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국립무용단, 밥그릇 싸움하다 공연 자체 날려버리다

기사등록 2019/06/05 17:08:05

국립무용단 '묵향'
국립무용단 '묵향'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국립무용단의 기대작 ‘색동’ 공연이 무산됐다.

국립무용단을 전속단체로 둔 국립극장은 “29, 3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초연할 예정이던 국립무용단 ‘색동’ 공연을 국립극장의 사정으로 2020년 상반기로 순연하고, ‘묵향’ 공연을 올리게 됐다”고 5일 밝혔다.

“‘색동’ 공연을 기다려준 관객 여러분들에게 불편을 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한다”면서 “공연을 예매해준 분들에게는 개별적으로 연락을 해 관련 법령에 따라 적절한 환급 조치를 하겠다”고 전했다.

제작비 7억원가량이 투입될 예정이던 ‘색동’은 ‘묵형’과 ‘향연’ 등을 연출한 의상 디자이너 출신 정구호가 연출, 전통무용계 원로 국수호·김영숙·박재희·백홍천 등이 안무에 참여할 것으로 예고돼 기대가 컸다. 지난해 7월 국립극장이 발표한 ‘2018~2019 레퍼토리시즌’에서 가장 주목 받은 작품이다.

극장은 ‘순연’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20여일을 앞두고 취소 사실을 알린만큼 사실상 무산에 가깝다. 공연계에 따르면 이번 공연 취소의 배경에는 일부 안무가와 단원들의 갈등이 있다.

무용계 관계자는 “원로 안무가와 단원들 사이에서 객원 무용수 출연을 놓고 갈등이 시작됐고, 이것이 일파만파 커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일부 단원들은 해당 안무가가 자신들에게 거친 말을 했다며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여기에 극장 측과 노조, 단원들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키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무용단 일부 단원들이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인권위원회에 감사를 요구하겠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지난달까지 국립무용단 단원들은 ‘색동’ 연습을 시작하지도 못했다. 김상덕 예술감독은 극장에 ‘국립무용단 색동 공연제작중단 결정문’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묵향’과 ‘향연’ 등 정 연출의 전작에 대한 기대감으로 ‘색동’의 좌석이 50%쯤 팔려나가자, 국립극장은 관객과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안무가, 단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나섰다. 하지만 역부족, 결국 공연 무산에 이르렀다.
  
10월 김 예술감독 임기를 앞두고 무용단 내 파벌 싸움이 벌어졌다는 진단도 있다. 무용계 관계자는 “원로 안무가들 사이에서 자신의 사람을 예술감독에 앉히기 위한 신경전이 벌어졌고, ‘색동’이 전초전이었다"면서 “현 감독과 극장이 적절하게 대처를 하지 못하면서 사단이 난 것으로 안다”고 지적했다. 국가의 세금으로 운영되며, 유연한 대처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극장의 리더십 부재에 대한 지적도 나오는 이유다.   

 전통무용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크지 않다. ‘향연’ ‘묵향’ 같은 모던한 작품이 나오면서 젊은 세대에서 관심이 점차 생겼다. 그런데 한국무용계가 이번 ‘색동’ 취소 건으로 스스로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됐다.

익명을 요구한 무용계 관계자는 “한국무용계가 좁다보니 조금이라도 이권이 보이는 자리에는 파벌 등을 놓고 다툼이 벌어지고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갈 것 같으면 원천봉쇄를 통해 의견을 소통할 수 없게 만든다”면서 “‘색동’ 무산에 대중은 큰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지만, 한국무용계의 고질병이 고치기 힘들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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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국립무용단, 밥그릇 싸움하다 공연 자체 날려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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