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보다 개·고양이"…애인보다 반려동물이 좋은 사람들

기사등록 2012/01/29 05:00:00 최종수정 2016/12/28 00:08:38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2001년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외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영화는 노처녀 브리짓 존스(르네 젤위거 분)가 어린 시절 소꿉친구인 마크(콜린 퍼스 분)에게 무시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마크는 브리짓과 사귀어보라는 어머니의 권유에 "수다쟁이, 골초, 술고래에다가 아줌마처럼 옷을 입는 여자는 싫다"며 딱 잘라 거절한다.

 이 말을 엿듣고 충격을 받은 브리짓은 다음과 같이 혼잣말을 한다.

 "빨리 뭔가 바꾸지 않으면 남은 내 생을 와인과 뚱뚱한 몸매로 홀로 지내야하고 결국엔 죽은 뒤 3주 후 쯤 셰퍼드에게 반쯤 먹힌 채로 발견될 것이라는 걸 불현듯 깨달았다."

 브리짓의 끔찍한 상상이 최근 국내에서 현실이 됐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중순 서울 중구 회현동의 한 원룸에서 혼자 살던 50대 미혼여성 A씨의 시신이 반려견에 의해 훼손된 채 발견됐다.

 숨진 A씨의 시신이 방치된 동안 원룸 안에 갇혀있던 반려견 2마리가 먹잇감을 찾지 못하고 굶주린 끝에 A씨의 시신을 훼손한 것이다.

 이 사건은 '독신자+반려동물' 가구가 늘어나고 있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일면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인터넷 반려동물 카페에 게재된 여러 글에서도 이같은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결혼할 나이가 훌쩍 넘었는데 2개월짜리 개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개와 사람의 경계는 분명히 나눴는데. 정말 엄마가 된 기분입니다… 강아지에게 사람아이마냥 옷 입히고 사랑 주고 이런 거 솔직히 이해 못 했는데 이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근데 걱정입니다. 이러다 노처녀로 강아지와 늙어가진 않을지."

 "강아지를 처음에는 동물로만 알았는데 이제는 삶의 반려자가 돼버렸네요. 주변에선 결혼은 안하고 강아지만 키운다고 잔소리를 하지만. 그래도 어떡해요 좋은걸…."

 "장가가서 아이 낳는 거보다 강아지 3~4마리를 자식처럼 키우는 것이 취향에 맞는데 아는 분에게 '돈이 부담돼 결혼 안 하고 애완견을 자식처럼 키우겠다'고 하니 그 분이 그런 사람들은 개만도 못하다고 했습니다."

 "원래 나처럼 동물을 사랑하고 나중에 결혼해서도 개 한마리쯤은 정답게 길러볼 마음이 있는 남자를 만나고 싶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취향이 다른 남자와 오래 사귀게 됐는지… 이런 문제 때문에 계속 부딪치니까 결혼이고 뭐고 다시 생각해보고 싶어진다."

 게시판 글 외에도 한국사회가 인간과 동물을 생명 대 생명으로 동등하게 여기는 단계에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많다.

 심지어 배우자나 애인이 동물을 싫어하는 경우 이혼을 택하거나 헤어지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6개월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진 한 여성은 "도시생활에 지쳐있던 지난 5년 동안 위안이 돼준 개를 차마 버릴 수 없었다"고 답했다.

 지원금을 받고도 생활비 부족에 시달리는 한 기초생활수급대상자의 사연도 이같은 풍조를 재확인시킨다.

 받은 지원금의 절반을 반려견 사육에 써왔는데 최근 지원금 액수가 줄어들었고 결국 반려견 몫 대신 자신의 생활비를 줄이는 쪽을 택했다는 것. 

 ◇반려동물이 남친·여친보다 좋은 이유는?

 그렇다면 이처럼 애인·남편·아내보다 반려동물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최근 들어 강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가족관계·형태 변화와 가치관 변화, 경제 불황 등에 주목하고 있다.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을 꺼리다보니 1인가구(단독세대)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며 "1인가구가 많아지면서 현대인의 원초적인 고독 탓에 생명과의 교감에 대한 갈증이 커졌고 그 결과 교감의 대상이 인간에서 동물로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대표는 "특히 남성보다 여성이 교감과 소통에 대한 갈망이 더 크기 때문에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여성독신자가 크게 늘고 있다"며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을 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물보호단체에서 활동했던 한민섭씨는 "경제 불황이 이어지면서 결혼비용과 육아비용이 올라갔고 혼자 사는 사람들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그 결과 독신자들이 (배우자 대신)동물을 가족으로 생각하는 등 가족 형태의 과도기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심샛별 동물자유연대 전략기획국장도 "젊은이들의 경우는 야근에 시달리고 연애를 못하게 되자 반려동물을 통해 만족감을 느끼고 있고 나이 드신 분들은 자식들을 자주 만나지 못하다보니 가까이 둘 수 있는 반려동물에게 정을 붙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독신자+반려동물' 가구 어떻게 봐야하나?

 그렇다면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독신자를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은 어떨까.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상적인 삶의 형태로 보지 않고 백안시하는가하면 '결혼을 못한 채 외로움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못해 어쩔 수 없이 택한 방식'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같은 부정적인 시선은 도시화·서구화·고령화 현상을 먼저 경험한 이웃나라 일본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일본에서 동물보호단체 회원으로 활동하다 한국으로 시집온 일본인 A씨는 "한국에서는 독신자가 결혼하지 않고 반려동물과 살아가는 일을 문제시하는 분위기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본에서는 별일이 아닌 것으로 여긴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은 한국보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 결혼문제에 대해 서로 간섭을 안 하지만 한국에서는 결혼하지 않으면 주위 사람들이 빨리 결혼하라며 심하게 간섭한다"며 "반려동물이 결혼의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는 어르신들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국에서는 '임신하면 개를 기르면 안 된다' 등 잘못된 인식 때문에 다른 나라처럼 반려동물 문화가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며 "이런 게 서구국가들처럼 반려동물 문화가 정착된 일본과 한국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독신자+반려동물 가구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거둬야한다는 목소리와 더불어 이들을 '사회적 소수'로 간주하고 배려해야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민섭씨는 "다른 인종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상대로 튀기나 혼혈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 된 것처럼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이들 앞에서 '개고기가 맛있다' 등 발언을 하지 않도록 배려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씨는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독신자들의 가치관을 존중하고 그들과 공존할 수 있는 성숙한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근 동물 관련 제도가 바뀌고 있는 점은 독신자+반려동물 가구에게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내년부터 농어촌과 인구 5만명 이하 시군구를 제외한 전국에서 반려동물 등록제가 의무 시행될 예정인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 제도가 독신자+반려동물 가구를 위한 하나의 전기(轉機)가 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앞으로는 반려견 소유주가 지자체에 사육 사실을 등록하지 않거나 주소·전화번호 변경, 개 분실 등 사항을 신고하지 않으면 최대 100만원까지 과태료를 물게 된다.

 심샛별 국장은 "새 법에 따르면 이사를 할 때도 반려견을 버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간단히 넘길 수 없다"며 "이는 반려견을 가족의 일원으로 여기고 나아가 독신자+반려동물 가구를 가족의 확장된 한 형태로 인정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daero@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