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이근홍 기자 = "에베레스트 정상의 기압과 산소는 평상시의 3분의1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산악인들은 7500m 이상을 '죽음의 지대'라고 부르는데 그 곳에서 한 걸음을 옮기려면 호흡을 10번씩은 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산소까지 안 쓰면 당연히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불혹의 나이에도 고생을 찾아 나서는 이가 있다. 게다가 몇 개월씩을 투자하며 그 '고생'을 준비까지 한다. 이 정도면 평범한 인생은 아니다. '산악인' 김창호(44·몽벨 자문위원) 대장의 이야기다.
김 대장은 6일 서울 용산구 LS용산타워에서 '2013 한국 에베레스트-로체 원정대'의 히말라야 에베레스트(8848m) 무산소 등정 출범식을 가졌다. 원정대는 김 대장을 비롯해 서성호· 안치영· 전프루나· 오영훈 등 5명으로 구성됐다.
무역학과 새내기로 입학했던 청년이 산과 인연을 맺은 지 어느덧 25년째다. 1993년 파키스탄 그레이트 트랑고타워(6284m) 완등으로 히말라야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정확히 20년 만에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김 대장은 지난 2006년 히말라야의 8000m 이상 14개 봉 가운데 13개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올해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에 도전한다. 그런데 방식이 특이하다. 산소도 비행기도 자동차도 없다. 말 그대로 '무산소', '무동력' 등정이다.
만약 이번 등정에 성공하면 김 대장은 아시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무산소로 완등하게 된다. 동시에 7년10개월이라는 최단 기간 14좌 완등 기록(예지 쿠쿠츠카·7년 11개월 14일·폴란드)도 세운다.
산행 과정은 처절하다. 일반적인 원정대는 해발 2840m에 위치한 네팔 루크라까지 항공기로 이동한다. 그러나 김창호 원정대는 해발고도 0m인 인도 벵골만에서 카약으로 160㎞, 자전거로 1000㎞, 도보로 150㎞를 이동해 베이스캠프(5360m)에 도착한다.
이 과정을 마친 뒤 다시 산소 없이 에베레스트 정상까지 오른다. 에베레스트 남동쪽 능선과 로체 서벽을 정복할 예정이다.
여기에 소요되는 기간이 꼬박 '80일'이다. 오는 11일 파키스탄으로 떠나 5월 중순께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는다면 같은 달 29일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다. '고행'이다.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장비를 사용하면 한결 쉽고 안전하게 에베레스트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김 대장은 산을 오르는 이유부터가 달랐다. 다른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산 그리고 자연이 좋을 뿐이다.
김 대장은 "대학교 무역학과에 입학했지만 전공 공부보다는 자연과 함께 하는 게 더 좋았다"며 "특히 공간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저 모퉁이를 돌면 어떤 게 나올까,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하는 궁금증이 항상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던 가운데 등산을 접하게 됐고 산의 매력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신기록을 앞두고 있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14좌 완등을 목표로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다. 기록에 대한 욕심도 없다. 중요한 것은 등반 그 자체다"며 "북한산에 갈 때 산소통을 메고 가는 사람은 없지 않나. 히말라야도 마찬가지다. 물론 훨씬 위험하고 오르기 어려운 곳이지만 산은 산이다. 등정 확률이 낮아지고 위험에 노출될 수 있지만 내가 가진 힘만으로 산에 오르고 싶다. 산은 정복을 위한 대상이 아니다"고 그만의 '등산 철학'을 전했다.
정도를 따라 자신만의 인생을 즐기고 있는 김 대장은 산악인으로서의 최종 목표를 묻는 질문에 당당히 '없다'고 말했다. 당황스러웠지만 그이기에 충분히 가능한 대답이었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고 기록에 남는 우리네 목표는 김 대장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김 대장은 "반드시 이뤄야겠다고 마음 먹은 최종 목표는 없다. 자연스럽게 산악인이 됐고 어찌어찌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을 뿐"이라며 "기록에 대한 욕심을 내기보다는 공부를 더 하고 싶다. 국내에는 히말라야를 연구하는 인력이 많지 않은데 내가 그 역할을 해서 우리 후배 산악인들을 위한 디딤돌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그동안 지나치게 산에만 빠져 살았던 모양이다. 김 대장은 지난해 늦깎이 신랑이 됐다. 이제 결혼 1년차, 신혼이다.
분명히 좋은 남편은 아니다. 김 대장은 1년 중 가족과 지내는 시간보다 대원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 한 번 외국으로 나가면 몇 달은 기본이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그의 생활을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 대장은 여전히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 있다. 그 누구보다도 자신을 이해해주고 지원해주는 아내가 있기 때문이다. 김 대장도 든든한 버팀목인 아내를 향해 고마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아내는 대학 산악회 후배였다. 운동을 좋아해서 나를 잘 이해해준다"며 "항상 힘이 되는 말을 해준다. 지금도 조경설계 일을 하고 있는데 지난해에는 원정 등반 비용을 아내가 직접 마련해주기도 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마운 사람이다"고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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