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 깬 고백…다시 쓰이는 '이발관'의 시간
이석원, 지난 18일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무대 화제
10년 만의 대형 페스티벌 출연…앳된 청년 팬들 많아
새 에세이 '언젠가 이발관'도 펴내
21일 공연계에 따르면, 당일 검은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턱에 걸친 채 무대에 오른 이석원의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공간은 어두웠다. '무대 공포증'이라는 그의 오랜 고백처럼 조명은 세션만을 겨우 비췄고, 사진 촬영은 엄격히 금지됐다. 시각이 철저히 차단된 자리를 채운 것은 오직 예민한 청각, 그리고 무대 뒤 전광판을 수놓은 '활자'들이었다. 곡마다 다른 폰트와 이미지로 노랫말을 송출했다.
정확한 단어로 조립된 슬픔은 때로 그것을 발음하는 이의 육신마저 무너뜨린다. '산들산들'을 부르던 중 "나는 이런 평범한 사람"이라는 후렴구에 다다랐을 때, 이석원은 결국 목이 멨다. 노래는 중단됐고 옅은 흐느낌이 스피커를 탔다. 그가 차마 내뱉지 못한 언어의 공백은 객석의 떼창이 메웠다. 스스로를 비범한 예술가가 아닌 일개 평범한 사람으로 긍정하기까지 걸린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 관객들이 함께 흘린 눈물은, 각자의 삶에서 견뎌내고 있는 '보통의 존재'로서의 비애가 서로에게 가닿는 정확한 공명의 순간이었다.
이 비애는 결코 무겁게만 침전하지 않았다. 이석원은 특유의 서늘한 농담과 애정으로 무거운 공기를 틈틈이 환기했다. 자신의 휴대전화에 담긴 미발표 발라드 데모곡 '성시경'을 마이크에 대고 들려주는 모습은, 그가 여전히 음악이라는 매개로 사람들과 온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창작자임을 보여줬다. 28년 전 '유리'를 녹음하며 상상했던 "관객과 우주에 둥둥 떠서 체조하는 풍경"은 이날 객석의 율동으로 기어이 실현됐다.
가장 놀라운 풍경은 객석의 구성이었다. 처음 이석원을 보러 온 관객이 오랜 팬보다 많았다. 앳된 얼굴의 청년들이 '인생은 금물'과 '나를 잊었나요'를 눈물로 따라 부르는 장면은, 이석원의 멜로디와 노랫말이 특정 세대의 노스탤지어가 아니라 생의 어느 순간 반드시 마주쳐야만 하는 보편적 통과의례임을 방증한다.
"불러도 불러도 나오지 않는 노래를 이제 나는 너무도 부르고 싶어졌다." 새 에세이 '언젠가 이발관'(흐름출판 펴냄)에 적힌 그의 고백은 이날 무대의 완벽한 주석이다. 그리고 이 고백은 일회성 이벤트의 휘발되는 감정으로 끝나지 않았다. 공연 이틀 뒤인 20일, 이석원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저는 지금 노래가 너무 하고 싶고, 그런 의미에서라면 저의 지엠에프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적었다.
1994년 결성된 언니네이발관은 1집 '비둘기는 하늘의 쥐'(1996), 2집 '후일담'(1998), 3집 '꿈의 팝송'(2002), 4집 '순간을 믿어요'(2004), 5집 '가장보통의 존재'(2008)까지 희대의 명반을 내며 마니아층을 구축했다.
특히 섬세함과 예민함을 넘어 독하다는 이야기까지 듣는 감수성 짙은 이석원의 멜로디와 노랫말 그리고 그의 완벽성이 팀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한국어 가사를 가장 잘 쓴다는 평가를 받는 이석원은 에세이 '보통의 존재', 장편소설 '실내인간' 등의 베스트셀러를 펴낸 작가이기도 하다. 총 10여권의 책을 냈다.
이석원은 지난 2017년 6월 언니네 이발관 정규 6집 '홀로 있는 사람들'을 발표하고 같은 해 8월 은퇴를 선언했다. 당시 음악을 그만두는 이유로 "음악이 일이 돼 버린 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을 꼽았다. 그러다 무대 데뷔 30주년인 지난해부터 음감회 등을 통해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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