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만성적 적자구조 방치해 재정위기·사회혼란 겪어
스페인, EU 지원금 활용해 성장·재정안정 두마리 토끼잡아
韓, 반도체 호황 기회로 잠재성장률 반등, 재정건전화 나서야
[세종=뉴시스] 안호균 기자 =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프랑스에서 지난 주말 수십만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거리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았고,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최루탄과 물대포가 동원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 150명 가량이 다치고 시위대 1200여명이 체포됐습니다.
시민들을 분노하게 한 것은 정부의 긴축 정책이었습니다. 만성적인 재정 적자로 나라 살림살이에 위험 신호가 켜지자 프랑스 정부는 긴축 예산안을 편성했습니다. 이에 학생들은 정부의 긴축 정책이 교육 환경을 악화시키고 있다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고물가와 부실한 공공서비스에 분노한 노동자와 일반 시민들까지 시위에 가세했습니다.
문제는 프랑스의 재정 상황이 지출을 늘릴 만큼 여유롭지 않다는 점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점진적으로 나랏빚을 줄여온 다른 나라들과 달리 프랑스는 최근 부채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14일 발간한 '재정 모니터(Fiscal Monitor) 10월호에 따르면 프랑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반정부부채(D2) 비율은 지난해 115.5%에서 올해 118.5%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부채 비율은 내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상승해 2031년 123.6%에 달할 전망입니다.
프랑스의 재정 상황은 단기간에 개선되기 어려워 보입니다. 전체 예산에서 의무 지출 성격이 강한 보건·복지 지출은 32.6%에 달합니다. 특히 연금 지출이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저성장은 세수를 제약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경제성장률은 2022년 2.8%에서 2023년 1.6%, 2024년 1.1%, 2025년 0.9%로 점점 낮아지는 추세입니다. IMF는 프랑스의 올해 성장률이 0.4%에 그쳐 유로존 평균(1.1%)에 크게 못미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만성적인 적자 구조에는 프랑스 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습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는 지난 2017년 출범 후 부유세 폐지, 법인세 인하 등 과감한 감세 정책을 펴 왔지만, 지출을 통제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2023년 만 62세이던 퇴직연금 수령 연령을 64세로 높이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전국민적인 반발에 직면하면서 연금 개혁을 2028년 1월까지 중단했습니다. 프랑스의 올해 재정적자는 GDP의 5.4%에 달할 전망입니다.
재정이 부실화되자 시장은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투자자들이 프랑스 국채 매도에 나서면서 국채 10년물 금리는 최근 4.85%까지 상승했습니다. 2002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국채 금리가 오르면 이자 비용이 늘어나 재정 압박은 더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프랑스는 유럽 2위의 경제 대국이지만 성장, 지출, 세수 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뾰족한 수가 없어 사회·경제적 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유럽에서 프랑스와 같은 위기를 겪은 나라가 있습니다. 스페인은 지난 2010년 이후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남유럽 국가들과 함께 재정위기를 겪였습니다. 유로존의 구제금융을 받는 과정에서 고통스러운 경제 체질 개선 과정을 거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 때 '유럽의 문제아'라고 불렸던 스페인은 현재 유럽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경제 성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유럽 선진국 중 최상위권인 2.5%에 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고성장이 이어지면서 정부부채 비율은 2020년 119.2%에서 올해 100% 아래로 떨어지고 2031년에는 90%를 하회할 것으로 관측됩니다.
스페인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유럽연합(EU)에서 받은 약 1600억 유로(약 240조원)의 경제회복지원금을 활용해 경제 도약의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이 재원을 기업·공공행정의 디지털화, 에너지 전환, 통신망 확충 등에 투자한 것은 성장의 기반이 됐습니다. 또 팬데믹 종료 후 행운과도 같이 관광객이 폭증하면서 스페인의 성장률은 급등했습니다.
스페인은 이런 기회를 활용하면서 지출은 적절히 통제했습니다. EU의 지원금에는 '엄격한 경제 구조 개혁과 재정 건전성 확보'라는 조건이 걸려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스페인 정부는 조세·재정 개혁을 통해 부채 비율을 지속적으로 낮출 수 밖에 없었습니다.
중도좌파 정부인 페드로 산체스 정부는 기본소득이나 복지지출 확대에 대한 압박도 크게 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산체스 정부는 의회 내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고, 이런 스페인의 정치 구도가 정부 지출을 통제한 측면도 있습니다. 스페인은 프랑스 못지 않은 정치 불안을 겪고 있고, 관광객 급증으로 주택가격·임대료가 크게 오르면서 국민들의 불만도 상당한 편입니다. 하지만 스페인은 경제와 재정운용에 있어서만큼은 이제 '유럽의 모범생'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사례는 우리나라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EU의 지원금과 관광 특수가 스페인 경제 회복의 기반이 됐다면, 우리나라에는 반도체 호황이라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우리나라는 올해 5년 만에 3%대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수출 1조 달러와 국민소득 4만 달러 달성 가능성도 커졌습니다.
세수도 크게 늘어 재정 건전성도 개선될 전망입니다. IMF는 우리나라의 일반정부부채 비율이 52.4%에서 47.3%으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IMF가 지난 4월 한국의 정부부채비율 전망치를 54.4%로 제시했다가 반도체 호황으로 개선된 세수 여건을 반영해 8.3%p나 낮췄습니다. 올해 전망치는 선진국 평균(107.8%)은 물론 전 세계 평균(94.6%)에 비해서도 크게 훨씬 낮은 수준입니다.
하지만 재정 여건이 개선됐다고 안심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코로나 19 이후 부채 증가세를 통제하지 못했던 나라 중 하나입니다. 2020년 45.9%였던 정부부채비율은 지난해 52.4%까지 높아졌고, 올해와 내년에는 하락하지만 2028년부터는 다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나라의 절대적인 부채 비율은 낮은 편이지만 인구 고령화로 재정적자 구조는 빠르게 악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최근 금융시장이 프랑스에 경고를 보내고 있는 건 부채 수준보다는 만성적인 적자 구조이니까요.
반도체 호황의 영향은 일시적일 가능성이 큽니다. 올해와 내년 예상되는 초과세수는 200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데, 앞으로 다시 찾아오기 어려운 기회입니다. 정부는 이 재원을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는 계획입니다. 초과세수가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리고 재정의 지속가능성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활용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세쓸통' = '세상에 쓸모없는 통계는 없다'는 일념으로 통계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 알기 쉽게 풀어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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