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신성모독 또는 휴먼코미디, 영화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기사등록 2013/04/29 07:01:00 최종수정 2016/12/28 07:22:36
【서울=뉴시스】김태은 문화전문기자 = 교황이라는 자리는 원치 않는 자에게도 주어질 수 있는 참 특별한 직책이다. 세계 12억명에 달하는 가톨릭신자들의 수장이며 로마 북서부 ‘신성’ 도시국가 바티칸의 주권자로 어마어마한 중책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와 비슷한 위치일까 싶은데, 이는 환생이라는 나름의 절차로 유아기부터 굳혀진 지위다. 세습왕조처럼 후계자로 길러지는 것도 아니요, 권력욕을 가지고 선거에 나서거나 탈취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어느날 전임 교황이 서거하면 81세 이상을 제외한 100여명의 추기경들이 모여 자체 투표를 통해 선출한다. 그러다보면 스스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바라지 않았는데도 이 엄청난 직위를 맡게되는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2001년 ‘아들의 방’으로 제54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탈리아 감독 난니 모레티의 2011년 작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Habemus Papam)는 이러한 개연성 있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콘클라베, 즉 교황선출선거회에서 뜻하지 않게 새 교황으로 뽑힌 멜빌 추기경(미셸 피콜리)은 그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소리를 지르며 패닉에 빠지고, 결국 바티칸을 탈출하게 된다. 여기저기 헤매이던 그는 연극배우가 되고 싶었던 과거를 되새기게 되는데, 그 과정이 대단히 흥미진진하지는 않지만 관객 개개인에게 여러 상념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다. ‘아들의 방’에서처럼 잔잔한 에피소드들을 흘려보내며 스스로 여러 가지 생각과 느낌을 가지게 할 뿐이다. 엔딩 크레디트가 오르고 나면 좀 싱겁기조차 하다.

 좌파로 사회참여적 성향의 영화를 만들어온 모레티 감독은 결코 종교를 긍정할 생각은 없어보인다. 배우이기도 한 모레티는 ‘아들에 방’에 이어 이 영화에서도 정신분석의로 출연해 교황에게 정신분석치료를 시도하는데, 이는 교황의 소임을 맡은 위대해보이는 성직자조차 인간적 나약함을 종교적 믿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의견으로 보인다. 그가 만나는 추기경들 중에는 악몽에 시달리며 수면제, 안정제에 의존하는 이도 있다. 교황이 바티칸 밖의 일반 성당 미사에 참여하는 장면에서는 신도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현 유럽 가톨릭의 위상이라는 점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도 같다.

 반면, 교황을 비롯한 노년으로 접어든 추기경들만큼은 한없이 순수하게 그려져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서로 자신이 교황이 되지 않기를 속으로 기도하는 모습이나 교황이 공식연설을 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정신분석의와 시간을 보내고, 그의 주도로 출신 대륙별로 팀을 짜 ‘교도소 피구’를 하는 모습들에서 어린이와 같은 순수함을 드러낸다. 그 누구 하나 세속적 야심을 품은 이도 없고 자신의 속내나 감정을 숨기지도 않는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신에게 자신을 바치기로 한 이들의 순결함까지는 건드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가장 궁금한 것 가운데 하나는 이 영화에 대한 실제 교황청 측의 입장은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프랑스 미디어에 따르면, 이 영화는 국민의 90%가 가톨릭 신도인 이탈리아에서 상당한 논란을 일으켰다. 이탈리아 주교회의가 소유하고 있는 신문에서 일하는 바티칸 특파원 살바토레 이초는 “이 영화는 전 세계 로만가톨릭의 수장인 교황을 존중하고 있지 않으며 비신도에게도 지루할 것”이라고 불쾌감을 표했다. “예수가 그의 교회를 세운 반석인 교황을 건드리지 말아야한다. 왜 우리의 종교에 위배되는 것에 재정적 지원을 해야하느냐”며 이 영화를 보이콧하자고 주장했다. 바티칸 라디오방송사는 “(교황을) 비꼬거나 풍자하는 것은 없다”고만 언급했으며, 예수회 저널은 오히려 이 영화를 칭찬했다. (공교롭게 신임 프란치스코 교황은 첫 예수회 출신 교황이다)

 그러나 교계 전반에는 이 영화에 대한 시비는 제작자의 배만 불리는 것이라며 더 이상 잡음이 없기만을 바라는 견해가 많았다고 한다. 2006년 론 하워드의 소설 ‘다 빈치 코드’에 대한 원로 가톨릭 성직자들의 강력한 비난이 이 소설이 블록버스터로 만들어지는 데 도움을 주기만 했다는 분석 때문이다. 이와 관련, 모레티 감독은 이탈리아 TV에 출연해 “내 작품에 표현의 자유가 있다”며 “영화를 보고 나서 보이콧을 하든지 말든지 해라”고 일갈했다.

 이 영화가 교황청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것은 틀림없다. 지난 2월, 1415년 그레고리오 12세 이후 600여년 만에 처음으로 자진 사임한 베네딕토 16세는 2005년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으로 교황으로 선출되자 “기요틴에 오른 느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1978년 교황선출 33일 만에 선종한 요한 바오로 1세는 교황 최초로 대관식을 거부하고 세속 권력의 상징인 삼중관을 뉴욕 경매에 부쳐 수익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기금을 조성하는 업적을 남겼는데, 고문들에게 “이런 무거운 짐을 지고 싶지 않다”고 털어놨다고 한다.

 한편, 지난 부활절(3월31일)에 맞춰 한국에서 개봉하려던 이 영화는 5월2일에야 개봉하게 됐다.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직을 거부했다고 보도되자 ‘픽션이 논픽션이 됐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현지 TV에서도 재빨리 이 영화를 선보였다고 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성직자의 모습을 드러낸 휴먼 코미디로 가볍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진정 교황을 ‘신의 대리자’로 신성시하고 싶어하는 열렬 가톨릭신자라면 이 영화가 못마땅할 수 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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