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지 않는다고 재차 강조했지만 은퇴사를 읽어내려가는 신기성(37)은 목이 메어 좀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 부인 박소윤씨도 은퇴 기자회견을 하는 남편의 옆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지난달 24일 은퇴를 선언했던 신기성은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KBL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은퇴하는 소회를 밝혔다.
2011~2012시즌이 끝나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신기성은 원 소속구단 인천 전자랜드와 계약을 맺지 못해 시장에 나왔지만 어떤 구단의 러브콜도 받지 못했다. 젊은 선수들을 위주로 팀을 꾸려가려고 하던 전자랜드는 신기성을 잡지 않았다.
결국 1998~1999시즌 프로 무대를 밟은 신기성은 프로에서 뛴 12시즌을 뒤로 하고 코트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아직 은퇴 이후의 계획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세우지 않은 상태다.
신기성은 "모든 선수들은 은퇴를 하게 된다. 그것이 어떻게 이뤄졌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상황이 어찌됐든 결국 본인의 선택"이라고 강조했지만 상황이 그에게 은퇴를 결심하게 했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힘들다.
커다란 아쉬움을 남기고 코트를 떠나는 신기성은 목이 메어 말을 잘 잇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어린 시절 우연히 농구공을 잡고, 농구가 재미있고 좋아서 선수로서 꿈을 키워 왔는데 삶이 됐다"며 "많은 열정을 코트에 쏟았고, 최선을 다했다"고 은퇴사를 읽어 내려갔다.
신기성은 "아쉬움은 남지만 후회는 없다. 농구 인생을 되돌아보면 나는 행복했던 선수였다"며 "프로에 와서 생애 한 번 뿐인 신인상과 내게는 과분한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도 수상했다. 우승, 챔피언결정전 우승은 잊지 못할 추억"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선수생활을 하면서 힘든 순간도 있었다면서 "그 때마다 제 곁에서 저를 믿어주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해준 아내와 가족이 있었기에 이겨내고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신기성은 "정규삼 할아버지, 박한 선생님, 전창진 감독님, 허재 형님, 김진 감독님, 추일승 감독님에게 감사하다"며 "강동희 선배와 유도훈 감독님, 2007년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주장을 맡겨주신 최부영 감독님께 감사하다"고 감사한 마음을 전달했다.
그는 팬들을 향해서도 "팬 여러분은 코트에서 힘이 되어 준 생명수였다. 내가 잘 하든, 못하든 힘이 돼주고 응원해줬다. 모든 팬에게 감사드린다"며 "팬 여러분에게 위로해드리고 보답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신기성은 "저와 똑같은 길을 걷게 될 후배들에게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근심하지 말고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라고 말해주고 싶다"며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나간다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이날 신기성이 부산 KT 시절 함께 뛰었던 조성민(29·KT), 원주 TG삼보 시절 호흡을 맞췄던 김주성(33·원주 동부)이 은퇴 기자회견에 함께해 신기성의 앞날을 격려했다.
◇신기성과의 일문일답
- 후배들에게 남긴 말이 본인이 경험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경험했다기보다는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제가 조금 더 겸손하고 조금 더 깨달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항상 자신감은 넘쳤지만 주위의 후배나 힘든 곳에서 일하는 프런트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 같다. 제 자신도 그 말을 간직하면서 인생의 지표로 살고 열심히 살아볼 생각이다. 그리고 이런 메시지를 후배에게 전하고 싶었다."
-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강동희, 이상민 등 좋은 포인트가드와 경쟁해오면서 자신의 포지션을 지킨 것 같은데 노하우가 있었다면.
"지금 말해주신 선수들은 뛰어나고 한국 농구를 대표하는 선수들이다. 그런 가운데 저는 튀지 못하는 성격과 마찬가지의 플레이를 했다. 어떤 것이 정답이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나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했다. 제가 그 선수들과 나를 비교하고, 그 선수들보다 잘 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저만의 플레이를 하려고 노력했다."
- 가장 아쉬운 부분은.
- 은퇴를 언제 결심했고, 왜 결심했는지.
"누구나 은퇴를 하게 된다.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과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이다. 저는 마음의 준비를 했기 때문에 이런 기자회견을 하게 된 것이다. 언제부터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단지 KT에서 나왔을 때 상당히 힘들었다. 당시 제 아내, 많은 분들이 격려하고 도와주셔서 다시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다."
- 현역 시절 최고의 순간을 꼽는다면.
"2004~2005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하고 그물 커팅할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때가 가장 눈에 아른거리고 가장 감격스러웠다."
- 많은 선수들과 호흡을 맞췄는데 가장 호흡이 잘 맞았던 동료를 꼽는다면.
"한 명이라고 말씀드리기는 그렇다. 포인트가드 입장에서 내가 맞추려고 노력했다. 전성기 시절을 보내고 화려했던 우승을 했던 TG삼보 때 김주성이 제 뜻을 잘 알고 해줬다. 주성이가 내가 이야기하는 것을 잘 받아줘 호흡이 잘 맞았다. 허재 형이 은퇴하기 전 함께 선수로 뛰었다. 그런 면에서 저는 행운아였다고 생각한다.
- 향후 계획은.
"우선 조금 쉬고 제가 팬들에게 받은 사랑과 얻었던 것을 다시 나눠줄 수 있는 길을 찾고 싶다. 그래서 지도자가 됐든, 행정가든, 다른 어떤 길이 되든 제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공부하고 준비하겠다. 우선 피겨스케이팅 선수를 꿈꾸는 딸 지우의 꿈을 위해서 신경써주고 싶다. 이전까지는 신경을 많이 써주지 못했다. 딸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다."
- 은퇴 이후에 신기성은 어떤 선수였다고 기억되고 싶나.
"저의 욕심인지 모르겠지만 저의 이름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 욕심이 될 수도 있지만 그러길 바라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앞으로 더 잘해야 할 것 같다."
- 준비된 은퇴라고 하는데 엄청나게 최근까지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린 것 같다. 주변 상황 때문에 은퇴하는 느낌인데 못다한 이야기가 있나.
"선수들은 은퇴를 하게 된다. 그런데 그게 어떻게 이뤄졌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떤 상황이 되었든 은퇴는 본인의 선택이다. 그렇기에 제가 이 기자회견을 부탁드렸고 말씀드리는 것이다. 결정한 후에 생각해보니 저는 행복했던 선수였던 것 같다. 여러 고마운 분들이 너무 많이 생각났다. 이 자리를 통해 그분들에게 평소에 말하지 못한 것을 말하고 싶었다. 후회하거나 그런 것은 없다."
-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프로농구까지 왔다. 한국 농구의 좋았던 시절과 좋지 않았던 시절을 모두 겪었는데 남자농구가 나아가야 할 길이 있다면.
"제가 감히 한국 농구를 논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후배들에게 선수로서 부탁하고 싶은 부분은 팬들은 선수나 저희가 그냥 열심히만 한다고 좋아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감동이 있어야하고 진실이 있어야 한다. 선수들은 항상 그런 것을 코트에서 보여줘야 하고 팬들을 생각해야한다. 그래야 진심이 통해 팬들이 농구를 다시 사랑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재에도 농구를 사랑하는 많은 팬들이 계신다. 그 분들을 위해서라도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현역 시절 별명은 '총알탄 사나이'였다. 나만의 농구를 했다고 했는데 신기성의 농구를 정의한다면.
"조심스럽다. 솔직한 제 마음을 털어놓자면 저 이전의 포인트가드는 경기 운영 능력에 많은 점수를 줬지만 저는 스피드와 슈팅력을 겸비한 선수였다고 생각한다. 저의 앞에 있는 대단한 선배들보다는 그런 것을 갖추고 있어서 그래도 농구계에서 인정을 받지 않았나 생각한다. 빠르고 슈팅력을 갖춘 가드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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