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블랙박스]빌헬름·칼 마이바흐 부자, 명차의 역사 쓰다

기사등록 2019/12/10 05:34:00

최종수정 2019/12/10 11:33:17

[서울=뉴시스]빌헬름 마이바흐
[서울=뉴시스]빌헬름 마이바흐


[서울=뉴시스] 박주연 기자 = 뉴시스는 블랙박스의 기능 중 하나인 '기록'에 초점을 맞춰 '車 블랙박스'  연재를 시작합니다. 자동차 산업은 수만개의 부품과 첨단 기술, 디자인 등 제조업의 총아로 자리하며 영광을 누렸습니다. 이제는 자율주행, 인공지능, 전동화, 커넥티드 등 기술의 발전에 발맞춰 모빌리티 산업으로 재편,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입니다. '車 블랙박스'는 자동차 산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망하며 독자들이 언제든 돌려볼 수 있는 유용한 기록 장치가 되고자 합니다. / 편집자주

세계적인 팝가수 마돈나,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한류열풍을 일으켰던 배용준. 이들의 공통점은 세계3대 명차로 꼽히는 '마이바흐'를 사랑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식 당시 국회로 이동하며 사용했던 차도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600 풀만 가드였고, 북한 김정은 위원장도 전용차로 마이바흐 S600 리무진을 선택해 화제가 됐다.

마이바흐는 다임러그룹의 창시자 고틀립 다임러와 절친했던 빌헬름 마이바흐와 그의 아들 칼 마이바흐에 의해 탄생했다.

다임러가 1890년 11월 다임러-모토렌-게젤샤프트를 설립했을 때 빌헬름 마이바흐는 이 회사의 수석 설계 엔지니어로 근무했고 벤츠에 큰 공헌을 해왔다. 하지만 1900년 다임러 사망 후 회사와의 마찰로 퇴사하게 된다.

그리고 1909년 빌헬름은 아들 칼과 함께 비행기 엔진을 개발, 제작하는 루프트파르조이그 모터렌바흐 유한회사를 설립했다. 칼이 기술이사를 맡아 항공기 엔진을 설계했다.

이 회사는 1910년대 마이바흐 모터렌바흐 유한회사로 이름을 바꾸고 지금의 '마이바흐'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개발을 담당하던 사람도 칼 마이바흐였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아버지인 빌헬름이 자동차의 대량생산을 준비하는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여러가지 발명을 한 데에 이어 20세기에는 아들 칼이 아버지의 뒤를 이은 것이다.

[서울=뉴시스]칼 마이바흐
[서울=뉴시스]칼 마이바흐
마이바흐 모터렌바흐 유한회사의 로고는 둥근 삼각형 안에 두 개의 M이 겹쳐진 모양이었다. 이 회사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회사가 비행기 엔진을 만들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바르세유 조약에 따라 항공기 엔진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대신 다양한 곳에 적용될 수 있는 다목적 컴팩트 고속 디젤 엔진과 승용차용 가솔린 엔진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마이바흐는 1924년 철도를 위한 고속 디젤 엔진을 소개했다. 또 독일과 해외에 있는 다양한 자동차 제조업체의 승용차용 엔진을 판매할 계획을 세웠다.

1920~30년대는 마이바흐의 황금기였다.

1919년 마이바흐 엔지니어들은 6기통 사이드 밸브 엔진 'W1'을 테스트하기 위해 W1으로 명명된 시험용 차량을 만들었고, 이것이 마이바흐의 시작이 됐다.

칼 마이바흐는 대규모 생산 설비를 활용해 자체 차량 생산에 돌입했고, 1921년 9월 베를린 모터쇼에서 최초의 생산 차량인 마이바흐 'W3'를 공개했다. 4륜 제동 시스템과 기어시프트가 없는 2단 변속기 등의 혁신적인 기능들이 포함됐다.

이 차량은 '신사 운전자'(gentlemen drivers) 고객군을 타깃으로 했는데, 신사 운전자'란 운전기사를 두지 않고 직접 차량을 운전하는 남성과 여성을 의미했다.

[서울=뉴시스]메르세데스 마이바흐 S클래스
[서울=뉴시스]메르세데스 마이바흐 S클래스
1929년 말 마이바흐는 최초의 12기통 모델 '타입12'를 출시, 독일 자동차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마이바흐는 7리터의 배기량, 150hp의 출력을 자랑하는 V12 엔진으로 구동되는 이 차량을 됐다. 마이바흐는 타입 12을 기업 이사와 고위급 정치인을 위한 최상급 모델로 포지셔닝했다.

1930년에는 약 3t 중량에 최고 속도가 150km/h에 이르는 마이바흐 체펠린 DS7이 출시됐다. 성능과 안락함에 초점을 맞춰 설계된 모델이었다. 체펠린이라는 이름은 카운트 체펠린 비행선을 상징하는 동시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독일의 최고 항공 기술을 상징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이바흐가 1921년 고급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해 1941년까지 생산한 차는 고작 1800여대에 불과했다. 전체공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이바흐는 2차 세계대전으로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

2차 세계대전 중 마이바흐는 1940년부터 만들던 SW 42의 생산을 중단했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시기에는 약 70%의 건물이 폭탄에 의해 파괴됐다. 남아있는 건물마저 프랑스 점령군에 의해 부분적으로 해체됐다.

마이바흐는 전후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1960년 칼 마이바흐가 사망하며 동력을 잃었다.

【서울=뉴시스】다임러 그룹이 2012년 단종 시킨 마이바흐가 몸값을 대폭 낮춰 다시 돌아왔다. 사라진지 3년여 만에 메르세데스-벤츠의 하위 브랜드인 '더 뉴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 클래스'로 모습을 바꿔 올해 국내에 출시된 것이다.2015.08.03.(사진 = 메르세데스-벤츠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다임러 그룹이 2012년 단종 시킨 마이바흐가 몸값을 대폭 낮춰 다시 돌아왔다. 사라진지 3년여 만에 메르세데스-벤츠의 하위 브랜드인 '더 뉴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 클래스'로 모습을 바꿔 올해 국내에 출시된 것이다.2015.08.03.(사진 = 메르세데스-벤츠 제공) [email protected]
마이바흐는 이후 1966년 메르세데스-벤츠와 합병돼 마이바흐 메르세데스-벤츠 모터렌바흐 유한회사가 됐고, 1969년에는 '마이바흐'의 이름이 빠진 '모터렌 운트 투어비넨-우니온 프리드리히샤펜'으로 회사명을 바꿨고, 1996년부터는 다임러-벤츠 AG에 소속되게 된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듯 했던 '마이바흐'는 2002년 다임러크라이슬러에 의해 60년만에 '마이바흐 57'과 '마이바흐 62'로 다시 부활했고, 전 세계 부호들이 소유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마이바흐는 여전히 대부분의 공정을 수작업으로 진행, 하루에 3대 정도만 차를 생산했다. 차를 한 대 생산하는데 걸리는 기간도 5~6개월에 달했고, 결국 판매 부진으로 모든 모델이 단종됐다.

메르세데스-벤츠는 2014년 자사의 서브 브랜드 '메르세데스-마이바흐'를 최초로 선보였다. 2014년 11월 LA 모터쇼에서 세계 최초로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클래스'를 선보였다. 이어 2015년 제네바 모터쇼에서는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 600 풀만이 공개됐다. 6.5미터의 길이의 차량은 넉넉한 공간에 세련된 클럽 라운지 공간을 뒷좌석에 갖추고 있으며, 다양한 편의사양을 탑재했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는 럭셔리 리무진인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 600 풀만 가드', 컨버터블 전기 컨셉트카인 비전 '메르세데스-마이바흐 6 카브리올레', SUV와 세단이 가진 DNA를 결합한 초현대적인 컨셉트 SUV인 비전 '메르세데스-마이바흐 얼티메이트 럭셔리' 등 다양한 럭셔리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는 "최상의 세그먼트 안에서도 자신만의 개성과 고급스러움을 극대화할 수 있는 S-클래스를 원하는 고객들이 늘어나면서 '메르세데스-마이바흐'가 탄생할 수 있었다"며 "메르세데스-벤츠는 빌헬름 마이바흐로부터 출발한 메르세데스-마이바흐라는 럭셔리 서브 브랜드를 선보이며 고객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車블랙박스는 자동차 산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담아 매주 화요일 연재되는 고정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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