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2보]'민청학련' 김지하 시인, 재심서 무죄

기사등록 2013/01/04 17:30:49 최종수정 2016/12/28 06:49:22
법원 "민주화 과정에서 크나큰 고난, 사죄의 뜻 전해"
김씨 "보상금 받으려 재심"…대통령 취임준비위원장엔 부정적

【서울=뉴시스】조현아 기자 = '민청학련' 사건과 '오적(五賊)필화' 사건으로 7년간 옥살이를 한 시인 김지하(72)씨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부장판사 이원범)는 4일 김씨에 대한 재심에서 민청학련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긴급조치 제4호, 국가보안법상 내란선동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수사 당시 고문이나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증언 등을 볼 때 수사기관에서의 피고인과 참고인들의 진술은 임의성이 없어 증거능력이 없거나 그대로 믿기 어렵다"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김씨가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반국가단체를 구성하거나 폭동할 것을 선동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오적필화 사건(반공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재심사유(수사과정에서의 가혹행위)를 인정할만한 자료가 제출되지 않아 유·무죄를 판단하진 않았지만 가장 낮은 법정형인 징역 1월의 선고를 유예하고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김씨는 1970년 월간지 '사상계'에 오적이라는 시를 게재했다. 재벌과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의 부정부패의 수단과 사치스러운 생활상을 폭로함으로써 부조리한 상류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재판부는 "김씨가 창작한 '오적'은 당시 일부 부패한 권력층과 이를 적발해야 할 사정기관의 비리 등을 문학작품 형식으로 비판적으로 풍자한 것"이라며 "헌법상 보장된 예술과 표현의 자유의 본질적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헌법상 기본권 행사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당시 유신헌법 등을 비판하며 정권에 반대하는 활동을 전개했다는 이유로 김씨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옥고를 치르게 한 군법회의를 대신해 사죄의 뜻을 전했다.

 재판부는 "당시 재판절차가 인권보장과 법치주의 수호라는 사법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다수의 지식인들에게 감내할 수 없는 희생이 강요됐다"며 "현재 같은 사법작용에 관여하는 재판부로서 진실로 사죄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유신시대 대표적 저항시인인 김씨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을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혐의로 구속돼 비상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김씨는 이듬해 형집행정지로 10개월만에 석방됐으나 사건의 진상을 알리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재수감돼 그로부터 6년간 옥살이를 하다 풀려났다.

 민청학련은 김씨와 유인태(65) 전 민주당 의원 등이 1973년 11월 반독재 투쟁을 위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을 구성한 것을 '인혁당 재건위'라는 공산주의자들의 배후조종을 받는 인민혁명으로 왜곡해 관련자들을 처벌한 사건이다.

 김씨는 지난 2010년 11월 서울중앙지법에 재심을 청구했으며 법원은 2년만인 지난해 10월31일 재심 결정을 내렸다.

 김씨는 이날 선고가 끝난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보상금을 목적으로 재심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작심한듯 "오적사건 이후 (창작활동을) 못했다. 국가가 보상금을 심사해 500억, 5000억원, 적어도 27억원 이상은 줘야하지 않느냐"며 "돈이 없어서 내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지도 못했다. 이제 (자식들이) 서른, 마흔인데 대학에 보내게 생겼다"고 토로했다.

 또 특정 정치인을 겨냥하면서 "정부가 27억원을 주고 먹고튀게 한 여자도 있는데 사형선고를 받은 내게 보상금을 주는데 그렇게 짜면 어려운 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지…"라고 혀를 찼다.

 한편 대통령직인수위 산하 대통령취임준비위원장으로 거론되는 것과 관련해 "내가 그 자리를 수락할 것 같으냐"고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hacho@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