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구스타보 두다멜, 그가 지휘하면 음악은 마법이 된다

기사등록 2019/03/15 18: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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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ociate_pic4구스타보 두다멜 ⓒ마스트미디어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38)은 '기적의 현현'이다.

1981년 베네수엘라 서북부에 있는 라라주의 주도이지만, 가난한 도시 바르키시메토에서 태어났다. 두다멜의 가정 역시 가난했다. 부친은 살사 트럼본 연주자, 모친은 성악 교사였다. 주변 친구와 가정 모두 가난했다. 이 도시의 상당수가 빈곤했다. 범죄도 빈발했다.
 
여섯 살짜리 곱슬머리 꼬마 두다멜을 지켜준 것은 음악이었다. 그때부터 지휘봉을 흔들었다. 마치 오케스트라 단원들처럼 장난감 인형들을 세워둔 뒤 눈을 감고, 힘껏 나뭇가지를 오른쪽과 왼쪽, 위와 아래로 흔들었다.

그리고 열 살에 '엘 시스테마'의 지역학교에 들어가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두다멜의 음악 능력은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경제학자 겸 오르간 연주자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주도로 탄생한 엘 시스테마는 음악을 통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문화예술교육의 상징.

두다멜은 1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내 어린 시절은 음악 그 자체"라고 말했다. "음악에는 마법이 있다. 음악은 우리를 지배한다. 우리가 가진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아이인 내게 그것은 선물이었다. 음악으로 마법 같은 시간을 나눠 가졌다."

두다멜은 '오픈 마인드'로 유명하다. 살사 음악을 연주한 아버지 덕에 라틴 음악이 어린 시절을 지배했지만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클래식음악가가 돼 있다. "그러니 음악에는 경계가 없다"며 웃었다.

두다멜은 열다섯 살 때부터 아브레우에게 지휘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열여덟살에 엘 시스테마가 배출한 영재 연주자 집단 '시몬 볼리바르 유스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됐다.

associate_pic4【할리우드=AP/뉴시스】 1월22일 미국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이름을 올린 구스타보 두다멜
10년 뒤 스물 여덟살 때인 2009년 9월, 세계 정상급 악단인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최연소 상임 음악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두다마니아(Dudamania)'라는 신조어가 생겨났고, 클래식 음악계의 센세이션이 됐다. 올해 1월22일에는 할리우드 명예의거리에 이름을 올렸다. 베네수엘라인으로는 최초다.

두다멜은 "매 순간 지휘하고 음악을 들을 때마다 마법을 느낀다"고 했다. "길지 않은 인생에서 최고의 아티스트들과 작업하는 특권은 인생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유스 오케스트라'와 함께 작업할 때도 마찬가지다. "고향 마을에서 꿈꾸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음표와 싸우던 때 말이다. 음악을 통해 꿈을 키우는 아이들이나, 아이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연주하는 것을 볼 때 마법을 경험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바꾸고 주변을 바꾸는 것은 멋지다."

올해 창단 100주년을 맞아 투어를 하는 LA필은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함께 데리고 다닌다. 두다멜은 "미래를 상징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투어를 하는 것 역시 마법"이라며 즐거워했다.

엘시스테마에서 영감을 받아 2007년 시작한 LA의 청소년 음악교육 프로그램 욜라(YOLA)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공연장으로, LA 잉글우드에 청소년오케스트라 욜라 센터도 짓는다. 두다멜은 "LA에 부유하지 못한 아이들을 위한 에듀케이션 센터를 오픈한 것 역시 마법"이라고 했다.
 
associate_pic4【할리우드=AP/뉴시스】 구스타보 두다멜,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미국은 국가에서 지원금을 받을 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막대한 재원은 개인 기부로 조성한다. LA필 사이먼 우즈 CEO는 "감사하게도 LA의 많은 개인 기부자가 욜라를 지원하고 있다. 재단 커뮤니티가 잘 돼있다. 욜라가 가지고 있는 청소년과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에 많은 분들이 공감한다"고 귀띔했다.

두다멜의 조국인 베네수엘라는 역대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다. 극심한 경제난 만으로도 모자라 정치적으로 혼란을 겪고 있다. 최근에는 대규모 정전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이런 베네수엘라에도 음악이 마법 같은 상황을 선물할 수 있을까.
 
"내 고향이 끔찍한 상황에 처해 있다. 새로운 시대가 오면 음악이 좋지 않은 상황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엘 시스테마의 정신이기도 하다. 사람을 한 데 모으는 것이다. 음악의 힘과 마법은 사람을 한 데 모으는데 있다."

그러면 사회적 혼란이나 비극 앞에서 음악이 아닌 음악가의 역은 무엇일까. "음악가 역시 자기 역이 있다. 사람을 화합하고 결속시키는 구실을 한다. 사회가 불안정할수록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려 한다. 진정한 예술가는 그 사람들을 결속시킨다. 음악은 분노와 불안을 치료하는 다리가 돼야 한다."

두다멜은 2008년 엘 시스테마 악단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함께 첫 내한했다. 2015년 LA필과 함께 두 번째 내한했다. 16일 오후 8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세 번째 내한 공연을 한다.

associate_pic4구스타보 두다멜,  에스더 유 ⓒ마스트미디어
첫 내한 때 들려준 말러 교향곡 1번 '거인'을 이번에도 연주한다. 해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두다멜은 "내 대답은 예스 & 노"라며 웃었다.

"교향곡에는 영혼이 존속한다. 내가 이 곡을 맨 처음 지휘했을 때가 열 여섯 살이다. 이후 지휘자로서 성장해왔고 오랜시간 이 곡과 함께 해 왔다. 그러다보면 새로운 관점과 요소가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영혼은 계속 유지됐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사랑과 비전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곡에 담긴 젊은 정신 또한 마찬가지다. 말러 본인도 젊었을 때 이 곡을 작곡했다. 당시 스물여덟살이다. 나는 이 곡을 지휘할수록 점점 더 어려지는 것 같다. 하하."

말러 교향곡 1번 '거인'을 100번 이상 지휘했는데 매번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10대 때 이 곡을 연주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봤다고 한다. "곡의 부제가 거인이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젊은 느낌이 든다. 내일 이 곡을 지휘할 때 어떤 느낌을 받을지 기대가 된다."

열여덟살에 프로 지휘자가 된 뒤 20여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왔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지휘자로 통하는데 시간과 체력 관리를 하는 비결이 있을까. "하는 일을 즐기고 있다는 것, 그것이 내 비밀"이라며 웃었다.

"언제나 짬을 내 숙고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예술적인 시간은 혁명이기도 하다. 내게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준다. 세월이 지날수록 깊어진다. 그런데 정신과 아이디어는 젊게 유지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하는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을 존중해야 한다."

두다멜과 LA필은 16일에 말러 교향곡 1번 '거인' 외에 존 애덤스가 중국 피아니스트 유자왕을 염두에 두고 작곡한 ‘악마가 좋은 소리를 다 가져야 할까?'(Must the devil have all good tunes?)도 들려준다. 클래식계 패셔니스타로도 유명한 유자 왕이 협연한다. 아시아 초연이다. 다만 컨디션 난조로 유자왕은 이날 기자회견에 함께 하지 못했다.
associate_pic4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기자회견 ⓒ마스트미디어
이날 연주 전 오후에는 한국 '꿈의 오케스트라'와 LA필이 리허설을 함께 한다. '꿈의 오케스트라'는 한국판 엘 시스테마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지원한다.

이번 LA필 내한공연은 100주년 기념 페스티벌 형식으로 펼쳐진다. 해외 대형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으로는 이례적으로 3일 간 열린다.

17일 오후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는 영화 음악 거장 존 윌리엄스의 음악으로 영화음악 콘서트를 연다. 윌리엄스는 'E.T.' '쥐라기 공원' '스타워즈' '조스' ‘해리포터’ 등으로 유명하다.

두다멜과 LA필은 윌리엄스의 곡들을 연주한 앨범 '셀러브레이팅 존 윌리엄스'를 유니버설뮤직 그룹의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DG)을 통해 발매했다. '죠스' 'E.T' '스타워즈' '슈퍼맨' '해리포터' 등의 테마가 실렸다.

또 18일 오후 8시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는 LA필 수석 연주자들이 모인 'LA필 체임버 앙상블'과 유자 왕, 한국계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에스더 유가 실내악 무대를 선보인다. 에스더 유는 "연주자에게는 실내악이 중요하다. 생각을 할 수 있고 새로운 것을 연구하며 발전할 수 있는 기회"라면서 "두다멜, LA필, 유자왕과 함께 해서 큰 영광이다. 오랜 꿈이 이뤄진 느낌"이라며 기뻐했다.

이번 LA필 공연을 2년 전부터 기획한 마스트 미디어 김용관 대표는 "해외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역사상 가장 많은 인원인 232명이 한국을 찾았다. 192명의 오케스트라 단원과 스태프 외에 개인 기부자 등 여러 관련된 분들이 함께 왔다"면서 "새로운 개념의 클래식 페스티벌로 즐거운 축제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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