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랜드 이야기(54)]카지노와 꽁지⑥

기사등록 2014/05/19 11:13:02 최종수정 2016/12/28 12:46:47
【정선=뉴시스】홍춘봉 기자 = 강원랜드 사채업자(꽁지)가운데 대다수가 사업에 실패했지만 일부는 상당한 재산을 축적한 꽁지도 있다.

 황금알을 낳는다는 카지노 사채업에서 실패한 꽁지들의 공통점은 게임을 하면서 번 돈을 탕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A씨 형제는 3년간 강원랜드 VIP에서 200억원을 번 전설을 만들었다.

 스몰카지노 시절부터 사채업을 시작한 이들은 2004년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당시 이들은 순수하게 사채로만 하루에 억대의 돈을 버는 날이 많았다.

 A씨의 회고.

 "메인카지노가 개장하고 이듬해인 2004년에는 전국에서 내노라하는 돈 많은 갑부들이 몰려들면서 강원랜드 VIP는 절정기를 누렸다. 당연히 밤에 돈을 잃은 큰손 고객들은 사채를 빌릴 수밖에 없었다.

 보통 하루에 1할 이자를 받는 고리대금이라도 몇 억을 잃으면 열이 받아 본전을 찾거나 돈을 딸 욕심에 비싼 이자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당시에는 하루에 몇 억씩 버는 날이 많았다.

 지금 기억으로 최고로 많이 번 날은 하루저녁에 8억3000만원을 번 날도 있었다. 당시 디퍼런스 게임을 하는데 고객이 플레이에 1억원을 베팅하면 다른 고객이 벵커에 1억1000만원을 베팅한다. 이런 손님에게 하루에 10억원 이상 빌려 주기도 했다.

 우리 돈을 빌린 뒤 돈을 딴 고객은 원래 이자 외에도 추가로 기분이 좋다고 몇 백만원, 몇 천만원 덤으로 받는 일도 많았다. 당시에는 이렇게 하면 대한민국 돈을 다 끌어 모을 수 있을 것으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 해서 불과 3년만에 쓸 것 쓰고도 사채로만 200억원을 벌었다."

 그러나 '봄 날'이 항상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결국 카지노에 손을 대다가 200억원을 다 날린 시간은 2년이 되지 못했다.

 A씨의 씁쓸한 회고담.

 "마카오에 가서 3일 만에 24억을 날렸다. 당시 랜드마크 VIP룸에서 베팅하느느데 중국인 겜블러와 씩씩하게 베팅하다가 열이 받아 거액을 날린 것이다. 서울에서 통장으로 게임머니를 입금하고 그 만큼의 칩을 받아 게임을 했다.

 나중에 외환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됐지만 며칠 만에 사건을 조용히 마무리 짓기도 했다. 또 강원랜드에서 게임을 마치는 오전 6시부터 사북이나 고한의 하우스로 옮겨 도박을 하기도 했다. 속칭 바둑이 게임인데 강원랜드 VIP 고객들이라 보통 1인당 몇 억의 판돈을 갖고 도박했다.

 당시에는 골프연습장과 고한 주공아파트 및 사북의 상가에서 옮겨가며 도박을 했다. 여기서도 사채업이 이어졌다. 이자로 하루에 1할이 공제됐다. 그러나 이런 하우스에서 게임에 빠져 전 재산을 날리고 말았다."

 필리핀과 마카오 원정도박에 나서기도 한 A씨는 몇 차례 경찰에 외환관리법과 불법 도박혐의로 구속됐지만 두 번을 제외하고 곧바로 석방됐다. 이 바람에 그를 아는 사람들은 '불사조'라고 불렀다. 그를 대단한 파워를 가진 정치권 인사나 검경에 큰 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원주에서 저축은행 대출담당 간부로 일했던 S씨는 월급 말고도 한 달에 보통 5000만원 이상을 버는 '실력가'였다.

 부동산 경매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그는 운이 좋았을 때는 대출 커미션과 경매 커미션으로 한 달에 최고 수억원을 벌기도 했다. BMW를 몰 정도로 돈 씀씀이도 좋았던 그는 룸살롱에 자주 출입하면서 어여쁜 아가씨와 동거하는 일이 일상이 됐다.

 저축은행 고위 간부보다 더 많은 돈을 번 그는 명품 양복과 명품시계는 물론 모든 것이 명품 일색이었다.  술값과 주점 아가씨에게 한 달에 수천 만원을 펑펑 쓴 S씨는 강원랜드 VIP 회원으로 등록해 게임을 즐겼고 한 달에 여러 차례 마카오, 필리핀에도 원정도박에 나갔다. 해외여행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가능했다.

 S씨를 잘 아는 강원랜드의 한 고객은 "저축은행에서 보통 한 달에 수천만원 버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1년에 몇 개월은 한 달에 수억원을 버는 일도 많았다. 부동산에도 투자했지만 고급 주점 아가씨와 유흥비로 탕진하는 돈도 한 달에 수천만원이 넘었다.

 그보다 그는 카지노에 게임으로 탕진한 돈이 훨씬 많았다. 필리핀과 마카오에 자주 원정도박에 빠진 그는 외환관리법과 저축은행법 위반 등으로 검찰이 구속하려 하자 2011년 필리핀으로 도피했다."

 지난 2005년 강원랜드 VVIP룸에서 태백출신 VIP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방에서 만나 판을 벌였다.  

 건설업으로 돈을 번사람, 유산을 상속받아 수십억 재력을 가진 중소기업 대표, 부동산을 물려받아 졸부가 된 사람, 건설업 시행사로 돈을 번사람, 카지노에서 사채로 돈을 번 사채업자 등 6명이었다.

 이들은 이날 밤샘 바카라를 통해 '끝장 게임'을 펼쳤다. 결국 3년 이상 꽁지로 20억원대의 재력을 갖춘 사채업자 영철이(가명. 34)는 이날 게임으로 돈을 모두 날리자 젖먹이 아들과 사랑하는 부인을 남겨 둔채 호텔 객실에서 목을 메 자살했다.

 당시 게임을 지켜본 이모(48)씨는 "태백에 거주하는 VIP고객들이 모두 수십억에서 수억 이상을 들고 겨루기 게임을 했다. 밤샘 게임에서 한 명이 수년간 모은 돈을 몽땅 탕진하는 바람에 게임이 종료됐다. 그는 결국 곧장 자살하고 말았다.

 당시 게임했던 사람들은 모두 지금 처지가 당시와 비교될 정도로 어려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다행히도 한 명은 도박을 끊고 성실하게 살고 있다. 태백에서 카지노 사채업에 뛰어든 사람들은 처음에는 돈을 잘 번다고 좋아했지만 나중에는 모두 실패했다. 카지노는 답이 없다."

 수완이 좋은 박대식(가명)씨는 지난 2005년 강원랜드 인근 태백산도립공원 입구에 불법 카지노바를 차려 70억 가량을 번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안타깝게도 카지노 도박에 빠져 카지노바에서 번 재산을 몽땅 탕진하고 말았다.

 박씨의 가슴 아픈 회고. "강릉관광호텔 지하에서 성업중인 카지노바를 보고 태백산도립공원 당골광장 입구에 카지노바를 차렸다. 바카라 테이블 3대와 블랙잭 테이블 1대 등 4대에 불과했지만 하루에 수억 이상을 벌었다.

 딜러는 하루 일당 50만원에 계약하고 강원랜드 출신 딜러 11명을 채용했다. 카지노바 개장 소식을 듣고 고객들이 밀려드는데 자리가 부족할 정도였다. 불과 22일 만에 문을 닫았는데 70억원을 벌었다. 당시 카지노바가 잘 된다는 소문을 듣고 서울 장안동에서 유흥주점을 운영하는 사람이 찾아와 이를 보고 장안동 자신의 점포에 카지노바를 차려 대박이 나기도 했다.

 당시 딜러들이 카지노바가 큰 돈을 버는 것을 보고 일당을 더 올려 달라고 하면서 이틀간 출근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문을 닫았다. 그런데 경찰이 문을 닫은 상황에 카지노바를 들이닥쳤지만 나는 무사할 수 있었다.

 경찰 조사에서 나는 카지노 게임테이블은 연습하려고 설치한 것이고 영업을 한 사실이 없다. 이렇게 진술했다. 경찰은 정확한 정보를 듣고 급습했지만 불법 영업현장을 덮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쉽게 번 돈을 쉽게 나가는 것이라는 말처럼 카지노 게임에 빠져 몽땅 탕진했다. 70억원의 돈을 카지노 게임에서 모조리 탕진한 것은 도박에 중독된 때문이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후회막급이다."

 <계속>

 casinohong@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