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창작뮤지컬, 새로운 길 찾다…'마타하리'

기사등록 2016/03/30 10:01:18 최종수정 2016/12/28 16:50:03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창작뮤지컬 '마타하리' 프레스콜 행사가 열린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옥주현(마타하리)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4년 여의 제작과정 끝에 선보이는 뮤지컬 '마타하리'는 관능적인 춤과 신비로운 외모로 파리 물랑루즈에서 가장 사랑 받는 무희였던 마타하리의 삶을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 했으며 20세기 초 화려한 파리를 재현한 무대와 의상이 어우려지는 공연이다.  2016.03.29. scchoo@newsis.com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올해 최대 기대작인 '마타하리'가 창작뮤지컬의 또 다른 길을 보여줬다. 29일 밤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통해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에 뒤지지 않는 화려한 무대와 조명의 위용을 드러냈다.  

 EMK뮤지컬컴퍼니가 3년여 간 제작비 125억을 쏟아부은 것이 오롯이 드러났다. 제작비의 8할이 무대 세트 제작에 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규모를 자랑했다. 창작은 물론 라이선스 뮤지컬보다 훨씬 많은 29대의 자동화기기의 움직임으로 인해 무대 세트가 마치 또 다른 배우처럼 시시각각 변주됐다.

 EMK뮤지컬컴퍼니는 '모차르트!' '엘리자벳' '황태자 루돌프' '팬텀' 등 유럽 중세를 배경으로 한 라이선스 뮤지컬로 입지를 다져왔다. '마타하리'는 이 회사의 첫 창작뮤지컬이다. 그간 노하우를 반영하듯 주요 스태프는 외국 창작진으로 꾸렸다. 실존 인물인 마타하리를 뮤지컬로 만들자고 EMK뮤지컬컴퍼니에 제안한 프랭크 와일드혼과 미국 뮤지컬 연출가 겸 안무가 제프 칼훈이 주축이다.

 와일드혼은 넘버 '지금 이 순간'으로 유명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히트 이후 '황태자 루돌프' '몬테크리스토'로 EMK뮤지컬컴퍼니와 작업하며 국내 뮤지컬계에서 마니아층을 구축한 인물이다. 칼훈은 뮤지컬 '뉴시즈'로 토니상 최우수 연출 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하이스쿨 뮤지컬' '올리버' 등을 지휘했다. 여기에 아이반 멘첼(대본), 잭 머피(작사), 제이슨 하울랜드(편곡·오케스트레이션·음악감독)가 힘을 실었다.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창작뮤지컬 '마타하리' 프레스콜 행사가 열린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출연 배우들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4년 여의 제작과정 끝에 선보이는 뮤지컬 '마타하리'는 관능적인 춤과 신비로운 외모로 파리 물랑루즈에서 가장 사랑 받는 무희였던 마타하리의 삶을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 했으며 20세기 초 화려한 파리를 재현한 무대와 의상이 어우려지는 공연이다.  2016.03.29. scchoo@newsis.com
 주요 스태프만 보면 과연 한국산 창작뮤지컬인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뮤지컬 '드라큘라'의 4중 턴테이블 무대로 호평 받았던 오필영 무대 디자이너의 무대의 메커니즘은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원형 모양이 아닌 한쪽 끝이 뭉뚝한 삼각형 모양의 턴테이블은 끊임없이 다양한 공간감을 입체적으로 연출한다. 대형 뮤지컬의 오케스트레이션을 도맡는 김문정 음악감독과 그녀가 이끄는 더 엠시(M.C)의 탄탄한 연주력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 컴퍼니와 미국 스태프가 협업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소재로 만든 뮤지컬은 오히려 한국적인 것에 대한 강박관념을 넘어서며 또 다른 창작뮤지컬의 세계가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앞서 충무아트홀이 영국 작가 M W 셸리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창작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이 국내 창작진 만으로 같은 사례를 보여준 바 있다. '프랑켄슈타인'이 장르적 문법에 충실한 새 기준의 창작뮤지컬을 보여줬다면 '마타하리'는 마타하리의 정서와 감수성을 원동력으로 삼아 긴장과 이완을 조절해나간다.

 제1차 세계대전 중 2중 스파이 혐의로 프랑스 당국에 체포돼 총살당한 아름다운 무희 '마타하리'(마가레타 거트루이다 젤러)의 실화가 바탕이다. 마타하리가 사랑한 유일한 남자인 파일럿 '아르망', 마타하리에게 스파이가 될 것을 제의한 프랑스군 대령으로 투철한 사명감을 지니고 있지만 점점 그녀에게 이끌리는 '라두'의 이야기가 섞여 들어간다.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창작뮤지컬 '마타하리' 프레스콜 행사가 열린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출연 배우들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4년 여의 제작과정 끝에 선보이는 뮤지컬 '마타하리'는 관능적인 춤과 신비로운 외모로 파리 물랑루즈에서 가장 사랑 받는 무희였던 마타하리의 삶을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 했으며 20세기 초 화려한 파리를 재현한 무대와 의상이 어우려지는 공연이다.  2016.03.29. scchoo@newsis.com
 다만, 인물들의 감정에 기반해 이야기를 밀고 나가다보니 종종 이야기가 늘어진다는 느낌이 든다. 빠른 무대 전환의 속도감을 쫓아가지 못하니 흐름에 공백이 생기는 것이다. 대사에 감정의 힘을 실어주기 위한 음악인 '언더스코어'로 지루함을 덜어내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러닝타임을 덜어낼 필요가 있다. 25~27일 프리뷰의 러닝타임은 3시간 가량이었다. 라두 대령의 아내 캐서린의 1막 솔로 넘버, 앙상블들의 무대 등을 덜어내며 10분 정도 줄였는데 조금 더 압축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장면마다 무대를 중심으로 한 볼거리가 넘쳐 조정이 쉽지 않을 것로 보인다. 뮤지컬 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장면마다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그 노력이 아까워서라도 덜어낼 장면을 쉽게 고르지 못할 정도"라고 말했다.  

 마타하리의 지난한 인생을 중심으로 한 스토리 라인은 따라갈 만하다. 어릴 때 자신을 겁탈한 삼촌, 하녀를 겁탈한 전 남편 등 남자에게 수차례 배신감을 느낀 마타히리가 아르망에게 쉽게 마음의 문을 연다는 설정은 사실 납득하기 힘들다. 그러나 뮤지컬 무대에서 남녀 간의 벽을 순식간에 무너뜨리는 마법 같은 순간으로 수긍이 된다. 사전에 노출되지 않은 아르망에 대한 또 다른 정보는 1막의 흥미를 배가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창작뮤지컬 '마타하리' 프레스콜 행사가 열린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옥주현(마타하리)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4년 여의 제작과정 끝에 선보이는 뮤지컬 '마타하리'는 관능적인 춤과 신비로운 외모로 파리 물랑루즈에서 가장 사랑 받는 무희였던 마타하리의 삶을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 했으며 20세기 초 화려한 파리를 재현한 무대와 의상이 어우려지는 공연이다.  2016.03.29. scchoo@newsis.com
 와일드혼 특유의 한국 대중가요 같은 멜로디에 기반한 넘버는 무난하다. 36곡을 4년에 걸쳐 완성했는데 인도 지방의 음악, 아메리칸 재즈, 드뷔시 등 클래식음악을 아울렀다. 아르망과 라두 대령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표현한 '남자 대 남자', 마타하리가 1막에서 절규하는 '어딘가'가 특히 귀에 들어온다. 하지만 넘버들이 전체적으로 음이 높아 피로도가 쌓이는 흠이 있다.

 이날 무대에 오른 배우들도 성공적인 프리미어의 공헌자다. '옥주현의 옥주현에 의한 옥주현을 위한' 수식이 나돌 정도로 옥주현의 마타하리는 기대를 모았는데 그녀는 이름값을 톡톡히 해낸다. 1910년대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지난함을 표현한 이 뮤지컬에서 넘버마다 알맞은 연기력을 과시한다. 주요 라이선스 작품의 국내 초연을 도맡는 류정한은 역시 안정된 연기력을 선보인다. 자신의 욕망으로 마타하리를 수렁으로 몰아넣는 라두 대령에 품위를 부여한다. 하지만 바리톤 음역인 그가 너무 많은 고음을 소화해야 해서 후반으로 갈수록 목 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가창이 종종 불안하기는 했으나 송창의는 순수한 아르망의 캐릭터에 덧 없이 어울렸다. 노래, 춤 뿐 아니라 잠깐 보여주는 연기력까지 갖춘 앙상블들의 실력이 탄탄한 점도 눈길을 끈다.  

 임춘길이 맡은 MC, 즉 극의 해설자이자 사회자 역은 프리뷰 기간 호불호가 크게 나뉘었다. 마타하리에게 감정을 이입하는데 방해가 되는 등 사족이라는 것이 불호의 큰 이유였다. 작가인 멘첼은 "MC와 (마타하리의 물랭루주 무대의상 담당자인) 안나가 마타하리라는 인물을 만들어준 아버지, 어머니 같은 역"이라며 "마타하리 삶 자체가 연극적이었다. 현실과 공연이라는 경계선이 희미했는데 MC가 그녀의 인생을 이야기로 전달하는 것이 걸맞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창작뮤지컬 '마타하리' 프레스콜 행사가 열린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출연 배우들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4년 여의 제작과정 끝에 선보이는 뮤지컬 '마타하리'는 관능적인 춤과 신비로운 외모로 파리 물랑루즈에서 가장 사랑 받는 무희였던 마타하리의 삶을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 했으며 20세기 초 화려한 파리를 재현한 무대와 의상이 어우려지는 공연이다.  2016.03.29. scchoo@newsis.com
 이날 초연에 '월드 프리미어'라는 수식을 단 이유는 '마타하리'가 해외 진출을 계획 중이기 때문이다. 앞서 '프랑켄슈타인'이 일본 진출을 확정했는데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소재로 창작 뮤지컬을 만들어가는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김준수·홍광호를 앞세운 라이선스 뮤지컬 '데스노트'로 흥행에 성공한 씨제스컬처는 첫 창작 뮤지컬로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바탕으로 한 '도리안 그레이'(프로듀서 백창주·연출 이지나·작곡 김문정)를 준비하고 있다.  

 '마타하리'가 앞서 '명성황후' '영웅' 등 말 그대로 한국적인 뮤지컬로 해외 진출을 꾀한 방식에서 벗어나, 다른 길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험대에 올랐다.

 6월12일까지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마타하리 옥주현·김소향, 아르망 엄기준·송창의·정택운, 라두 대령 류정한·김준현·신성록. 프로듀서 엄홍현, 협력 프로듀서 김지원, 편곡 & 오케스트레이션 & 음악감독 제이슨 하울랜드, 한국 음악감독 & 지휘 김문정, 한국어가사 & 협력연출 권은아, 드라마트루기 이단비, 무대디자이너 오필영, 의상 디자이너 한정임. 러닝타임 170분(인터미션 20분 포함). 6만~14만원. EMK뮤지컬컴퍼니. 1577-6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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