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교만 '호모 이그니스, 불을 찾아서'

기사등록 2012/10/28 08:11:00 최종수정 2016/12/28 01:28:00
【서울=뉴시스】이예슬 기자 = 일본 열도를 만든 신 이자나키와 이자나미의 막내아들인 불의 신 가구쓰치는 태어날 때 어머니인 이자나미의 음부를 데게 해 죽음에 이르게 한다. 이자나미가 죽을 때 광산의 신, 토기의 신, 곡물과 양잠의 신, 항구의 신 등 초기 문명을 상징하는 신들이 태어났다. 불에 의해 어머니 신인 이자나미가 죽으면서 남긴 것은 자연적이었던 세계의 모습을 문화적 존재로 변화시키는 것들이다. 불이 인류를 문명으로 이끌었다는 사실이 신화에 고스란히 숨겨져 있는 것이다.

 민속학, 고고학, 인류학, 신화, 역사, 예술 등 동서양의 지적 성과를 넘나들며 인간이 불을 어떻게 이해해 왔는지, 불이 인류 문화 발전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를 전한다. '호모 이그니스, 불을 찾아서'다.

 불을 뜻하는 라틴어 '이그니스(ignis)'를 이용해 만든 '호모 이그니스'는 인류가 불과 함께 진화해 왔고, 불이 인류 문화의 원천이 됐음을 상징한다. 가구쓰치의 탄생 신화, 오세아니아 원주민 사이에 전해져 오는 불의 기원 신화,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건네준 의미, 일본 각 지역에서 전해지는 불과 관련된 풍속 등이 새로운 상상력의 세계로 인도한다.

 불에 대해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경외심을 품고 있던 고대인과 달리 현대인들에게 불은 더 이상 신비로운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저자는 인간이 스스로 억제할 수 없는 다양한 충동의 상징이며 인간 존재의 허무를 들여다 보게 하는 불을 잊는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강변한다. 고대로부터 전해오는 상상력의 원천을 잃는 것이며 불이 주는 안락함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오래된 공동체 역시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의 원자로가 녹아내리기 시작했을 때 인간이 불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고 믿어왔던 인간의 교만이 산산조각 났다고 말한다. 불을 이용하려는 현대인의 끝없는 욕심이 원자로라는 괴물을 만들어 냈고 후쿠시마와 같은 끔찍한 재앙을 몰고 왔다는 것이다. 불은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처럼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인 한편, 방심하면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리는 두려움의 존재이기도 하다.

 "거대 지진과 대형 쓰나미라는 자연은 과학기술의 정수를 모아 놓은 문화의 성과를 파괴하는 데 비해 인간들은 핵의 불이라는 자연이 폭발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달래려고 한다. 그런데 자연의 폭발이 결코 자연의 탓만은 아니다. 원래 불이 가진 패러독스, 즉 문화를 형성하면서도 계속 자연이라는 것을 잊기 쉬운 인간의 탓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인재도 된다." 오쓰카 노부카즈 지음, 송태욱 옮김, 312쪽, 1만6800원,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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