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87세를 일기로 별세한 일본 만화계 거장
국내에서 이 작품은 1970년대 만화잡지 별책부록 형태의 해적판 '도전자 하리케인' 등으로 처음 유입됐다. 결정적으로 대중적 신드롬을 일으킨 계기는 1993년 MBC에서 TV 애니메이션판을 '도전자 허리케인'이라는 제명으로 방영하면서부터다.
당시 당대 최고의 로커였던 가수 김종서가 거친 샤우팅으로 부른 오프닝 주제가 "이름도 묻지 마라 고향도 묻지 마라, 싸움과 눈물로 얼룩진 내 인생"은 단숨에 청소년과 대학생들의 가슴을 흔들었다. 거칠고 쓸쓸한 고독을 품은 사나이의 정서와 록 보컬의 폭발력은 만화의 비장미와 완벽히 맞아떨어졌다.
'내일의 죠'는 전형적인 소년 스포츠 만화의 승리 공식을 철저히 비껴간 작품이었다. 주인공 야부키 죠는 정의로운 영웅이 아닌, 도야가이(빈민가)와 소년원을 전전하던 반항아이자 결손투성이의 '안티히어로'였다. 고아원 출신이라며 사람들을 속여 돈을 뜯어내던 불량 소년이 사각의 링 위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사르는 과정은 단순한 권투 이야기를 넘어 가난과 절망에 짓눌린 밑바닥 인간 군상의 실존적 투쟁을 날것 그대로 담아냈다.
작품의 마지막, 세계 챔피언 호세 멘도사와의 처절한 사투 끝에 코너 링에 걸터앉아 미소 지으며 남긴 "새하얗게 불태웠어(真っ白に燃え尽きた)"라는 죠의 독백은 일본 만화사 최고의 명대사를 넘어 한국에서도 독보적인 생명력을 얻었다. 승패를 떠나 모든 에너지를 남김없이 쏟아붓고 껍데기만 남은 상태를 뜻하는 이 대사는 오늘날까지 인터넷과 대중문화 전반에서 '하얗게 불태웠다'는 불멸의 관용구이자 밈(meme)으로 소비되고 있다.
이 작품이 뿜어낸 불온하고 치열한 에너지는 시대와 국경을 건너 대중예술의 모티브로 끊임없이 변주됐다. 1970년 일본 공산주의자동맹 적군파가 요도호 공중납치 사건을 일으키며 남긴 "우리는 내일의 죠다"라는 선언은 만화가 한 시대의 청년 이데올로기와 어떻게 결합했는지를 보여준 극단적 사례였다. 최근 변성현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 역시 이 요도호 사건의 서사 속에서 '내일의 죠'의 만화 원작 삽화와 대사를 주요 극적 장치로 차용하며, 비상한 결의로 자신을 하얗게 불태우려는 인물들의 맹목성을 비추는 거울로 작동시켰다.
창작자의 울타리를 넘어 만화계의 토양을 일군 교육자이자 행정가로서의 족적도 뚜렷하다. 1980년 신설돼 46년간 이어진 '지바 데쓰야 상'은 '카이지'의 후쿠모토 노부유키, '킹덤'의 하라 야스히사, '골든 카무이'의 노다 사토루, '드래곤 사쿠라'의 미타 노리후사 등 오늘날 일본 만화계를 이끄는 기라성 같은 후배 작가들을 배출한 등용문이 됐다. 2005년부터는 문세이예술대학에서 직접 학생들을 지도했고, 일본만화가협회 회장을 맡아 표현의 자유와 만화가의 권익을 지켰다. 2024년에는 만화가로서는 사상 최초로 일본 문화계 최고 영예인 문화훈장을 받았다.
여든이 넘은 만년에도 펜 끝을 가볍게 쥐고 흔들리는 선으로 자신의 피란 체험과 일상을 담은 에세이 만화 '히네모스 노타리 일기'를 연재했던 노거장은, 자신이 그린 죠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펜을 쥔 채 70년의 화업을 온전히 연소하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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