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덕에 구속 피했다?…김은경 영장기각 사유 논란

기사등록 2019/03/26 18:00:30

기각 사유에 '최순실 일파 국정농단' 언급

"정치적 사례 언급,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26일 새벽 '환경부 블랙리스트' 구속영장이 기각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서울 송파구 서울 동부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2019.03.26. park7691@newsis.com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26일 새벽 '환경부 블랙리스트' 구속영장이 기각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서울 송파구 서울 동부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2019.03.26.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박은비 김온유 기자 = 법원이 현직 시절 표적감사 의혹 등을 받고 있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정치적 판단'으로 볼 여지가 있는 표현을 사용해 논란이 생기고 있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법 박정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김 전 장관 구속영장을 기각하며 "일괄 사직서 청구 및 표적감사 관련 혐의는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과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인해 공공기관에 대한 인사 및 감찰권이 적절하게 행사되지 못해 방만한 운영과 기강 해이가 문제됐던 사정 등을 고려해 이 부분 혐의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임원추천위원회 관련 혐의의 경우에는 "청와대와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임원추천위원회 단계에서 후보자를 협의하거나 내정하던 관행이 법령제정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장기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피의자에게 직권을 남용해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다는 구성요건에 대한 고의나 위법성 인식이 다소 희박해보이는 사정이 있다"고 설명했다.

박 부장판사는 또한 "객관적인 물증이 다수 확보돼 있고 피의지가 이미 퇴직함으로써 관련자들과는 접촉하기가 쉽지 않게 된 점에 비춰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염려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이 중에서 논란을 산 대목은 '국정농단'과 '탄핵'을 언급한 일괄 사직서 청구 및 표적 감사 관련 혐의에 대한 판단 근거다.

구속영장은 혐의 소명 여부, 도주 및 증거인멸 가능성에 대한 판단이 기본이자 핵심이다. 그런데 과거 '상황적 특수성'을 개입시키는 것은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평가를 떠나 구속영장 심사에 '최순실 일파'라는 표현을 동원해가며 "당시 공공기관에 대한 인사 및 감찰권이 적절치 못하게 행사됐다"는 내용이 들어가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지적을 낳을 수 있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영장 재판은 도주 우려나 증거 인멸을 기본으로 사안의 중대성 등을 기각이나 발부의 근거로 삼는다"면서 "과거 정치적 사례를 운운하며 기각을 결정했다는 부분은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검사 출신 변호인은 "법원이 잘 판단했을 것"이라면서도 "그런 사례와 비교한다는 것은 정치적 논란이 일어날 수 있어서 기피할 법도 한데 설명을 명확히 하고자 굳이 안 써도 되는 표현까지 기재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퇴직자에 대한 배려도 비판 대상이 됐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퇴직해서 관련자들과 접촉점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OB들과의 연결고리가 없을 수가 없다"며 "퇴직자라는 점은 중요하게 고려할 사항이 아닌데 두고두고 비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이번 판단은 논리의 중립성, 객관성에 있어서 너무 주관적인 판단이 들어간 게 아닌가 싶다"며 "영장 판단이 아니라 헌법재판소 결정처럼 쓴 것 같다"고 비판했다.

다만 도주나 증거인멸 염려가 없는 상황에서 '사안의 중대성'만 놓고 봤을 때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지금 거론되는 사람들이 과연 최씨 농단에 해당하는 인사라면 모르겠는데, 그런 연계성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게 탄핵 정국 연장선상에 있다고 하는게 논리적으로 맞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례적으로 긴 구속영장 기각 사유는 최근 사법농단 수사에서 구속 위기를 벗어난 유해용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 사례와 닮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시 법원은 대법원 판례를 언급하면서 기각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이번 김 전 장관의 기각 사유에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관련 지난 1993년 7월 대법원 판례가 언급됐다.

영장 사건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법원에 바라는게 있다면 모든 사건을 공평하게 해달라는 것"이라며 "일반 사건은 한 사건당 10~15분 심사하고 두세줄짜리 결정문을 써버리면서 관심이 큰 사건은 판결문을 쓰듯 장황하게 쓰면 국민들이 내 사건은 소홀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며 "결국 사법불신을 초래할 수 밖에 없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검찰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추가 및 보강 수사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지난 25일 김 전 장관의 구속 심사에 앞서 "균형있는 결정을 기대한다"고 밝혔던 청와대 측은 이날 "영장전담판사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검찰 수사를 계기로 문재인정부의 청와대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공공기관의 장과 임원에 대한 임명 절차를 보다 투명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나가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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