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 넘어 서버 건물 직접 타격…신종 '하이브리드 공격' 현실로
우크라, 러 얀덱스 센터 3곳 연쇄 타격…은행·교통·결제 서비스 장애
중동 AWS 일부 데이터 복구 못 해…전시 시설 보호·정보 공개 기준 과제
국내 분산 넘어 해외 백업도 검토…데이터 통제권 확보가 관건
[서울=뉴시스]윤정민 기자 = 지난 11일 아침. 러시아 블라디미르주의 얀덱스 데이터센터 위로 우크라이나 군용 드론이 돌진했다. 둔탁한 폭음과 함께 검은 연기가 솟구쳤다. 건물 내부의 최첨단 서버 수천대가 일시에 파괴됐다. 나흘 사이 사소보, 칼루가에 이어 세 번째 데이터센터 폭격이다.
공격 결과는 즉각적이고 치명적이었다. '러시아의 구글'이라 불리는 얀덱스의 데이터센터 설비가 손상되면서 간편결제 서비스 '얀덱스 페이'가 먹통이 됐다.
여파는 얀덱스 한 회사로 끝나지 않았다. 공격 이후 러시아 국영철도와 디지털 은행 T뱅크, 이동통신사 메가폰 등의 온라인 서비스에도 장애가 발생했다.
이웃 나라 카자흐스탄에서는 택시 호출과 음식·식자재 주문이 원활하지 않았고 우즈베키스탄에서도 얀덱스 앱 오류 신고가 이어졌다. 키보드로 시스템에 침투하는 해킹을 넘어 물리적 거점을 직접 부숴 국가 기반시설까지 연쇄 마비시킬 수 있는 신종 '하이브리드' 공격이 현실화된 것이다.
◆사이버 보안 아무리 강해도… 데이터센터 파괴되면 '끝장'
금융과 제조, 소비 등 사회 곳곳의 시스템이 인터넷으로 연결돼 있다. 방화벽이나 암호화 같은 보안 시스템을 아무리 잘 갖췄어도 데이터를 저장·처리하는 건물 자체가 파괴되면 서비스가 멈출 수 있다. 대체 시설로 서비스를 옮기지 못하면 금융·교통·행정서비스가 한꺼번에 마비될 수 있는 셈이다.
이에 데이터센터와 해저 광케이블 등 디지털 기반 시설이 공격 표적이 되거나 전쟁 여파로 손상될 위험도 커지고 있다.
지난 3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당시 아마존웹서비스(AWS)의 아랍에미리트(UAE) 데이터센터 두 곳이 드론에 직접 타격받았다. 바레인에서도 인근 드론 공격으로 데이터센터가 손상됐다.
AWS는 지난달 일부 데이터센터 구역에만 저장됐던 고객 데이터에 대한 접근을 영구 복구할 수 없다고 고백했다. 여러 구역에 걸친 물리적 피해가 시스템 설계상 감당 범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2024년 홍해에서는 후티 반군의 공격을 받은 화물선의 닻이 해저 케이블을 끊은 사고가 발생했다. 홍해 경유 인터넷 트래픽 약 25%가 영향을 받았고 일부 지역에서는 접속 속도가 느려졌다. 국제 데이터 통신의 99% 이상을 담당하는 해저 케이블의 취약성을 보여준 사례다.
◆화재 한 번에 멈췄던 대한민국…안전지대 아니다
우리나라 역시 안전지대가 아니다. 물리적 공격은 아니었지만 특정 거점 한 곳의 장애가 여러 서비스를 멈춰 세운 경험이 있다.
2022년 SK C&C(현 SK AX)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톡과 카카오T 택시 호출, 카카오페이 결제 등에 장애가 발생했다. 지난해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때는 정부24 등 행정서비스와 민원서류 온라인 발급이 중단됐다.
정부는 '집적정보 통신시설 보호지침'에 따라 출입 통제와 도난·테러에 대한 보호조치를 규정하고 일정 규모 이상 사업자의 재난관리계획 이행 여부도 점검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행 보호체계가 드론의 정밀 타격이나 연쇄 공격까지 막아내기엔 한계가 있다고 진단한다.
이만종 한국테러학회장(호원대 명예교수)은 "모든 공격을 막겠다는 방호 위주 정책에서, 공격받아도 서비스가 멈추지 않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며 "백업 센터를 멀리 떨어진 곳에 두고 실제 끊겼을 때 자동 전환되는지 반복 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 회장은 "시설이 멈췄을 때 국가 기능과 국민 생활에 얼마나 큰 피해가 생기는지가 핵심"이라며 "핵심 서비스를 담당하는 민간 데이터센터는 국가 핵심기반시설에 준해 정부·군·경·민간의 공동 대응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명예교수도 "데이터센터들이 실시간으로 상호 백업하고 한 곳이 피해를 입으면 즉시 제2·제3의 센터로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사고 예방과 함께 신속하고 완전하게 복구할 수 있는 운영 역량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데이터센터 소재지나 세부적인 운용계획 등에 대한 정보 공개 범위 여부도 점검 대상이다. 가령, 글로벌 기업 AWS는 개별 데이터센터의 구체적인 위치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반면, 국내의 경우 민간 기업들은 물론 공공 기관들도 데이터센터 운용 계획 등을 적극 홍보에 활용하고 있다.
클라우드업계 한 관계자는 "공공·방산·국방 기관 등의 시설은 보통 외부 노출이 통제되지만 민간 영역은 노출에 관한 정책이나 관행이 별도로 정해져 있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만종 회장은 전력·통신·냉각시설 위치와 핵심 데이터 종류, 백업 방식 등 공격에 악용될 수 있는 정보는 철저히 보호해야 한다며 "홍보 가능한 정보와 안보상 보호해야 할 정보를 구분하는 공통 기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임종인 교수는 국내 거점이 동시에 피해를 볼 가능성에 대비해 해외 백업 체계 도입을 제안했다. 금융의 '통화 스와프'처럼 한국과 일본이 데이터를 상호 백업하거나 글로벌 클라우드 망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임 교수는 "물리적으로 데이터가 어디 있느냐보다 통제권을 누가 갖느냐가 중요하다"며 "강력한 암호화와 접근 통제로 통제권을 유지하면서 해외 백업 망을 갖추는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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