이 내 작업의 화두입니다."

 검은색의 근원 '숯'은 동양 문화요소에서 '이배 의 숯'이라는 새로운 조형언어로 치환됐다. '숯'은 영어로는 차콜(charcoal)로 중국을 뜻하는 차이나(china)와 좋다는 콜(coal)의 합성어로 알려져있다. 중국에서 숯을 약으로 먹는 것을 알고, 서양인이 복용해본후 몸이 좋아져서 나왔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 유럽에서 '숯'은 이배의 '이수 뒤 푸'(Issu du Feu)이거나 '랜드 스케이프'(landscape)로 불린다.

  이 배 화백이 지난 18일 부산 조현화랑에서 13년만에 개인전을 열었다. 숯을 재료로 한 2000년대 초기 회화중 대표작 10여점과 신작을 선보인다.

 이 화백에게 숯은 물질로서 숯을 지나 회화적 수단인 동시에 그의 회화의 본질이자 귀결점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숯이 융화된 '검은 색'의 위용을 보여준다. 블랙홀같기도 한 검은색 속으로 한없이 빠져들어가게 한다.

 우연히 발견한 재료지만, 작품은 우연에 의한 것은 없다. 많은 숙고를 거치고 오랫동안 데생을 통해 탐구한 결과물이다. '서예에 가까운 획, 곡선 혹은 부호들을 연상시키는 형태들은 오직 검은 색을 구현하기 위해서만, 검은 색에 육체를 부여하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극도로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는 형태, 놀라운 에네르기를 내포한 작업은 단순한 회화에서 벗어났다. 특히 그 자체로 항균·흡착·습도·정화 효능까지 스며 실용적이면서도 독창적인 현대미술의 참 맛을 전한다. 

 이 배 화백은 "'숯'작품을 단순히 기법적인 부분이나 하나의 특이한 재료로만 보지 말아달라"고 조심스런 당부를 전했다.

 "숯 작업은 우리 문화의 깊은 토양에서부터 비롯 된 것입니다. 1970년대에 미국의 철학자이자 문화비평가 마샬 맥루한이 쓴 '미디어는 메세지다'라는 책을 대학시절에 읽은 적 있습니다. 그것은 '숯'이라는 하나의 재료가 곧 '문명권의 메세지'로서 의미화 시킬수 있다는 뜻도 되겠습니다. 제 작품을 보시는 분들에게 '숯 작품'이 우리 문화에 대한 근간을 환기시켜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전시는 2017년 1월 8일까지 이어진다.

h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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