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올림픽 메달 따도 군대가자’ 병역혜택의 불편한 진실
기사등록 2014/02/17 07:54:39
최종수정 2016/12/28 12:18:11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미국에서 소치올림픽은 보기가 쉽지 않다. 물론 ‘한국에 비해서’라는 상대적 개념이다. 대부분의 경기는 시청률이 높은 시간에 녹화 편성되고 미국이나 유럽 선수 위주로 소개하기 때문에 한국 선수들의 경기를 보기란 가뭄에 콩나는 격이다. 덕분에 미주 한인들은 한국 포탈의 접속빈도수가 훨씬 늘었을 게다.
요즘 인터넷 공간에서 최대의 키워드는 두 말할 것 없이 ‘안현수’다. 러시아에 귀화한 것도 전례없을 뿐더러 8년만의 드라마틱한 금메달, 한국의 졸전, 과거 문제까지 겹치며 뜨겁다 못해 터질것 같은 느낌도 든다.
한국에선 이성보다 감정이 우선하는 이슈가 있다. 바로 병역 문제다. 쇼트트랙의 신다운이 5000m 계주 실패 이후 선배를 감싸려다 더 큰 비난의 융단 폭격을 맞은 것도 바로 병역 문제를 정면으로 입에 올렸기 때문이다. 현행 법규상 올림픽에서 동메달만 따도 병역 면제인데, 결승 문턱에서 미끄러졌으니 선수들의 안타까움은 정말 컸을 것이다.
네티즌들은 노메달에 그친 우리 선수들과 대조적으로 러시아 선수들을 이끌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안현수를 보면서 들끓었다. 부상과 파벌주의의 희생양으로 러시아로 귀화했다는 동정론과 국내 빙상계에 대한 비난이 상승 작용을 하며 태극 마크의 선수들을 제압하고도 영웅이 되는 희귀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동계올림픽 통산 8개의 메달을 따낸 미국의 아폴로 안톤 오노는 안현수를 두고 “부상이 아니었다면 쇼트트랙 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결과론이지만 안현수가 올림픽에 3회 연속 출전했다면 통틀어 10개도 넘는 메달을 수확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부상이 없었다 해도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왜일까?
학연 지연 인맥 등 파벌 문제는 다른 스포츠에도 존재한다. 유독 쇼트트랙에서 문제가 심화된 것은 두터운 선수층을 바탕으로 무더기 금을 수확하는 종목의 특수성도 거들었다. 특히 남자 선수들은 계주 동메달만 따도 4명이 병역 혜택을 받으니 대표 발탁 자체가 군 면제로 가는 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가 가도 ‘우승권’인 쇼트트랙은 올림픽 때마다 돈과 명예, 군 면제의 포상을 골고루 나눠야 하는 그들만의 속사정이 있는지도 모른다. 페어플레이 정신과 어긋나는 양보나 담합을 거부하고 실력대로 최선을 다하겠노라 고집(?)한다면 “제것 챙기고 남의 몫까지 빼앗는 이기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지난번 런던 올림픽 축구에서 홍명보 감독도 한 경기도 출장치 못한 제자에게 군면제 혜택을 주기 위해 종료 직전 ‘4분 출장’의 눈물겨운 배려를 했다. 그러나 지도자는 잘못이 없다. 규정이 그렇게 만든 것이니까. 남자 선수들에게 병역 면제는 어떤 포상보다 달콤하다. 신다운의 ‘실언’은 모두가 알고 있는 ‘불편한 진실’이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올림픽 포상을 한다. 미국의 경우 1만~2만5000 달러 수준의 포상금을 지급하지만 대개 선진국들보다는 중진국이나 후진국들이 많다. 우리나라가 스포츠 포상 제도를 만든 것은 올림픽에서 금메달 한 개도 따기 어렵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국력의 강화와 함께 하계올림픽에선 금메달을 두 자리 숫자로 따내고 동계올림픽에서도 다양한 종목에서 메달을 수확하고 있다. 올림픽 포상은 금전 혜택으로 국한하고 군 면제 조항은 삭제를 검토해야 할 때다.
병역 면제는 군 입대로 경기력이 저하되는 것을 막기 위한 취지였지만 그것이 지상과제가 되면서 신성한 병역의 가치는 지속적으로 훼손돼 왔다. 국민개병제의 현실에서 병역은 선심의 대상이 되어서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서도 안 된다. 당연히 병역 의무를 부과하되 군에 가서도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게 아닌가.
장담컨대 군 면제 혜택만 폐지해도 쇼트트랙에서 거론되는 파벌 등 부조리의 절반은 사라질 것이다. 더불어 초등학교 때부터 수업은 도외시하고 선수로 키우는 ‘후진국형 엘리트 스포츠’를 척결하고, 학교 체육 정상화로 저변을 확대해 엘리트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선진국형 구조로 바꿔야 한다.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자랑스럽게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언제나 볼 수 있을까?
robi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