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TV 드라마 등 매체 연기에서 감정의 날 것은 걸림막에 의해 한 차례 깎인다. 무대에서는 이런 방해물이 없어 관객들에게 생생히 와닿는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원작인 뮤지컬 '베르테르'는 조승우의 그런 감정이 도드라진다. '롯데'를 향한 애절함, 그리움은 조승우의 '베르테르'로 인해 생생히 펄떡거린다.
음악극 분위기를 풍기기도 하는 '베르테르'는 뮤지컬치고는 연극처럼 멈춰지는 순간이 꽤 있다. 그 진공은 인물들의 감정이 응축되는 찰나다. 그 때에도 인물의 아픔이 느껴지는 까닭은, 조승우의 카리스마 덕분이다. 롯데를 그린 그림을 그녀에게 건넬 때 손의 미세한 떨림은, 영상 매체처럼 클로즈업이 되지 않아 풍경화 같은 인상을 풍기는 대형 뮤지컬에서도 정물화를 보는 듯한 설렘을 선사한다.
'하룻밤이 천 년' '발길을 뗄 수 없으면' 등 한 번 들으면 입으로 흥얼거리게 되는 쉽고 애잔한 선율이 뮤지컬의 방점이기도 하다. 실내악단 멜로디인데 이 역시 조승우의 목소리를 빌려 더 애절해진다.
조승우는 13년 만에 이 역을 맡았는데 더욱 능수능란해진 면모도 엿볼 수 있다. '맨 오브 라만차' 등에서 그의 애드리브는 팬들에게 인기가 많은데 1막 초반 밝고 순수한 면모가 도드라지는 장면에서, 이런 장기가 발휘되며 팬들을 사로잡는다.
비극으로 점점 감정이 휘몰아치는 2막에서는 돌연 진지해진다. 이미 '알베르트'의 아내가 된 롯데를 사랑하면 안 되는데 마음이 계속 끌리는 것을 표현할 때는 지킬 또는 하이드이고, 사랑의 열병을 앓을 때는 꿈을 앓는 돈키호테가 보였다. 그럼에도 캐릭터가 비슷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조승우의 매력이다.
조승우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뮤지컬은 공동 작업인만큼 다른 배우들 없이 마냥 홀로 빛나기는 힘들다. 그 중 발군은 전미도(33)인데 작은 체구로 큰 에너지를 발산하는 배우인 그녀는 밝고 연약하지만 청순한 팜 파탈의 매력을 풍기는 롯데를 안성맞춤으로 연기한다. 특히 '닥터 지바고' '맨 오브 라만차'에 이어 조승우와 세 번째 호흡을 맞추게 됐는데, 어느 때보다 단단하다. 수년째 알베르트를 연기하는 이상현(38)은 우직함과 이성을 강조하는 이 역의 모범답안이 됐다.
극본은 연극 '푸르른 날에' '홍도'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과 뮤지컬 '아리랑' 등을 통해 스타연출가 거듭난 고선웅이 썼는데 그의 생생한 감정 톤이 드러난다. 감정의 계산 없이, 자신의 신념대로 가는 것. '베르테르'는 사랑에 그러한데, 돈뿐 아니라 사랑도 계산하기 바쁜 이때 베르테르의 심정에 한번쯤 빠져 살아보고픈 충동이 일게 만든다. 베르테르 대사처럼 "자기 가슴이 시키는대로" 가고픈 것이다. 창작뮤지컬로는 이례적으로 마니아층을 보유하며 15년 간 25만명을 끌어모으며 인기를 누린 이유가 있다.
2016년 1월10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베르테르 엄기준·조승우·'슈퍼주니어' 규현, 롯데 전미도·이지혜, 알베르트 이상현·문종원. 작곡 정민선, 음악감독·협력연출 구소영, 무대 디자이너 정승호, 의상 디자이너 한정임. 러닝타임 140분(인터미션 포함) 6만~12만원. CJ E&M 공연사업부문·극단 갖가지·창작컴퍼니다. 02-371-8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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