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스피드와 함께 양발을 사용할 수 있는 ‘한국산 윙어’들의 경쟁력은 유럽 무대에서도 통했다. 그동안 유럽 무대에 진출한 한국선수들 대부분이 측면 자원이었다는 사실은 이를 입증한다. 특히 2002년 한일월드컵을 기점으로 박지성(32·퀸즈파크레인저스), 설기현(34·인천유나이티드), 이을용(38·은퇴) 등이 유럽무대에 진출해 한국 축구의 위상을 드높였다. 이들은 근 10년 동안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었다.
그러나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이제는 이청용(25·볼턴원더러스), 지동원(22·아우크스부르크), 손흥민(21·함부르크) 등이 바통을 이어받아 한국 축구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이들은 지난달 26일 열린 카타르와의 2014년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5차전에 출전해 한국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최강희 대표팀 감독이 구상한 ‘닥공(닥치고 공격)’ 전술의 중심축으로 카타르의 측면 수비를 공략했다. 특히 손흥민은 경기 종료 직전 극적인 결승골을 터뜨리며 해결사 본능을 뽐냈다. 이들 3인방은 대표팀 승리의 기쁨을 뒤로 하고 각기 소속팀으로 복귀했다.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대한 고민은 잠시 잊고 소속팀에서 주어진 과제를 풀어야할 막중한 임무를 떠안게 됐다. 이청용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승격, 지동원은 독일 분데스리가 잔류, 손흥민은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진출을 위해 축구화 끈을 조여매고 있다.
▲이청용, 볼턴 프리미어리그 승격의 키
이청용은 카타르와의 월드컵 최종예선 때 무려 1년 9개월 만에 홈 A매치 복귀경기를 치렀다. 지난 2011년 7월 정강이뼈 골절 부상을 당해 힘겨운 재활 시간을 보낸 뒤 처음으로 고국 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에이스로서의 면모를 마음껏 뽐냈다.
오랜만에 조국에서 승리를 맛본 이청용은 “부상을 당한 이후 한국 팬들 앞에서 멋지게 경기하는 모습을 여러 번 상상을 해왔다. 팬들이 열성적으로 응원을 해주셔서 잘할 수 있었다”며 “최근 컨디션이 올라오고 있다. 덕분에 자신감도 생겼다”고 밝혔다.
기분 좋은 기운을 듬뿍 받고 잉글랜드로 떠난 이청용은 소속팀 볼턴의 프리미어리그 승격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소속팀 복귀 후 2경기 연속 선발 출전해 볼턴이 1승1패의 성적을 거두는 데 기여했다. 3일 현재(이하 기준) 볼턴(15승12무13패 승점57)은 챔피언십 6경기를 남긴 가운데 8위에 올라있다. 프리미어리그 승격 플레이오프에 나설 수 있는 마지노선인 6위 브라이턴 앤 호브 아리온(15승16무9패 승점61)과의 승점 차는 4점이다. 챔피언십 1, 2위는 곧장 프리미어리그로 직행하고 3~6위는 플레이오프를 통해 한 팀만 승격할 수 있다. 이청용은 “리그가 몇 경기 안 남았다. 몸 관리를 잘해서 최대한 집중하겠다”며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고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지동원, 강등권 탈출의 新 공격옵션
지동원은 카타르와의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이청용과 함께 좌우 측면 공격수로 선발 출전해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후반 7분 이동국(전북)과 교체돼 그라운드를 나오기 전까지 승리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며 중앙과 측면을 오가며 대표팀에 힘을 더했다. 이번 대표팀 발탁으로 자신감을 얻은 지동원은 소속팀 아우크스부르크의 1부리그 잔류에 큰 보탬이 될 전망이다.
지동원은 187cm의 장신임에도 섬세한 볼터치와 스피드를 갖추고 있다. 최전방 공격수와 측면 공격수, 공격형 미드필더 등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다. 지동원의 이 같은 장점은 소속팀에서도 발휘되고 있다. 사샤 묄더스가 홀로 9골을 터뜨리며 팀 득점(27골)을 책임지는 가운데 지동원은 새로운 공격 옵션으로 강등권 탈출에 기여할 전망이다. 지동원은 지난 시즌까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선더랜드에서 설 자리를 잃고 아우크스부르크로 임대 이적했다.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구자철과 찰떡 호흡을 자랑하며 10경기에 출전하는 등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호펜하임과의 홈경기에서 분데스리가 데뷔골을 기록하며 부활을 예고했다. 특히 지난달 31일 월드컵 최종예선 카타르전 이후 4일 만에 치른 하노버전에서는 골대를 맞히는 날카로운 발끝을 드러냈다. 이날 왼쪽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한 지동원은 최근 물오른 컨디션을 입증하며 소속팀의 강등권 탈출을 위한 기대주로 떠올랐다.
아우크스부르크(5승9무13패 승점 24)는 리그 7경기를 남겨 놓은 현재 16위에 머물러 있다. 1부리그 잔류 마지노선인 15위 뒤셀도르프(7승8무12패 승점29)와의 승점 차는 5점이다. 분데스리가는 17~18위가 2부 리그로 강등된다. 16위는 2부 리그 3위팀과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플레이오프를 치러 잔류 여부를 가린다. 지난 시즌 팀을 잔류로 이끈 구자철이 카타르전에서 옆구리 부상을 당해 남은 리그 일정 출전이 불투명한 상황이 아쉽다.
손흥민은 월드컵 최종예선 카타르전의 해결사였다. 후반 추가시간에 이동국의 슈팅이 골대 를 맞고 흐른 것을 문전에서 침착하게 밀어 넣어 결승골을 터뜨렸다. 그동안 대표팀에서 활약이 미비했다는 저평가를 잠재우고 새로운 에이스로 발돋움한 순간이었다.
A매치에서 득점포를 재가동한 기세를 몰아 소속팀 함부르크의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진출 도전에 앞장선다. 손흥민은 지난 2월 도르트문트전에서 리그 8·9호골을 기록한 이후 리그 6경기 동안 득점포가 침묵했다. 그는 대표팀 일정을 마치고 독일로 출국하기 전 “아직 리그 경기가 많이 남아 있는 만큼 득점 기회는 열려 있다. 10호 골에 대한 부담은 없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A매치 이후 5일 밖에 휴식을 취하지 못했지만 손흥민은 바이에른 뮌헨전에서 선발로 출전해 리그 10호 골 사냥에 나섰다. 그러나 ‘디펜딩 챔피언’ 뮌헨의 막강 공격에 좀처럼 기를 쓰지 못했고, 팀도 2-9로 완패했다. 손흥민은 차범근 감독 이후 27년 만에 독일 무대 두자릿수 골을 터뜨린 한국 선수 등극의 영광을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됐다.
아르티온스 루드네우스(11골)에 이어 팀내 득점 2위를 달리고 있는 손흥민의 우선 목표는 리그 6위까지 주어지는 UEFA 유로파리그 출전권 획득이다. 함부르크는 리그 7경기를 남긴 현재 11승5무11패(승점38)로 리그 9위에 머물러 있다. 6위 마인츠(10승9무8패 승점39)와의 승점 차는 단 1점에 불과하다. 13일 열리는 마인츠05(6위)전이 유로파리그 진출의 교두보가 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함부르크의 붙박이 공격수 손흥민의 최근 주가는 무섭게 치솟고 있다. 어린 나이에 과감하고 확실한 플레이로 유럽 여러 구단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분데스리가를 비롯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이탈리아 세리에A 등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복수의 유럽 언론에 따르면 첼시, 리버풀, 맨유, 토트넘(이상 잉글랜드), 인테르밀란(이탈리아) 등이 손흥민의 영입에 관심이 있다. 이에 손흥민은 “함부르크와의 계약이 2014년까지 남은 만큼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 같다”며 “운동만 열심히 하면 아버지나 에이전트가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먼저다”고 말했다. 손흥민의 계약은 2014년 6월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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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322호(4월9일~15일자)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