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관람포인트]수녀원 실체 파헤치다, 금서원작 영화 ‘베일을 쓴 소녀’

기사등록 2014/01/23 17:41:26 최종수정 2016/12/28 12:11:28
【서울=뉴시스】김태은 문화전문기자 = 23일 개봉한 프랑스 영화 ‘베일을 쓴 소녀’(감독 기욤 니클루)는 2013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에 노미네이트된 아름다운 화면의 시대극이다.

 수녀원이라는 외부에 노출되지 않은 공간을 염탐하는 호기심으로 접근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작품의 원작소설과 1966년 영화화된 작품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본다면, 보다 풍부한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

 18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계몽주의 사상가이자 철학자, 문필가인 드니 디드로(1713~1784)가 쓴 ‘수녀’가 원작이다. ‘백과전서파’답게 소설에서도 종교적 도그마를 타파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으로 이뤄진 사회를 실현하려는 견해가 배어난다. 신본주의가 지배하는 교권정치 체제에서 그의 사상은 불온한 것으로 취급돼 유물론적 내용을 담은 ‘장님에 관한 편지’ 때문에 투옥되기도 했다. 

 ‘수녀’는 1760년 초고가 완성됐지만 당시에는 출판보다는 친구인 크루아미르 후작을 속이려는 장난 목적으로 쓰여졌다. 결국 디드로 사후인 1796년에야 책으로 발간됐는데도 수도원(수녀원) 제도에 대한 비판과 반종교적 메시지 탓에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 여러 지역에서 금서 판정을 받았다. 부모의 강요로 억지로 수녀가 된 수잔느 시모넹이 자신의 과거를 알리고 도움을 청하는 서간체 형식으로, 동성애자 수녀원장의 일탈적 성행위가 적나라하게 묘사돼 그 선정성도 금서 지정의 이유가 됐다.

 1966년 프랑스 누벨바그의 대표적 감독 중 한 명인 자크 리베트(86)에 의해 먼저 영화로 옮겨졌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에까지 오른 이 작품은 기독교를 빈정대는 대사들로 가톨릭계의 분노를 사 프랑스 검열당국에 의해 2년간 상영금지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미장센에 치중한 2013년 작보다 수잔느의 탈출 후 고난, 자살이라는 보다 잔혹한 과정과 결말을 지녔다.

 기욤 니클루(48) 감독은 ‘자유를 향한 소녀의 치열한 싸움’이라는 시대를 초월한 테마에 초점을 맞췄다. 16세 소녀의 순수한 눈으로 본 비인간적인 가톨릭 내부의 부패와 잔인함이 다소 담담하게 그려지며, 프랑스 드라마의 문법처럼 여겨지는 얼굴 클로즈업을 통해 등장인물의 감정에 동조하도록 만든다. 보통 프랑스 영화가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다른 문화적 배경으로 인한 감정의 절제 때문이다. 그 섬세한 감정결의 변화를 따라가며 수잔느(폴린 에티엔)의 운명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실제로는 누가 수잔느의 편이고 적인지 같은 미스터리를 놓치지 않는다면 한결 수월하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이기심, 가족의 이름으로 강요되는 희생, 더불어 인간 본성을 억압하는 폐쇄된 장소나 조직 내에서 인간성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 맹목적 믿음이 어떠한 폭력을 부를 수 있는지, 현실에 대입해볼 수 있다.

 회계사의 세 딸 중 막내인 수잔느는 두 언니를 시집보내며 쓴 지참금으로 가세가 기울게 되자 수녀원으로 보내진다. 신심을 잃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수녀가 되는 것이 자신의 숙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집으로 돌아온 수잔느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교구신부는 “인간은 다 이기적이야, 자기만 잘 살면 되는거지. 아이를 가진 언니들은 한 푼이라도 더 챙기려 할테고, 세상이 다 그런 것”이라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그녀의 출생 비밀을 알려주고, 어머니(마르티나 게덱)조차 남편에게 자신의 불륜이 들통날까싶어 “네가 죄로 잉태됐으니, 이렇게 속죄하자”며 그녀에게 원죄를 덧씌운다.

 서원을 거부한 그녀를 다시 받아주겠다는 곳은 드 모니 원장수녀(프랑수와 레브런)가 운영하는 수녀원뿐이다. 기절했던 수잔느가 깨어나보니 따뜻한 모성애를 지닌 드 모니는 부모에 의해 돈을 주고 맡겨진 정신병자 수녀에게 살해당했다고 하고 보수적이고 냉혹한 새 수녀원장 크리스티나(루이즈 보르고앙)가 부임해있다. 젊은 크리스티나는 수녀로서의 소임을 받아들이지 않은 수잔느를 “마귀에 씌었다”며 핍박한다. 다른 수녀들은 수용소 포로처럼 온갖 모욕과 엄청난 학대를 견디는 그녀를 ‘왕따’시키며 괴롭힐 뿐이다. 원장수녀가 명령하는 잔혹행위에 순순히 동조한다.

 우여곡절 끝에 옮겨가게 된 수녀원의 상트-유트로프 대수녀원장(이자벨 위페르)은 ‘반전’이 있는 인물이다. 수잔느를 아끼는 듯 보여지지만 알고보니 레즈비언이다. 그녀는 네 살 때 고아가 된 아그네스처럼 의지할 데 없는 수녀들만 골라 성애의 대상으로 삼는 듯 보인다. 다만 이 이중적인 수녀를 다소 동정이 가도록 애처로운 캐릭터로 만든 것은 이자벨 위페르(61)의 애정결핍불안증 환자 같은 연기 덕분이다.

 후반부는 그녀의 신들린 듯한 연기의 비중이 커지며 다소 주제가 흐려진다. 하지만 칸, 베니스, 베를린 등 세계3대 영화제를 비롯해 유수 국제영화제를 휩쓴 경력의 이 여배우는 ‘너무나 인간적인’ 수도자의 감정기복을 압도적 연기력으로 펼쳐보인다.

 사실 여주인공이 겪는 고행은 아름다운 외모와 고풍스러운 배경, 고급스런 색채의 화면미학 속에서 공중에 붕 떠있는 듯 절실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극적이면서도 깔끔한 결말과 더불어 기욤 니클루 감독의 미적 감수성은 일부 마니아의 마음을 확연히 사로잡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까지 잊지 말아야할 것은 이 작품에 원작자 드니 디드로의 자전적 요소가 담겨있다는 점이다. 니클루 감독은 “디드로가 애정을 쏟았던 여동생은 28세에 수녀원에서 정신병으로 죽고, 본인도 13세의 나이에 삭발을 당하고 아버지에 의해 수도원에 넣어졌다”고 전했다.

 국내에도 번역 출간된 미국 역사학자 크레이그 할라인의 ‘마가렛 수녀는 왜 모두의 적이 되었는가-17세기 수녀원의 내밀한 역사’는 당시 수녀원에서 벌어진 성희롱, 마녀사냥, 따돌림, 비리와 치부 등 부도덕한 일들에 대한 기록과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런 야만의 시대가 있었나 싶지만, 기독교의 힘이 미약해진 서구와 달리 국내에서는 오히려 변형된 일부 교회가 무모한 신앙으로 인간억압과 세속주의를 부활시키고 있음을 짚어볼만 하다. 권위적이고 몰상식한 부모로 인해 종교의 이름으로 희생되는 자식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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