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멸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욕망, 국립무용단 '적'(赤)

기사등록 2015/06/09 18:29:39 최종수정 2016/12/28 15:07:44
【서울=뉴시스】조인우 기자 = 국립무용단의 신작 '적'(赤)은 자신의 재능을 표출할 수 없이 어딘가에 속박돼 있던 주인공 '연화'가 세 남자를 만나 춤에 대한 스스로의 욕망을 깨닫는 과정을 추적한다.

 멈추지 않는 구두를 신고 발이 잘려나갈지라도 춤을 추는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아슬아슬한 벼랑 끝에서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춤을 계속 추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 작품이다.

 9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구성·연출을 맡은 임필성 감독은 "현대사회에서 욕망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우리 모두는 결국 벼랑 끝에서 춤추는 무용수와 같다"며 "결국 폭주하게 되지만 그 자체만으로 아름다운 욕망에 대해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마담 뺑덕'(2014) '남극일기'(2005) '인류멸망보고서'(2011) 등 영화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 임필성 감독의 연출을 무대로 옮겨 영화적인 묘사와 공연의 경계에 도전했다. LED 선 조명을 소품처럼 이용해 입체적인 무대를 구현했고, 그 선 위에서 외줄타기 하듯 춤을 추는 무용수들의 모습으로 위태롭게 비틀거리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했다.

 대사 없이 춤으로만 이뤄지는 무용극이지만 단순화한 줄거리와 무용수들의 섬세한 연기를 통해 스토리텔링도 더욱 강화했다. 최진욱 안무가는 "저희들은 무용수를 배우라고 부른다"며 "다소 추상적일 수 있는 부분들도 그들의 연기를 통해 관객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처음으로 장편 작품 안무를 맡은 국립무용단 수석무용수 최진욱이 보여주는 한국무용 특유의 감칠맛이 더해졌다. 순수 창작작업이기 때문에 한국무용과 현대무용 사이에 선을 긋지 않았지만 안무가와 출연진 모두가 "수 년 간 한국무용을 하면서 내재된 호흡과 움직임"은 빠른 움직임 속에도 특유의 깊이를 선보인다. 한국무용 공연에서는 보기 어려운 애크러배틱(acrobatic)한 군무, 남성 2인무 등 다양한 움직임도 돋보인다.

 '적'(赤)의 출발이 된 음악은 '도가니'(2011) '악마를 보았다'(2010) 등의 영화음악 감독으로 알려진 작곡가 모그가 맡았다. 극에 음악을 덧입히는 기존의 작업방식과는 달리 가장 먼저 모그의 음악으로 극의 틀을 세웠다. 모그는 "출발하는 시점에 음악작업을 하다 보니 평소에 음악에 대해 갖고 있던 욕망이 많이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 결과 국악과 민속음악을 기반으로 했지만 아프리칸, 라틴 음악적 요소가 섞인 음악이 탄생했다. 한국적인 가락을 신디사이저와 퍼커션 등 서양의 악기로 표현하며 묘한 음질을 내 역동성과 긴장감을 극대화했다.

 임필성 감독은 '적'(赤)을 "전 세계적인 공감대를 얻을 수 있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안데르센의 '빨간 구두'를 모티브로 해 스토리텔링을 강화했고, 한국적인 색채를 모티브로 한 춤과 음악에 서양의 요소를 적절히 배합했기 때문이다.

 의상에는 브랜드 '푸시버튼'(pushBUTTON)의 디자이너 박승건이 참여해 현대적이고 동시에 독특한 감성을 더했다. 송설, 조용진, 이석준, 이재화, 박혜지가 출연한다. 6월11일부터 13일까지. 2만~5만원.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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