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전 오늘①]전두환·쿠데타…80년 5월의 광주

기사등록 2017/05/15 10:48:11

【광주=뉴시스】배동민 기자 = 오는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정부 기념식이 열린다. 사진은 1980년 5월 광주지역 대학교 교수와 학생들이 민족민주화성회 집회를 위해 태극기를 앞세우고 질서정연하게 가두행진을 하는 모습. 2017.05.14. (사진=5·18기념재단 제공)   photo@newsis.com
【광주=뉴시스】배동민 기자 = 오는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정부 기념식이 열린다. 사진은 1980년 5월 광주지역 대학교 교수와 학생들이 민족민주화성회 집회를 위해 태극기를 앞세우고 질서정연하게 가두행진을 하는 모습. 2017.05.14. (사진=5·18기념재단 제공)  [email protected]
【광주=뉴시스】배동민 기자 = '탕, 탕, 탕' 1979년 10월26일, 청와대 부근 궁정동의 작은 골목에서 울린 총성은 박정희 유신 독재 정권의 끝을 알렸다.

 열흘 전 부산을 중심으로 유신정권 타도와 민주주의를 외쳤던 '부마사태'가 그 시작이었다.

 '우리도 100만명쯤 못 죽이겠나'라는 경호실장의 말에 편을 든 박정희에게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총을 당겼다.

 이듬해 5월, 광주의 봄은 그렇게 시작됐다. '잊어서는 안 되는 시간, 37년 전 그날의 시간을 다시 조명해 본다. <편집자 주>

 ◇ 12·12쿠데타…전두환

 박정희가 숨진 뒤 군 내부에서 정치 군인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요구가 강해졌다. 정승화 참모총장이 은밀하게 제거하려던 인물이 전두환 보안사령관이었다.

 그런데 정보가 샜다. 그해 12월12일 전두환은 쿠데타를 감행했고 이른바 '신군부'가 정권을 잡았다.

 쿠데타에 성공한 전두환과 군사반란세력은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제압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했다. 1980년 2월 중순 '언론대책반'을 보안사령부 정보처 산하에 설치하면서 언론을 통제했다.

 '충정부대'를 만들어 강도 높은 폭동진압 훈련을 지시했다. 대학교 개학 시기에 맞춰 이른바 운동권을 겨냥한, 실전을 방불케 한 훈련이었다.

 1980년 4월14일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취임하면서, 두 개의 핵심적인 국가정보기구를 장악했다. 겸직 발표에 재야와 정치권이 거부 반응을 보였고 미국 정부는 정례적인 '한미안보협의회의'마저 연기했다.

 이후 전두환은 당시 김대중 국민연합 공동대표 등을 국가기강 문란죄로, 김종필 공화당 총재와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을 권력형 부정축재자로 지목했다. 집권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인사들을 제거하기 위한 수순이었다.

 ◇ 1980년 5월 광주

 5월2일 서울대의 '민주화 대총회'에 1만여명의 학생들이 참가했다. 전국 대학생들은 행동을 통일하기 위해 '민주화 대행진' 기간을 선포했다.

 재야 인사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같은 달 7일 김대중과 윤보선 등이 주축이 된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이 민주화 추진 국민선언문을 발표했다.

 5월10일 고려대 총학생회실에 모인 전국 23개 대학 학생 대표들은 '비상계엄 즉각 해제' '전두환 물러가라' '유신 잔당 퇴진' 등을 결의하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광주에서 14일부터 전남대와 조선대 학생들이 가두시위에 나섰다. '비상계엄 해제' '전두환 물러가라' 유신 잔당 타도하자'를 외쳤다.

 그날 오후 2시 대학생들과 함께 고등학생들도 시내로 쏟아져 나왔다. 1만여명에 이르는 시위대가 도청 앞 광장을 빼곡히 메웠다.

 15일 광주에서는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학생들의 집회가 열렸다. 전남대 교수들도 동참했다. 맨 앞에 대형 태극기를 넓게 펴든 채 앞장선 여섯명의 학생들 뒤로 50여명의 교수들이 함께 행진했다.

 그런데 이날 밤 서울 지역 총학생회 대표들이 모여 긴급회의를 열고 시위를 중단하고 학교로 복귀하자는 결정을 내렸다. 이른바 '서울역 회군'이 결정된 것이다.

 "학생들의 뜻이 정부에 충분히 전달됐고 군 투입 가능성이 높아졌으며 이틀 간의 대규모 시위에도 정부가 휴교령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보아 언제든 대대적 시위를 벌일 수 있으니 일단 시위를 중단하고 학교로 돌아가자"는 결정이었다.

 광주는 이를 거부했다.

 이에 15일 전북 금마에 주둔 중이던 7공수여단 병력이 광주로 출발했다. 이날 신군부는 공수부대를 광주의 각 대학으로 이동시킬 준비를 완전히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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