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하루 972만배럴 다시 흐른다…'이란 해협 카드' 약해지나

기사등록 2026/10/01 10:46:04

중동 원유수출 9월 1633만배럴…전쟁 전 수준의 80%에 조금 못 미쳐

유가·보험료 여전히 높고 선박 공격도 계속…美·이란 경제 부담 속 협상 진행

[반다르아바스=AP/뉴시스] 6일(현지 시간) 이란 반다르아바스 앞 호르무즈해협에 소형 유조선이 정박해 있는 가운데 모터보트 한 척이 지나가고 있다. 2026.09.06.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이란이 미국과의 협상에서 지렛대로 활용해 온 호르무즈 해협의 원유 운송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이란의 협상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유가와 유조선 보험료가 여전히 높고 해협 내 공격도 이어져 이란의 ‘호르무즈 카드’가 사라졌다고 보기는 이르다는 평가다.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는 30일(현지시간) 원자재 분석업체 케이플러(Kpler) 등의 자료를 토대로 중동 원유 수출이 크게 회복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미국과 이란의 협상 구도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Kpler에 따르면 중동 지역의 9월 원유 수출량은 하루 1632만8000배럴로 추산됐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시작된 2월 말 이후 가장 많다. 전쟁 직전인 2월 하루 1951만3000배럴보다는 약 320만배럴 적어 전쟁 전 수준의 80%에 조금 못 미친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원유는 9월 하루 약 971만9000배럴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수출은 8월 하루 244만6000배럴에서 9월 약 540만배럴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끈 채 이동한 선박은 집계에서 빠져 실제 운송량은 더 많을 수 있다.

전쟁 전에는 하루 약 120~140척의 선박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났고 이 가운데 절반가량이 유조선이었다. 당시 이 항로를 통해 하루 약 2000만배럴의 원유가 이동했다. 교전이 격화하고 이란이 사실상 해협을 차단했을 때는 통과 유조선이 하루 2척까지 줄었다.

[워싱턴=AP/뉴시스]지난 24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환영행사에서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6.09.26.
이 같은 흐름 회복은 호르무즈 해협을 미국의 군사·경제 압박에 맞서는 지렛대로 활용해 온 이란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 미국의 해상 봉쇄로 이란의 원유 수출이 제약된 상황에서도 다른 중동 산유국의 원유가 계속 대규모로 이동한다면 이란의 해협 통제력이 협상에서 갖는 효과가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은 해협에 대한 통제력이 약해졌다는 평가를 부인한다. 호세인 모헤비 이란 혁명수비대 대변인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여전히 “군사적 충돌”이 진행 중이라며 이란 측이 선박 통행을 저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영국 해사무역기구(UKMTO)도 29일 원유 운반선을 포함한 선박 3척이 미확인 발사체에 맞았다고 밝혔다.

국제유가 역시 위험이 완전히 걷히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브렌트유는 29일 배럴당 102.59달러로 2.6% 떨어졌지만 9월 전체로는 약 13% 오른 수준이었다. 시장은 중동 원유 수출 회복을 가격에 반영하면서도 이 흐름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경계하고 있다.

유조선 보험료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수전나 스트리터 웰스클럽 수석투자전략가는 원유 운송이 늘었지만 지역 내 위험 탓에 보험료가 높게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디젤과 휘발유 등 정제유 공급도 여전히 제약을 받고 있다. 각국이 공급 충격을 막기 위해 전략비축유를 많이 사용한 만큼 다시 공급 차질이 발생할 경우 이를 흡수할 여력도 줄었다는 분석이다.

[테헤란=AP/뉴시스] 이란 시민들이 테헤란 거리를 걷고 있다.. 2026.08.25 *재판매 및 DB 금지
반면 이란 경제에 가해지는 압박은 커지고 있다. 이란 통계센터에 따르면 3월21일부터 6월20일까지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0.1% 감소했고, 석유·가스 부문은 26.4% 줄었다.

물가와 통화가치도 악화했다. 9월 초 기준 12개월 평균 물가상승률은 69.9%에 달했고 리알화 가치는 한때 달러당 220만리알을 넘어섰다. 미국의 봉쇄로 원유와 석유화학제품 수출이 제약되면서 달러 수입도 줄고 있다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모하마드 에슬라미 테헤란대 연구원은 이란이 군사적 충돌과 함께 “경제전쟁”을 겪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에슬라미 연구원은 환율이 중요한 지표이기는 하지만 환율만으로 이란 경제의 어려움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정치분석가이자 ‘이란 팟캐스트’ 진행자인 네가르 모르타자비도 경제 봉쇄가 이란에 “엄청난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란이 상당한 경제적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미국의 조건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테헤란=신화/뉴시스] 7일(현지 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시민들이 지난 2월 미국·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숨진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를 추모하고, 그 직을 승계한 아야톨라 모즈타바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고 있다. 2026.05.08.
경제적 부담은 미국에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디젤 평균 가격은 9월 갤런당 6.53달러까지 올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유가는 운송·농업 등으로 부담을 확산시키며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 정치권의 쟁점이 됐고, 트럼프 행정부는 디젤 수출 제한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디젤 가격 급등과 수출 제한 논의는 미국 언론 보도로도 확인된다.

에너지가격 상승은 미국의 물가 압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알자지라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높은 에너지 비용이 물가를 밀어 올리며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결정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연준은 9월16일 기준금리 목표 범위를 3.75~4.00%로 0.25%포인트 인상하면서 물가가 여전히 높고 지정학적 상황으로 불확실성이 크다고 밝혔다. 2023년 7월 이후 첫 금리 인상이었다.

이란과 미국은 이런 군사·경제적 압박 속에서도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지난주 유엔총회를 계기로 양측은 약 3시간 동안 간접 협상을 진행했다. 스티브 위트코프와 재러드 쿠슈너 미국 측 특사와 압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도 협상 과정에서 접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이를 “매우 좋았다”, “매우 생산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란은 미국이 해상 봉쇄를 끝내고 제재를 완화하며 동결된 이란 자금을 풀어주는 등의 조건을 받아들이면 7일 안에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열고 정상적인 선박 통행을 복원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이 제안을 거부했다. 이란 측은 이후 카타르 등의 중재를 통해 미국의 공식 답변을 전달받았다고 밝혔으며 AP도 30일 이를 보도했다.

알자지라가 인용한 협상 관계자는 현재 핵심 이견이 의에 들어갈 조치 자체보다 어느 쪽이 먼저 무엇을 이행할지를 둘러싼 순서에 있다고 전했다. 모르타자비 분석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타협 의사를 이란이 약해졌다는 신호로 오판할 경우 오히려 전쟁이 길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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