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데스, 이틀간 절반 갈아치운 부락페 세트리스트…메탈은 끝내 살아있었네

기사등록 2026/10/05 15:22:24

부산록페 사상 초유의 이틀 연속 헤드라이너

첫날 '구원'에서 둘째 날 '화해'로 횡단

3일 공연서 '메커닉스'서 '라이드 더 라이트닝'으로

메탈리카와의 오랜 상처 품어 안으며 닫아건 40년의 원

손가락 희소 질환 딛고 40년 만의 '빌보드 200' 1위 증명

A7X 배려·국내 후배 록커들 헌사

박제된 '명성' 아닌 부딪치며 증명한 '인격'

삼락에 새긴 노병의 찬란한 마침표

[콜럼버스(오하이오)=AP/뉴시스] 메가데스(Megadeth) 데이브 머스테인(Dave Mustaine)
[부산=뉴시스]이재훈 기자 = 스래시 메탈은 주로 분노와 파멸의 언어로 쓰인 음악이었지만, 그 종착역에서 마주한 풍경은 뜻밖에도 숭고한 구원과 화해였다.

지난 2일과 3일 밤, 부산 사상구 삼락생태공원에서 열린 '2026 부산국제록페스티벌'(부산국제락페스티벌·부락페) 삼락스테이지를 이틀 연속 집어삼킨 미국 전설의 메탈 밴드 '메가데스(Megadeth)'의 무대는 국내 록 페스티벌 역사에 유례가 없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미국 헤비메탈 밴드 '어벤지드 세븐폴드'(A7X)의 갑작스러운 결함으로 긴급 등판했던 2일이 예기치 못한 위기를 수습한 '구원의 에티켓'이었다면, 본래 약속돼 있던 3일의 무대는 자신의 40년 음악 인생을 남김없이 털어 넣고 상처와 악수를 나누는 '거장의 제전'이었다.

◆12곡 중 6곡만 남겼다…'보편적 앤솔러지'에서 '원초적 광폭 주행'으로

이틀 연속 헤드라이너라는 초유의 일정 속에서 메가데스가 보여준 것은 프로페셔널리즘의 극한이었다. 보통 페스티벌에서 연일 무대에 설 경우 세트리스트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관례지만, 메가데스는 2일 공연의 12곡 중 정확히 절반인 6곡만 남기고 나머지를 완전히 갈아치웠다.

양일간 겹친 곡은 최신 17집 타이틀 격인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를 비롯해 '스웨팅 불리츠(Sweating Bullets)', '토네이도 오브 솔스(Tornado of Souls)', '심포니 오브 디스트럭션(Symphony of Destruction)', '피스 셀스(Peace Sells)', '홀리 워즈(Holy Wars)' 등 밴드를 지탱해 온 불멸의 앤섬 6곡뿐이었다.

접근법 자체가 달랐다. 2일 공연이 19년 만에 한국을 찾은 대중과 축제의 관객 전체를 품어 안는 유려한 요약본('앤그리 어게인(Angry Again)', '트러스트(Trust)' 등)이었다면, 3일 무대는 골수 메탈헤드들의 폐부를 찌르는 서슬 퍼런 딥 트랙(Deep track)들의 향연이었다.

3일의 오프닝은 신곡이 아닌 1986년작 2집의 날 선 명곡 '데블스 아일랜드(Devil's Island)'와 사악한 리프의 '더 컨저링(The Conjuring)'이었다. 이어 1990년 메탈사의 금자탑 '러스트 인 피스(Rust in Peace)'에서도 가장 극악의 스피드와 정교함을 요구하는 '테이크 노 프리즈너스(Take No Prisoners)'와 '포이즌 워즈 더 큐어(Poison Was the Cure)'가 쉴 새 없이 몰아쳤다.

손바닥 힘줄이 굳어가는 희소 질환(뒤퓌트랑 구축증)을 앓고 있는 65세의 데이브 머스테인이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비웃기라도 하듯 프렛 위로 손가락을 던지는 광경은, 메탈이 기교의 과시가 아니라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실존의 투쟁'임을 웅변했다.
[부산=뉴시스] 이재훈 기자 = 2일 오후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에서 19년 만에 내한공연하는 메가데스. 2026.10.02. realpaper7@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메커닉스'에서 '라이드 더 라이트닝'으로…마침내 원을 닫다

3일 공연의 백미는 중후반부에 터져 나온 두 곡의 연동이었다.

1983년 메탈리카에서 쫓겨난 직후 "내 리프를 되찾겠다"며 악과 깡으로 속도를 배가해 발표했던 복수의 곡 '메커닉스(Mechanix)'가 끝나자마자, 머스테인은 자신이 초기 메탈리카 시절 공동 작곡했던 명곡 '라이드 더 라이트닝(Ride the Lightning)'을 내달렸다.

젊은 날의 지독한 결핍과 원망으로 벼려냈던 칼날 뒤에, 청춘의 젖줄이었던 옛 동료들을 향한 온전한 존경과 헌사를 이어 붙인 것이다. 40여 년간 자신을 괴롭혀온 상처를 부정하지 않고 마침내 품어 안으며 거대한 원을 닫는 순간이었다. 분노로 시작했던 청춘의 연대기가 존중과 화해로 매듭지어지는 광경은 현장의 모든 관객에게 형언할 수 없는 묵직한 카타르시스를 안겼다.

앙코르 '홀리 워즈'가 끝나고 암전된 무대 뒤편으로 울려 퍼진 시드 비셔스 버전의 '마이 웨이(My Way)'는 이 불굴의 반골이 세상에 건네는 가장 그다운 마침표였다.

◆"메탈은 살아있다"…40년 만의 빌보드 200 1위, 그리고 '인생'

머스테인은 3일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고 포효했다. "우리의 새 앨범이 나왔고 미국에서 1위를 차지했는데, 그건 정말 끝내주는 일이었어요. 메탈이 살아있으니까요."

이는 단순한 자화자찬이 아니었다. 실제로 지난 2월 메가데스의 마지막 정규 앨범으로 예고된 셀프 타이틀 17집 '메가데스'는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 1위에 올랐다. 1986년 차트에 처음 입성한 이래 무려 23장의 앨범을 차트에 올렸던 메가데스가 40년 만에 거머쥔 생애 첫 1위였다. 1992년 '카운트다운 투 익스팅션'이 기록했던 2위의 벽을 노년의 문턱에서 마침내 넘어선 것이다.
[서울=뉴시스] 메가데스 (사진 = 부산국제록페스티벌 제공) 2026.10.0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헤비메탈이 주류 음악계의 변방으로 밀려났다는 시대착오적 진단을 비웃듯, 그는 자신이 지켜온 철성과 쇠맛의 정공법이 여전히 유효함을 성적으로, 그리고 라이브의 에너지로 입증했다. 머스테인에게 메탈은 한때 유행했던 장르가 아니라, 가난과 암 투병, 신체 마비와 배신 속에서도 그를 숨 쉬게 했던 '인생 그 자체'였다.

◆"메가데스 만세"…후배들의 경배와 삼락의 서클핏

거장의 마지막 행보에 국내 뮤지션들의 헌사도 잇따랐다.

밴드 '페퍼톤스' 신재평의 "메가데스 만세!" 절규에 이어, 그룹 사운드 '잔나비'의 보컬 최정훈은 과거 태권도 유단자이자 세계태권도연맹 홍보대사로 위촉되기도 했던 머스테인의 한국 인연을 기리듯 "'사랑해요 메가데스'가 적힌 도복을 입고 '작전명 청춘'을 부르는 잔나비를 사랑해달라"며 애정 어린 오마주를 보냈다.

신예 밴드 '고고학'은 현장에서 메가데스의 곡을 커버했고, '드래곤포니'는 리허설 도중 메가데스의 리프를 깜짝 연주하며 선배를 향한 경의를 표했다. 메가데스 멤버들처럼 장발을 휘날리는 밴드 '엑스디너리 히어로즈'의 기타 준한 등 젊은 로커들도 객석과 백스테이지에서 전설의 손끝을 숨죽여 응시했다.

객석의 풍경 또한 하나의 현대 예술이었다. 대형 스크린에는 음악에 맞춰 온몸으로 야광봉을 돌리는 일본 서브컬처 문화인 '오타게(ヲタ芸)'를 시전하는 관객의 모습이 잡혀 유쾌한 화제를 낳았다. 장르와 국경, 서브컬처의 경계마저 허물어버리는 거대한 서클핏의 난장이 낙동강변을 수놓았다.

한편 갑작스러운 질환으로 무대에 서지 못했던 어벤지드 세븐폴드의 보컬 엠 섀도우스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팬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그는 "투어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몸이 많이 안 좋아졌고, 일주일 동안 기침과 스테로이드 치료가 이어져 의사로부터 성대 회복을 위해 쉬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며 "꼭 다시 찾아 보답하겠다. 저희 대신 무대에 서 준 메가데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머스테인은 2일 공연 도중 "원래는 어벤지드 세븐폴드가 연주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엠 섀도우스)는 제 친구인데, 지금 아픕니다. 아주, 정말 많이 아파요. 그래서 저에게 밴드 멤버들을 데리고 와서 오늘 밤 여러분을 위해 대신 연주해 줄 수 있겠냐고 부탁하더군요. 그러니 오늘 이 무대는 여러분만큼이나 저에게도 갑작스러운 서프라이즈입니다. 그들은 한국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시간의 풍화 작용 앞에서도 자신의 흉터를 훈장처럼 내보이며 무대 위에서 산화한 메가데스. 이들이 삼락에 남긴 이틀간의 궤적은, 진정한 위대함이란 완벽하게 박제된 과거의 '명성'이 아니라 한계 속에서도 끝내 부딪히며 증명해 내는 '인격'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보여줬다. 메탈은 끝내 살아있었고, 그들의 음악은 인생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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