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초선人]'7수 끝에 거둔 값진 승리' 이상규

기사등록 2012/05/02 15:36:34 최종수정 2016/12/28 00:36:41
【서울=뉴시스】조종원 기자 = 19대 국회의원 이상규 통합진보당 당선자가 30일 오후 서울 관악구 난곡동 우림시장에서 어린이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choswat@newsis.com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따뜻한 봄볕이 내리쬐던 지난 30일 오후, 서울 관악구 난곡동 우림시장에 도착한 기자는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4·11총선 최대의 관심 지역구였던 서울 관악을에서 무려 7수만에 승리한 통합진보당 이상규(47) 당선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한참을 두리번거린 끝에 20m쯤 떨어진 곳에서 동네주민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이 당선자를 발견했다. 한창 당선사례(當選謝禮) 중이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주민 강남석씨가 이 당선자를 향해 한참 훈수를 두고 있는 참이었다. "국회 가서 싸움하지 마, 최루탄도 까지 말고. 여야를 떠나서 국회서 싸움질하는 건 세계적으로 부끄러운 일이야. 그래도 이 후보는 모범 국회의원이 될 거라고 믿어"

 강씨의 말에 이 당선자는 "네, 네, 잘 알겠습니다"를 거듭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선거운동 내내 저 각도까지 숙였을 텐데 혹여 허리를 다치진 않았을까 내심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기우(杞憂)였다.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걸으며 골목 이곳저곳을 누비는 모습에선 강인한 체력이 느껴졌고, 옆집 아저씨 같은 자상하고 인자한 얼굴 속 날렵한 눈매에선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사실 돌이켜보면 이 정도 체력과 의지력이 없었다면 지난 국회의원 선거 당시 기적에 가까운 승리도 불가능한 일이었을 터. 이 당선자 역시 당선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스스로 인정한다.

 ◇숨 막히는 후보등록 '서스펜스', 그리고 기적 같은 당선

 인사를 다니다 잠시 짬을 낸 그는 제19대 국회의원 후보 등록 마감일인 지난 3월23일을 떠올리며 회상에 잠겼다.

 "비가 오는 그날 오후 2시에 이정희 대표가 전화를 해서는 '관악을 후보직을 사퇴한다. 이상규 위원장이 출마 서류를 준비해 달라. 후보등록을 해야 한다'라고 말하더라. 그 순간 마치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그 시간에 사퇴를 하고 등록을 한다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대표에게 왜 사퇴하시냐고 물을 정신조차 없었다"

 전화를 끊은 이 당선자는 예비후보로 등록했던 은평을 선거관리위원회를 비롯해 은평구청, 세무서 등을 쏜살같이 뛰어다니며 가족관계증명서·세금납부증명서·병역증명서 등을 떼고 오후 5시께 관악구 선관위에 도착했다. 혹시라도 늦어서 일을 그르칠까 가슴을 졸이며 서류를 최종 수정한 뒤 선관위 사무실에 도착한 시간은 마감시한을 단 10분 남긴 5시50분이었다.

 당시 장면을 떠올리던 이 당선자는 "선관위에서도 처음 문의할 땐 '이건 불가능한 일'이라며 손사래를 치다가 결국 그렇게 서류를 가져가니 기적이라고 하더라. 소식을 알고 모여든 선관위 직원들도 나를 바라보며 내내 웅성거렸다"고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숨 가쁘게 후보등록을 마친 이 당선자는 미처 숨을 돌릴 틈도 없이 선거전에 뛰어들어야했다.

 예상했던 대로 선거는 만만찮았다. 이 당선자가 상대한 경쟁자들은 야권단일후보 경선 당시 여론조사 조작에 항의하며 민주통합당에서 탈당한 무소속 김희철 의원과 서울시의원 출신인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 특히 지역 기반을 다져둔 현역 김희철 의원은 호시탐탐 이 당선자의 약점을 노렸다.   

 실제로 후보등록 후 이틀간은 이 당선자도, 후보직을 넘겨준 이정희 대표도, 유권자들도 모두들 갈피를 잡지 못했지만 이후 민주당 한명숙 대표가 현장에서 지원유세를 하고 민주당 박선숙 사무총장이 탈당한 김희철 의원을 향해 '복당은 없다. 복당하려면 후보 사퇴하고 지금 하라'고 촉구하면서 흐름이 바뀌었다.

【서울=뉴시스】조종원 기자 = 19대 국회의원 이상규 통합진보당 당선자가 30일 오후 서울 관악구 난곡동 우림시장에서 지역주민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choswat@newsis.com
 여기에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출신을 망라한 선거운동원들의 헌신적인 활동, 대학생 유세단들의 맹활약 속에 결국 이 당선자는 2위 오신환 후보를 약 5%포인트 차로 누르고 승리를 거뒀다. 김희철 의원 역시 이 당선자에게 10%포인트 차로 뒤져 고배를 마셨다. 

 ◇7수 끝에 당선, "저는 높은 사람이 아닙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 당선자는 다시 우림시장 부근 골목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당선 감사 인사를 다 하려면 아직도 한참 남았다. 셔츠가 땀에 젖었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식당·건강원·약국·중국집·금은방·빵집·치과를 거쳐 들른 미용실. 이 당선자는 성큼성큼 안으로 걸어 들어가더니 특유의 붙임성으로 순식간에 주인아주머니를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저 머리 좀 빗고 가도 되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빗을 손에 쥔 이 당선자는 능숙한 솜씨로 머리를 빗어 넘겼다. 주인아주머니는 웃음을 터뜨리며 "이제 높으신 분이 됐네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 당선자는 빗을 내려놓고 빙긋이 웃었다. "저는 높은 사람이 아닙니다"

 정말 그랬다. 이 당선자는 엘리트 코스로 알려진 서울대 법대를 나왔지만 사회가 인정하는 소위 '높은 사람'이 되고자 애쓴 적이 없었다.

 1983학번인 이상규 당선자는 옥중에서 서울대 법대 학생회장에 당선됐고, 곧바로 강제징집돼 군대를 다녀온 후로 줄곧 노동현장에서 활동했다. 1990년대에는 서울 구로구와 영등포구 일대에서 청년운동을 하면서 야학교사로 일하는 등 청년운동에 주력했다.

 1997년 대선부터 정당운동을 시작한 이 당선자는 '국민승리21'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권영길 후보의 선거유세단장을 맡기도 했고 2000년 민주노동당이 출범하면서부터는 당 활동도 했다. 그러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정책국장직을 맡았고 2004년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에서 노동위원장과 시당위원장을 차례로 거쳤다.

 그는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해 희생된 효순이·미선이를 위한 추모집회에서 직접 사회자로 나서기도 했다. 2010년 10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는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 건설현장 등지에서 배관공으로 일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선거에도 수차례 출마했다.

 1995년 첫 지방선거 때 신도림동에서 구의원 후보(무소속)로 출마했다 낙선했고, 2002년 구로동에서 또 한 번 서울시의원 후보(민주노동당)로 출마했다가 떨어졌다. 2008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했고 2010년 6월 서울시장 선거에 민주노동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한명숙 당시 민주당 후보에게 양보하며 후보를 단일화했다.

 2010년 7월 은평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출마했지만 장상 당시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했고, 이번 4·11 총선 직전 은평을 통합진보당 당내 경선에서도 천호선 후보에게 밀려 후보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이번 관악을 선거에서 당선되기까지 일곱번 출마한 끝에 성공을 거둔 셈이다. 지난 6차례 선거운동이 7차 도전을 위한 밑거름이 됐음은 물론이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기자가 이 당선자에게 뜬금없는 부탁을 했다. "이번에 받은 금배지를 좀 보여 달라" 놀랍게도 금배지 뒤에 새겨진 숫자는 '006'이었다. 당선자 300명 가운데 6번째로 등록을 했다는 뜻이었다. 이 당선자의 6번에 걸친 도전과 금배지 번호 6번이 겹쳐지며 닭살이 돋는 걸 느꼈다.

【서울=뉴시스】조종원 기자 = 19대 국회의원 이상규 통합진보당 당선자가 30일 오후 서울 관악구 난곡동 우림시장에서 상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choswat@newsis.com
 ◇"하늘에 계신 아버지, 불효자는 웁니다"  

 이날 마지막 당선사례 코스로 민주택시노조연맹 한독운수 노조 방문까지 마친 이 당선자는 선거사무소에 도착해서야 긴장이 다소 풀리는 듯 안경을 벗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책상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는 그에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무장해제된 바로 이때가 가족에 관해 물어볼 절호의 찬스였다. 예상대로 그는 거부감 없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특히 이번 총선 당일 이 당선자와 어머니의 일화는 인상적이었다.

 "당선된 날 개표가 끝나고 12일 새벽 3시에 선관위 개표 현장에 가서 당선증을 받았다. 집에 가니 새벽 4시더라. 잠시 눈을 붙이고 아침 7시에 당선 인사차 집을 나서는데 어머니께서 당선증을 갖고 오셔서 앞에 내려놓고는 나한테 큰절을 하셨다. '이제부터 내 아들이 아닙니다. 소소한 일, 집안일에 신경 쓰지 말고 오직 나라일만 하세요'라고 말하면서. 3남1녀 중 막내인 내게 경어를 쓰신 거다. 어찌나 가슴이 찡하던지"

 돌아가신 아버지 산소도 찾았다. 마음 한구석에 늘 미안함을 간직하고 있던 아버지에게 한시라도 빨리 당선 소식을 알리고 싶어서였다.

 집안에서 직접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었지만 아버지가 학생운동을 하고 수배 당해 도피생활을 하는 막내아들을 지켜보며 늘 가슴을 졸였다는 사실을 이 당선자는 알고 있었다. 이후 이 당선자는 자신 때문에 아버지가 병환을 얻고 돌아가셨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왔다.

 "당선 후 어느 날 저녁시간을 비워서 청주 선산 아버지 산소에 가서 술을 한 잔 부어드렸다. 당선배지를 놓은 채 형님하고 아내하고 같이 인사를 드리며 속으로 말했다. '불효자는 웁니다. 지금까지 속 썩혀드려서 죄송합니다. 하늘나라에서라도 편히 지내시고. 이 막내가 앞으로 잘 하겠습니다. 아버님 편하게 계십시오'"

 그동안 묵묵히 곁을 지켜준 아내와 3명의 자녀 역시 이 당선자에게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특히 한국 나이로 15살이나 어린 부인 김향수(33)씨는 수배생활 후유증으로 이혼이라는 아픔을 겪어야했던 이 당선자를 따뜻하게 감싸준 소중한 사람이다.

 당에서 함께 활동하며 서로 알고만 지내던 두 사람은 2007년부터 연애를 시작했고 결국 결혼에 골인했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게 의식이 됐는지 이 당선자는 부인과 서로 경어를 쓰기로 했다. 나이차가 크더라도 부부관계가 불평등해서는 안 되며 서로 존중해야한다는 철학 때문이었다.

 이 당선자는 "아내는 나한테 평어를 쓰고 나는 경어를 쓰기로 약속했다. 부를 때도 향수님, 상규씨 이렇게 부른다. 평상시엔 상관없는데 부부싸움을 할 때면 경어를 쓰기 때문에 실제로 분위기가 완화가 된다. 평등한 관계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제 앞으로 4년간 국회의사당과 정치현장에서 치열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될 이 당선자에게는 점수를 미리 획득해놓는 것이 급선무다. 그는 선거기간 동안 고마웠던 마음을 지면을 통해 '깨알같이' 전달했다.

 "매일 밖에서 뛰는 남편을 만나고 또 애 낳고 키우고 공부하고 직장생활 하느라 고생 많이 했다. 선거기간에도 집안일, 선거운동, 직장생활 3가지 다 하느라 고생 많이 했는데 미안하고 정말 고마워"

【서울=뉴시스】조종원 기자 = 19대 국회의원 이상규 통합진보당 당선자가 30일 오후 서울 관악구 난곡동 우림시장에서 지역주민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choswat@newsis.com
 ◇국방위든 보건복지위든, 맡겨만 다오

 오는 30일 19대 국회가 문을 열면 이 당선자가 활동하게 될 상임위원회는 어디일까?

 이 당선자는 "지역분들은 재개발이나 경전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토해양위원회를 하라고 하고, 당에서는 환경노동위원회를 하라고 하고, 법대 친구들은 법제사법위원회를 하라고 요구한다"며 "물론 행정안전위원회나 국방위원회로도 갈 수도 있다. 당내 당선자들끼리 모여서 의사를 타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당선자의 마음은 국방위원회나 보건복지위원회 쪽으로 기울어 있는 듯 했다. 그는 "국방위도 굉장히 의미 있다고 본다. 실제로 진보당 의원들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상임위가 바로 국방위"라며 관심을 표명했다.

 이어 "동북아의 평화질서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군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하는 점은 한국의 국제적 위상에 중요한 일이다. 강한 군대이면서도 평화를 담보하는, 또 동시에 국민의 신뢰를 받는 군대상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금은 전쟁개념도 국가와 국가만이 아니라 국지전과 대테러전 등 새로운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그동안 진보진영이 국방과 관련해 보수진영을 뒤따라갔다면 앞으로는 진보진영에서 먼저 대안을 제시하고 군의 비효율성을 개혁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부문에 대한 식견도 상당했다.

 이 당선자는 "단순히 복지 관련 예산을 올리거나 수혜 범위를 넓히는 쪽으로만 가서는 안 된다. 한국사회 복지체계의 틀을 사회 발전 전망 속에서 새롭게 짜야한다"며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은 한국사회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이다. 일자리를 대대적으로 만들고 지역 주민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된다. 일자리도 늘어나고 사회복지망이 짜인다. 그러면 정규직 일자리가 창출되기 때문에 내수도 확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를 거쳐 지금은 양극화 세대다. 양극화 세대 이후 한국적 대안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보건복지위도 그런 차원에서 당면한 과제를 해결해야한다"고 당부했다.

 통합진보당의 향후 진로에 관한 질문에는 '대선 승리가 최대 목표'라는 답변을 내놨다.

 이 당선자는 "우선 당직 선거를 잘 치러서 훌륭한 분들과 좋은 지도부를 세우는 게 과제다. 새 지도부의 1차적 과제는 바로 12월 대선 승리다. 대선 승리에 기여할 수 있는 지도부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대선 승리를 위해 야권연대는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야권연대를 한다고 꼭 이기는 게 아니다"며 "감동적인 선출과정을 통해서 훌륭한 인물과 지도적인 인물이 만들어져야한다"고 향후 과제를 제시했다.

 ▲1965년 1월7일 충북 제천 출생 ▲서울 용문고 ▲서울대학교 법대(공법학과 졸업) 학생회장 ▲1997년 국민승리21 권영길 대선후보 유세단장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노동위원장, 사무처장, 위원장 ▲2010년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 ▲건설 배관공(2011년)

 daero@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