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현물 국채 약 2조달러 보유 추산…보험·연기금 중심 투자자 구성 변화
IMF "헤지펀드 총자산 13조달러"…차입 거래 급증에 은행까지 위험 확산 우려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글로벌 국채시장에서 헤지펀드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한 시장에서 발생한 충격이 다른 금융시장으로 번질 위험이 과거보다 높아졌다는 영국 중앙은행 고위 인사의 경고가 나왔다.
미국 경제매체 CNBC는 18일(현지시간)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의 사라 브리든 금융안정 담당 부총재가 지난 15일 태국 방콕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같이 진단했다고 보도했다. 인터뷰는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현장에서 이뤄졌다.
미국 국채시장은 헤지펀드의 영향력 확대를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 재무부 산하 금융연구국(OFR)이 지난 8월 19일 공개한 분석에 따르면 2025년 말 헤지펀드가 보유한 미국 현물 국채는 약 2조 달러로 추산됐다. 당시 시장성 미국 국채 잔액 28조9000억 달러의 약 7%로, 사상 최고 비중이다.
브리든 부총재는 "지난 몇 년 동안 세계 주요 국채시장의 투자자 구성이 달라졌다는 점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며 "과거처럼 보험회사나 연기금 같은 장기 투자자들이 중심이던 시장에 헤지펀드의 참여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헤지펀드는 가격 변화에 민감하고, 빌린 돈으로 투자하며, 국경을 넘나들며 거래한다"며 "이는 한 시장에서 발생한 충격이 다른 시장으로 퍼질 가능성이 과거보다 커졌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보험회사와 연기금은 장기적인 자금 운용을 위해 국채를 보유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헤지펀드는 가격 변동이나 자금 조달 비용에 따라 거래 규모를 빠르게 조절할 수 있다. 브리든 부총재가 우려하는 것은 이처럼 투자 성향이 다른 자금의 참여가 늘면서 국채시장의 불안이 다른 시장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헤지펀드의 전체 규모도 크게 늘었다. IMF가 최근 발표한 세계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헤지펀드의 부채 차감 전 총자산은 약 13조 달러로, 2013년의 약 세 배에 이른다.
IMF는 헤지펀드들이 평상시 국채 거래를 원활하게 하고 시장에서 적정 가격이 형성되는 데 기여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빌린 돈으로 투자 규모를 키우거나 여러 펀드가 비슷한 거래에 집중하면 시장이 흔들릴 때 오히려 충격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경고는 주요국 국채금리가 크게 오른 가운데 나왔다. 미국 10년물과 30년물 국채금리는 이달 초 각각 2002년 이후 최고 수준까지 상승했다. 국채 가격과 수익률은 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매도세가 강해져 가격이 떨어지면 수익률은 올라간다.
영국에서도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수십 년 만의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프랑스에서는 재정 전망에 대한 우려로 국채금리가 최근 몇 주 동안 가파르게 상승했다. 프랑스의 재정 불안이 유로존(유로화 사용국)의 국가채무 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당국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헤지펀드의 '베이시스 트레이드(basis trade)'라는 투자 방식이다. 실제 국채를 사들이는 동시에 같은 국채에 해당하는 선물계약을 매도해 현물과 선물의 가격 차이에서 수익을 얻으려는 차익거래다.
문제는 현물과 선물 사이의 가격 차이가 대체로 작다는 점이다. 헤지펀드들은 작은 가격 차이에서도 충분한 수익을 내기 위해 국채를 담보로 단기 자금을 빌리는 등 차입을 활용해 거래 규모를 키운다.
CNBC는 이런 거래는 자금 조달 비용이 갑자기 뛰거나 추가 담보를 요구받으면 위험해진다. 헤지펀드가 빌린 돈을 갚거나 담보를 마련하기 위해 보유 국채를 매도하고 선물 매도 계약을 되사는 방식으로 거래를 서둘러 정리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헤지펀드가 비슷한 투자 전략을 사용하다가 한꺼번에 거래를 정리하면 국채 매물이 집중되면서 가격 변동이 더욱 커질 수 있다. IMF는 이러한 거래 쏠림이 금융시장 불안을 증폭시키고 다른 시장으로 충격을 확산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위험은 헤지펀드와 거래하는 은행에도 미칠 수 있다. IMF는 헤지펀드에 자금을 빌려주고 거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의 프라임브로커리지 부문을 통해 금융 불안이 확산될 가능성을 경고했다. 국채시장에서 시작된 충격이 헤지펀드를 거쳐 은행과 다른 금융시장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yunghp@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