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로 유명한 최남선은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정부기구였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로부터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는 등 대표적인 친일파 인물로 손꼽혔다.
육당과 17년을 함께 산 최씨는 그러나 육당의 행적이 조선의 세계화 작업이었다고 강조한다. 조선사 편찬위원과 중추원 참의 등 친일로 인식되는 부분은 근대 세계주의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불거진 오해라는 것이다.
최씨는 "육당의 친일을 가린 시기는 대략 1930년대부터 광복까지로 할아버지가 일제에 부역하는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할아버지의 조선사편수회 참가 이유는 '조선인이 인지하는 조선사 편찬'이었고, 총독부에 의해 이미 반(半) 일본화한 조선사를 깨뜨리고자 '세계사의 일부로서의 조선사'를 정립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최씨에 따르면, 육당은 근대화를 세계화의 문제로 여겼다. '세계'와 '조선'이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는가를 중시했다. 따라서 육당은 '제국주의의 붕괴와 식민지의 청산은 세계질서의 재편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라는 입장으로 조선학 운동을 폈다. 목표는 일본 제국주의라기보다 중세적 중화주의였다. 이러한 견해가 친일로 매도 당한 이유라고 최씨는 짚는다.
책은 또 최남선 개인뿐 아니라 선대부터 이뤄진 개화운동을 서술한다. 대원군의 쇄국정책에 반대한 최정섭(육당의 조부)의 유지를 최헌규(육당의 부친)가 육당에게 전하고 이후 최헌규가 육당의 신문화운동을 적극 후원한 배경 등을 전한다.
이와 함께 큰딸이 6·25 동란 때 인민군에 의해 피살되고 사위는 납북됐으며 셋째아들은 월북하는 등의 사연들을 통해 육당의 인간적인 면모도 소개한다. 336쪽, 1만8000원, 나남
한편, 지은이 최씨는 서울대 공대 졸업 후 1967년 미국으로 건너가 제약회사에서 일했다. 2005년 현직에서 은퇴한 후 조선광문회건물복원추진회 자문 등을 지내며 육당의 전기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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