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26)은 영국배우 게리 올드만(55)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스타가 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강우석(53) 감독의 영화 '전설의 주먹'에 출연할 때도 같은 마음이었다. 황정민(43), 유준상(44), 윤제문(43) 등 충무로 대표선수들과 함께 나오는 영화, 흥행감독의 작품, 게다가 주인공 '임덕규'(황정민)의 아역 시절 연기다. 하지만 "이 영화로 유명해지고 싶다는 생각, 유명해질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오히려 "좋은 작품에 폐를 끼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진짜 열심히 해야만 했다"는 고백이다.
"오디션을 두 달 넘게 봤다. 됐겠다 싶으면 또 다시 불렀다. 다섯번을 본 것 같다. 그러다가 일본여행을 갔을 때 감독님 미팅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까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액션스쿨을 정말 열심히 다녔다."
박정민은 복싱 챔피언을 꿈꾸는 고교시절 '임덕규'다. 천부적인 권투실력으로 장학금을 받고 명문고의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은 올림픽 기대주다. 고교 시절 숱한 싸움의 유혹도 복싱을 위해 참는다. 그러다 심판들의 편파 판정으로 챔피언의 꿈이 좌절되면서 어긋난 학창시절을 보내게 된다.
"복싱 챔피언을 꿈꾸는 고교생을 위해 하루 순수 운동만 여덟아홉 시간을 했다. 오전 아홉시부터 헬스, 액션스쿨, 복싱 등을 연습하고 오후 7시부터 대본을 봤다. 주변에 사람들이 하나씩 떠났다. 심지어 만났던 여자친구까지 떠났다"며 씁쓸해했다.
박정민은 "평소 땀이 많지 않고 더위를 안 탔는데 이번 영화로 체질이 바뀌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500m만 걸어가도 땀이 뻘뻘 난다. 난생 처음으로 내 발로 한의원에 걸어가서 한약을 지었다. 기가 많이 허해졌다고 해서 침도 맞았다. 한의원에서 너무 운동을 하니 몸이 더 안 좋아졌다고 하더라. 의사선생님이 뭐하는 분이냐고 물어보더라. 아직은 배우라고 말하기 창피해 학생인데 복싱을 한다니까 그만둬야 할 것 같다는 조언까지 들었다. 하지만 정두홍 무술 감독님은 봐주는 것 없이 죽도로 때리면서 가르쳤다"며 웃었다.
그렇게 '임덕규'로 산 6개월, 영화 속 국가대표 선발전 장면에서 편파 판정으로 챔피언의 자리를 놓치는 장면을 촬영할 때는 실제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스스로 잘 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실제 꿈이 좌절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촬영했다. 후회는 없다"면서도 "이 영화에 바라는 게 없다"고 말했다. "이 영화가 잘 돼 내가 잘 될 수 있다는 건 절대 기대 안 한다. 내일 당장만 연기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좋은 선배님, 좋은 감독님을 경험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파수꾼'이 개봉되고 이제훈 형이 잘 되면서 조급해졌다. 그때 본 게 게리 올드만의 인터뷰였다. 물론 순간순간 서럽고 감정이 북받칠 때가 있다. 하지만 인기를 좇으려고 아등바등하는 내 모습이 짐승 같다. 이 영화가 개봉했으니 나는 다시 출발점에 섰을 뿐이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 그리고 나는 내가 선 그곳에서 연기만 잘하면 된다. 누가 봐도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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