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어느날 전임 교황이 서거하면 81세 이상을 제외한 100여명의 추기경들이 모여 자체 투표를 통해 선출한다. 그러다보면 스스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바라지 않았는데도 이 엄청난 직위를 맡게되는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2001년 ‘아들의 방’으로 제54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탈리아 감독 난니 모레티의 2011년 작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Habemus Papam)는 이러한 개연성 있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좌파로 사회참여적 성향의 영화를 만들어온 모레티 감독은 결코 종교를 긍정할 생각은 없어보인다. 배우이기도 한 모레티는 ‘아들에 방’에 이어 이 영화에서도 정신분석의로 출연해 교황에게 정신분석치료를 시도하는데, 이는 교황의 소임을 맡은 위대해보이는 성직자조차 인간적 나약함을 종교적 믿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의견으로 보인다. 그가 만나는 추기경들 중에는 악몽에 시달리며 수면제, 안정제에 의존하는 이도 있다. 교황이 바티칸 밖의 일반 성당 미사에 참여하는 장면에서는 신도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현 유럽 가톨릭의 위상이라는 점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도 같다.
가장 궁금한 것 가운데 하나는 이 영화에 대한 실제 교황청 측의 입장은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프랑스 미디어에 따르면, 이 영화는 국민의 90%가 가톨릭 신도인 이탈리아에서 상당한 논란을 일으켰다. 이탈리아 주교회의가 소유하고 있는 신문에서 일하는 바티칸 특파원 살바토레 이초는 “이 영화는 전 세계 로만가톨릭의 수장인 교황을 존중하고 있지 않으며 비신도에게도 지루할 것”이라고 불쾌감을 표했다. “예수가 그의 교회를 세운 반석인 교황을 건드리지 말아야한다. 왜 우리의 종교에 위배되는 것에 재정적 지원을 해야하느냐”며 이 영화를 보이콧하자고 주장했다. 바티칸 라디오방송사는 “(교황을) 비꼬거나 풍자하는 것은 없다”고만 언급했으며, 예수회 저널은 오히려 이 영화를 칭찬했다. (공교롭게 신임 프란치스코 교황은 첫 예수회 출신 교황이다)
이 영화가 교황청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것은 틀림없다. 지난 2월, 1415년 그레고리오 12세 이후 600여년 만에 처음으로 자진 사임한 베네딕토 16세는 2005년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으로 교황으로 선출되자 “기요틴에 오른 느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1978년 교황선출 33일 만에 선종한 요한 바오로 1세는 교황 최초로 대관식을 거부하고 세속 권력의 상징인 삼중관을 뉴욕 경매에 부쳐 수익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기금을 조성하는 업적을 남겼는데, 고문들에게 “이런 무거운 짐을 지고 싶지 않다”고 털어놨다고 한다.
한편, 지난 부활절(3월31일)에 맞춰 한국에서 개봉하려던 이 영화는 5월2일에야 개봉하게 됐다.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직을 거부했다고 보도되자 ‘픽션이 논픽션이 됐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현지 TV에서도 재빨리 이 영화를 선보였다고 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성직자의 모습을 드러낸 휴먼 코미디로 가볍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진정 교황을 ‘신의 대리자’로 신성시하고 싶어하는 열렬 가톨릭신자라면 이 영화가 못마땅할 수 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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