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을 애완용품 처럼 기르다 마구 버리는 것도 문제
【서울=뉴시스】이예슬 기자 = 직장인 최수정(42·여)씨는 퇴근하고 집에 들어설 때마다 전쟁 아닌 전쟁을 치러야 한다. 7마리의 강아지들이 최씨의 발걸음 소리를 단숨에 알아채고 현관에서부터 최씨에게 달려들어 반기기 때문이다.
최씨를 엄마처럼 따르며 사랑을 표현하는 강아지들은 겉으로 보기에 구김살 하나 없이 사랑만 받고 자란 애완견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7마리 강아지 모두는 불과 몇해전까지 길거리를 떠돌던 유기견이었다.
그 중 '달래'라는 이름의 강아지는 피부병을 앓아 병원에서 치료를 하고 있는 상태에서 최씨에게 입양됐다. 최씨는 병이 있는 달래를 데리고 와서 정성껏 치료했다. 현재는 완치된 상태다.
최씨는 달래를 비롯한 세 마리는 2005년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에서 입양공고를 보고 집으로 데려왔다. 최씨는 처음 달래만 입양할 생각있었지만 나머지 두마리가 눈에 너무 밟혀서 세마리를 전부 입양했다고 한다.
나머지 네 마리는 한 동물보호소에 있던 강아지들이다. 새 주인을 찾기 전에 임시로 보호하다가 입양이 안 돼 결국 최씨의 집에 남게됐다.
전에도 유기견을 데려와 키운 적이 있는 최씨는 키우던 강아지가 수명을 다하자 다시 버려진 강아지들을 입양했다. '펫샵'에서는 어리고 작은 강아지가 가장 인기가 많지만 최씨는 사람들의 관심이 없는 늙고 병든 강아지들을 원했다.
최씨는 "반려동물을 키울 때 한번쯤은 유기견 입양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며 "편견없이 보면 이들도 어린 강아지 때 입양된 강아지와 마찬가지로 사랑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환경이나 상황이 변해도 끝까지 동물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입양신청을 해야한다"며 "더군다나 유기견은 이미 마음의 상처를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또 파양을 하는 것은 못할 짓"이라고 당부했다.
최근 반려동물을 동물병원이나 전문분양업체가 아닌 동물보호단체의 임시보호소에서 데려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반려동물 사지 말고 입양하기' 캠페인에 동물애호가들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더욱 두드러진 현상이다. 유명 연예인들까지 동참해 유기동물이 새 가족을 찾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KBS 2TV '해피 선데이-남자의 자격'은 유기견 위탁 미션을 수행해 시청자들에게 유기견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였다.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인 방송인 이경규·김국진씨 등은 실제 위탁을 맡은 강아지를 입양하면서 훈훈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방송인 이효리씨도 지난 1월 안성평강공주보호소에서 유기견 '순심이'를 입양해 행복한 일상을 공개하고 보호소를 찾아 청소 봉사활동을 하는 등 유기견 입양을 적극적인 모습이다.
이러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유기견들은 여전히 고통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시내에서 발견돼 동물보호시설로 수용된 동물은 총 1만8624마리로 전년대비 10.1%나 증가했다.
주인에게 다시 돌아가거나 새 주인에게 입양된 경우도 있었지만 임시 보호소에서 관리하다가 폐사한 경우가 3911건, 안락사가 6471건에 달했다.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동물이 전체의 절반(55.7%)이 넘는다.
이 수치는 사실상 빙산의 일각이다. 사설보호소에 수용된 유기동물들과 지금도 거리를 떠도는 유기동물들의 수를 합치면 실제 버려진 동물들은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길에서 구조된 동물은 자치구마다 정해진 보호시설로 보내진다. 이후 동물보호관리시스템을 통해 주인을 찾을 기회를 얻지만 10일이 지나도 마땅한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새로운 가정으로 입양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기동물들은 안락사로 생을 마감한다.
한 동물보호단체 관계자에 따르면 안락사를 시킬 때 임시보호소의 4분의 1 이상이 마취제 없이 근육이완제만 놓아 동물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임시보호소에 맡겨진 기간에도 여전히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은 남아있다. 몇몇 보호소에서는 관리를 소홀히 해 동물들을 방치하는 등 열악한 환경 때문에 전염병을 얻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 6월 부산시 위탁 유기동물보호소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나서 안락사를 앞둔 개에게 밥을 주지 않거나 다치고 병든 동물을 치료하지 않아 죽게 하는 등의 실정을 밝혀 논란이 됐다.
또 지난해 대전시 유기동물보호소에서는 비좁은 케이지 안에 이미 죽은 고양이와 어린 고양이를 함께 두는 등 충격적인 관리 실태를 고발한 내부고발자가 해임되기도 했다.
끔찍한 일을 겪는 유기동물들이 많아지는 이유는 애견산업이 발달하면서 브리더(breeder·번식업자)들이 돈을 벌 목적으로 무분별하게 번식을 시켜 개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동물을 사고파는 행위에 대한 규제가 사실상 없다보니 이를 막을 방안도 뚜렷하게 없는 실정이다.
동물병원이나 펫숍 등은 물론이고 인터넷 쇼핑몰에서까지 강아지와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판매하고 있다. 수십 개의 애견분양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분양금액을 입금하기만 하면 물건을 사듯 쉽게 동물을 고를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장난감처럼 동물을 샀다가 싫증나면 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동물을 생명체로서 존중해주지 않고 공산품을 매매하듯이 거래하는 행위가 유기동물의 수를 늘리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전지영 팀장은 "강아지나 고양이를 가족으로 맞으려면 15년을 책임지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며 "동물들이 돈만 내면 가질 수 있는 물건처럼 인식되는 가장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어 "영국 등은 동물판매업에 대한 규제가 까다롭고 16세 미만의 미성년자에게는 동물을 판매하지 않는 등 동물권리가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이에 관한 법적 근거가 미약한 수준"이라며 "판매업에 대한 규제를 하는 한편 동물권리에 대한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기동물에 대해서도 "지자체에서 가장 싼 가격으로 입찰한 보호소에 위탁운영권을 주는 행태가 만연하다"며 "지자체 직영 보호소를 건립하고 정부 차원에서 보호소 가이드라인과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shley85@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