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카트만두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약 2㎞ 떨어진 가파른 언덕 위에 한낮에는 바로 바라보기에도 눈부신 흰 스투파(불탑)가 솟아 있다.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사원이자 부처의 탄생을 기념하는 부다 자얀티 축제의 중심이며 카트만두 시가지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하는 스와얌부나트 사원이다. 이 사원은 1979년 유네스코가 등록한 카트만두 계곡에 있는 7개의 주요 문화재 가운데 하나로 네팔을 찾는 외국관광객이 반드시 들리는 네팔을 대표하는 불교적인 성지다.
네팔 불교미술의 정수를 잘 보여주기에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에 랭크된 이 사원을 오르려면 입구에서부터 385개의 계단을 밟던가 아니면 사원 바로 아래 언덕 중턱에 있는 문수보살 사원 옆 주차장까지 관광버스나 택시 등을 이용하면 된다. 대부분 외국인은 차량을 이용하기 때문에 네팔 물가를 생각하면 턱없이 비싼 입장료를 내야 하지만, 네팔인이나 중턱에 있는 문수보살 사원 등으로 간다고 하면 배낭여행객은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른 대가로 입장료 징수를 당하지 않는 행운을 선사 받기도 한다.
2005년 11월 SAARC(남아시아지역협력연합) 정상회의에서 인도의 과도한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네팔의 추천으로 중국에 SAARC 옵저버 국가 지위가 부여된다. 그 결과 네팔의 유적지를 입장할 때 중국을 포함한 SAARC 회원국은 100〜200루피를, 다른 외국인들은 400〜500루피를 내야 하는 불평등이 생겨났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장난삼아 중국인이라고 하면 여권을 보여달라고 했는데 요즘은 중국인이라고 하면 그냥 믿어준다고 할 정도로 수많은 중국인이 네팔로 여행을 오고 있다. 여하튼 중국인이라고만 말해도 할인받는 세계문화유산 가운데 스와얌부나트도 포함된다.
이 사원의 정상에는 흰 돔 위에 금빛으로 도금한 커다란 탑과 사원 전체가 카트만두 분지의 아름다운 풍경과 어우러진 장관이 펼쳐진다. 이 탑에는 카트만두를 수호하는 듯한 거대한 눈이 그려져 있다. 인간의 마음에 있는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있다는 영안 또는 부처의 눈으로 법안(法眼)이다. ‘제3의 눈’이나 ‘지혜의 눈’으로 불리는 두 개의 눈 아래에 그려진 물음표 모양은 네팔의 숫자 1을 형상화했다.
차량 번호조차도 아라비아 숫자를 거부하고 네팔 고유의 숫자를 사용하는 네팔의 숫자 1은 참으로 재미있는 모양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진리에 도달하는 것은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하나의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는 불교적 진리를 담은 세계적 불교 성지 스와얌부나트는 이제 불교가 아닌 힌두 왕국 속에 자리하고 있다. 소망의 촛불 디파(Dipa)를 공양해 올리는 사람들도 대부분 힌두교도다. 인구보다 많은 신을 섬기는 신들의 나라 네팔 사람들은 부처도 힌두교의 한 신으로 떠받들고 있다. 땅의 여신 바순다라, 바람의 신 바유 등 힌두교 신을 믿는 사원들이 줄줄이 곁에 늘어서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삼현은 보살이 되기 전 11위에서 20위까지의 십주(十住), 21위에서 30위까지의 십행(十行), 31위에서 40위까지의 십회향(十會向) 세 단계의 현인들을 말한다. 41위부터 50위까지의 십성은 진정한 보살의 경지에 이른 1지부터 십지(十地)까지의 보살을 일컫는다. 이 경지를 거치면 바로 부처님의 경지인 51위의 등각과 52위의 묘각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스와얌부의 13층 탑신은 바로 삶에서의 1위에서 10위까지의 십신(十信)을 거쳐 보살도를 거쳐 부처에 이르는 불교의 수행과정을 형상화했다.
탑신의 꼭대기 즉 스투파의 티(Hti)라고 하는 부분에는 황금색 공작새를 장식해 놓았다. 서남아시아에서는 코브라 등 뱀의 독으로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공작은 뱀의 천적으로 신성시된다. 불교에서는 공작명왕으로 뱀의 독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모든 재난을 제거하고, 천재지변을 진압한다고 하며 이를 본존으로 하는 수법이 행해졌다. 이러한 뜻에서 카트만두를 보호하는 수호존의 역할을 공작새 한 마리가 톡톡히 해내고 있다. 불행하게도 1833년과 1934년에 일어난 두 차례의 대규모 지진으로 카트만두 계곡이 붕괴하고 이 탑도 일부 파괴됐지만, 바로 복원됐다.
붓다가 태어난 룸비니 다음으로 신성시되는 스와얌부나트의 스투파를 한 바퀴 돌면 불경을 1000번 읽는 것만큼의 공덕을 쌓는 일이리라 믿고 있어 스투파 주변은 참배객들로 항상 북적인다. 다른 사찰은 사원을 왼쪽으로 시계방향으로 도는 순례 코라를 하려면 참으로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스와얌부나트는 마니차를 돌리며 돌아도 3분 이내에 마칠 수 있어 출근 전이나 퇴근 후에도 신자들은 발길을 재촉한다. 다만, 과일이나 초콜릿 등 공양물을 바치기 전에는 항상 주변의 원숭이를 살펴야 한다. 이곳은 멍키템플(Monkey Temple)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야생 원숭이의 집단 서식지로 유명하다. 원숭이들은 굉장히 눈치 빠르고 상당히 과격한 것으로 유명하다.
‘팍빠씽꾼까르착’에 의하면 이 탑의 이름은 스스로(스와) 태어남(얌부)을 뜻하는 스와얌부(自生)다. 과거칠불 가운데 두 번째 시기불 시대에 카트만두 지역은 커다란 호수였다. 다섯 가지 보석으로 만들어진 수레바퀴 크기의 1000개 꽃잎을 가진 연꽃이 피어나고 그 황금빛 꽃술 위에 높이 50㎝ 정도의 수정보탑이 저절로 생겨났다. 세 번째 비사부불 시대, 중국의 오대산으로부터 문수보살의 화신인 잠뺄하(聖文殊佛)가 이 법계어자재보탑(法界語自在寶塔)을 참배하러왔다. 그 때 아직 신통이 없는 제자들이 이 호수 속의 보탑을 예배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겨 호수의 남쪽으로 향하는 쪽에 날카로운 칼로 쳐서 절벽을 만들었다. 4일 밤낮으로 물이 빠져나가 그 뒤 누구나 이 보탑에 참배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전설에는 대탑 주변에는 과거 부처님들과 석가모니, 가섭존자, 세친보살의 사리들이 안치돼 있으며, 용수보살이 용궁에서 모셔온 반야경 16함과 뒷날 탑이 무너지면 보수하기 위해 큰 보물들을 숨겼다고 한다. 이 전설을 믿은 이슬람교의 벵골 군대는 1349년 탑을 낱낱이 해체하다시피 했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곧이어 복원된 이 탑은 16세기에 프라타파 말라 왕이 사원을 확장하고 단장했다고 하니, 큰 보물들은 금은보석이 아니라 말라왕을 포함한 사람들의 마음인 듯하다. 특히 이 탑은 말세가 와도 불타지 않는다고 부처님께서 예언했다. 인류멸망의 날에 이곳을 찾는다면 말세가 와도 불태울 수 없는 사람들의 맑고 밝은 마음이 진정한 보물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본 칼럼에 사용된 사진들은 NGO 나마스떼코리아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은 것으로 지면을 통해 감사함을 전한다.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galmu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