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쿰붐 사원의 칭하이 불교연구소 정치학 강사인 체파 톱덴은 “불교 신자들은 종교적으로 달라이 라마에 대해 믿음을 갖고 존경을 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칭하이성 싱하이(光海)현에서 열린 티베트 불교 지도자 회의에서도 몇몇 라마승들이 “지금부터 달라이 라마의 사진을 전시할 수 있고 아무도 그를 욕함으로써 비판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정부 문서를 읽었다.
같은 날 니마 도제(尼瑪多吉) 티베트자치구 통신관리국 부국장은 지난해 말까지 티베트 내 유선전화와 휴대전화 사용자 276만 명과 인터넷 사용자 147만 명이 실명을 등록함으로써 인터넷과 전화 실명제를 확립돼 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로써 이 지역의 티베트인에 대한 감시체제가 대부분 확립됐다. 달라이라마 흠집 내기, 티베트에 기독교 선교 허용 등을 통해 티베트를 분열시키려던 중국정부가 감시체제를 완성해나가면서 한편으로는 계속되는 분신에 주춤해 짐짓 놀라는 모습을 보이며 유화적인 행동을 취하는 듯하다.
지난 24일 중국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영국의 헤이그 외무장관이 중국의 주권과 영토의 완전보존을 존중하며 티베트가 중국 일부분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티베트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이 때문에 올해 하반기 캐머런 총리의 방중 길이 열릴 것 같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면담한 이후 영·중 외교관계는 급랭했다. 올해 상반기 추진됐던 캐머런 총리의 방중(訪中)도 무산됐고, 지난 5월 리커창 총리가 유럽을 순방할 때도 영국은 들리지 않았다.
이에 중국은 캐머런 총리의 사과 등을 요구하며 영국에 대한 투자 중단 등의 움직임을 보인 바 있다. 결국, 중국 외교가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난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 두 손을 든 영국의 모습에 서구 유럽은 달라이라마와의 관계설정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6월 26일, 2010년 9월 이후 외교관으로서는 처음으로 게리 로크 주중 미국대사는 티베트자치구를 방문, 중국 당국에 외국 외교관과 언론인, 관광객들이 좀 더 자유롭게 티베트를 방문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촉구했다. 영국의 일방적인 항복 선언에도 여전히 할 말 다하는 G1 미국이 부러운 대목이다.
6월 27일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칭하이(靑海)성과 쓰촨(四川)성에서 승려들이 공개적으로 달라이라마를 종교 지도자로 숭상하는 것을 허용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미국 컬럼비아대학 현대티베트연구프로그램의 로비 바넷 국장은 지난 20여 년간 중국의 티베트 정책이 동결됐음을 지적하며 일부 관료들이 2∼3개 지역에서 정책 조정을 시험할 권한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티베트 문제는 중국정부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나아가 달라이라마와 티베트망명정부의 지금까지의 태도를 이해한다면 쉽게 진단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매우 복잡하고 미묘하면서 민감한 문제다. 하지만 핵심적인 관건은 백여 명이 넘는 분신에도 아직 서로 굳이 화해할 이유가 그다지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쉽게 국면이 전환될 것이라고 보는 것은 그냥 희망에 가까운 것일 수 있다.
티베트를 비롯해 정치적인 문제는 빙상의 일각을 봐서는 속거나 당할 뿐이다. 수면의 파도가 일어나는 것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바닷속 깊은 심해는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있다. 즉 겉은 아무리 변해도 실제로 속은 전혀 변한 게 없는 동정일여(動靜一如)를 이해하면 티베트 문제는 그 과정과 해법이 뜻밖에도 쉽게 나올 수 있다.
부처의 가르침 즉 불교에서는 특히 간화선에는 화두 ‘이뭣꼬’와 같이 끊임없이 자기가 아는 사실이 편견, 선입견, 고정관념, 거짓말, 방편 등에 근거해 믿게 된 것인지 항상 의심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화두를 잡고 있다면 의심하지 않고 지나칠 때 바로 알아채야 함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달라이라마나 티베트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이 환상이나 거짓일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의심해야 한다.
달라이라마의 방한을 적극 희망한다. 다만 그로 말미암아 영국의 예처럼, 통일을 바라보는 우리나라나 우리 민족에게 어떠한 피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 달라이라마가 정치적인 지도자가 아닌 순수한 불교 지도자로, 수행자로,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방문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라를 잃은 책임이 있는 당사자로서 신정일치의 국왕 달라이라마가 티베트망명정부를 정치적으로 버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수행자로서는 언제든 그러한 욕심을 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 버리는 것이 실제로 버리는 것이 아님도 달라이라마존자는 이미 알고 있다. 그렇게 못 하고 주저할 수밖에 없는 티베트 내부의 기득권 세력의 책동, 신들이 관련된 영적인 이유와 스스로 미래 비전도 조금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러한 계획이 성사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만약 늦지 않게 지금이라도 고령의 달라이라마가 수행자답게 여법하게 결단을 내려준다면 달라이라마는 언제든지 자신의 고향 티베트에 갈 수 있다. 물론 지금 일본에 가듯 우리나라에도 언제든 올 수 있다. 달라이라마는 이 세상에 유일하게 위대한 미국조차도 함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한 중국의 오늘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 더는 아무것도 아쉬울 게 전혀 없는 중국정부의 입장을 염두에 두고 불필요한 티베트인의 분신과 희생을 막기 위해서라도 화해해야 한다. 특히 티베트의 환경과 불교를 비롯한 훌륭한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서둘러야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제대로 반성할 줄 모르는 G7의 일본정부 통치 즉 일제 강점기를 통해 나라가 없는 민족의 서러움을 제대로 배웠다. 그런 입장에서 작금의 티베트를 보고 동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라를 잃은 종교는 설 자리가 없다. 그게 우리가 오늘날 다시 한번 달라이라마와 티베트로부터 배워야 할 간접경험이며 교훈이다.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dogyeom.h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