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2500GW 접속 지연…한국도 호남권 중심 병목
송전망 확충만으론 한계…대기열 정비·망 효율화 시급
[전남광주=뉴시스]이창우 기자 = 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데이터센터 등 전력 생산·소비 시설이 빠르게 늘면서 전력망에 제때 연결하지 못하는 '계통 접속 병목'이 세계적인 전력산업 현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발전소나 대규모 전력수요 시설을 건설할 수 있는 물리적 여건과 실제 전기를 흘려보낼 전력망 확충 속도 사이에 격차가 커지면서다.
이에 따라 전력망 문제도 단순한 송전선 부족을 넘어 '누가, 언제, 어떤 조건으로 계통에 접속할 것인가'라는 제도와 운영의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전력망보다 빨라진는 발전·수요…글로벌 2500GW 접속 지연
27일 한국전력공사 경영연구원이 국제에너지기구(IEA)의 'Electricity 2026'을 토대로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 추진 가능성이 있는 사업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약 2500GW(기가와트) 규모의 계통 접속이 지연되고 있다.
이 가운데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가 약 1700GW로 전체의 70%가량을 차지했다. 배터리 저장장치도 600GW 이상, 데이터센터는 150GW 이상이 계통 접속을 기다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목의 배경에는 전력망 기자재 공급 부족과 함께 발전·수요 시설과 전력망의 건설 기간 차이가 자리 잡고 있다.
전력망은 준공까지 5~15년이 걸리는 반면 재생에너지·ESS·데이터센터 등의 접속 설비는 1~5년이면 구축할 수 있어서 전력망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접속 수요가 발생한다.
◆국내 호남권 '병목' 현실화…발전소 있어도 전기는 못 보내
한국도 이 같은 구조적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특히 재생에너지 발전설비가 빠르게 늘어난 호남권에서는 발전소를 건설하고도 계통 여유가 부족해 생산한 전력을 제때 송전하지 못하는 문제가 현실화하고 있다.
발전사업자가 태양광·풍력 등 발전설비를 갖추더라도 이를 받아줄 송전망이 제때 확충되지 않으면 생산한 전력을 계통에 온전히 흘려보내기 어렵다.
발전설비가 들어서는 속도와 전력망 확충 속도의 격차가 커질수록 신규 발전사업자의 접속 대기뿐 아니라 기존 재생에너지 발전설비의 출력 제어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부도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발전설비와 송전망 확충 사이의 시간 차이를 주요 계통 문제로 지적했다.
태양광 발전소 건설에는 1~3년이 걸리는 반면 345㎸(킬로볼트) 송전선 건설에는 9~13년이 필요해 발전설비가 전력망보다 먼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호남권의 사례는 국내 전력망 문제의 초점이 '발전설비를 얼마나 더 설치할 수 있느냐'에서 '생산한 전력을 언제, 어디까지 계통에 연결해 보낼 수 있느냐'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송전망 확충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만큼 그사이 허수사업자 등 접속 대기열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기존 계통의 여유 용량을 활용하는 것이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선착순 접속의 한계…허수 사업자 전력망 점유 걸러내야
전력망을 새로 건설하는 것만으로는 현재의 병목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사업 추진 가능성이 낮은 사업자가 접속 신청을 해 순번을 확보하면서 전력망 용량을 선점하는 이른바 '가상 포화'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전력시장에서는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계통 접속 대기열을 정비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미국 중서부 전력시장을 운영하는 기관인 MISO는 부지 확보와 자금 마련 등 주요 사업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 사업을 대기열에서 철회시키거나 보증금을 몰수하는 방식으로 접속 신청을 관리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한국전력이 2024년 4월 이후 지연·허수 사업 정리를 통해 226개 사업자로부터 약 9.03GW의 계통 용량을 회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호남권에서 회수한 용량은 4.24GW로 전체의 약 47%를 차지했다.
발전원별로는 해상풍력이 3.33GW로 가장 많았고 육상풍력 2.20GW, 연료전지 1.83GW, 태양광 1.26GW 순이었다.
이처럼 실제 사업 추진 가능성이 낮은 접속 신청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기존 전력망에서 활용할 수 있는 여유 용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다.
◆기존 송전망 수용 능력 높일 다양한 기술 도입 필요
신규 송전선로 건설과 함께 기존 전력망에서 더 많은 용량을 끌어내는 방안도 병행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동적 송전용량 산정, 첨단 조류제어, 고온저이완도체(HTLS) 전선 교체, 전압 승압 등을 적용하면 기존 설비의 전력 수송 능력을 높일 수 있다.
특히 HTLS 전선은 기존 송전선보다 높은 온도에서도 처짐이 적어 같은 송전선로에서 더 많은 전력을 수송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보고서는 이런 기술을 활용하면 전 세계적으로 450~700GW의 추가 계통 용량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동적 송전용량 산정은 1~2년 안에 적용해 선로 용량을 20~30% 높일 수 있고, 전선 교체는 3~4년의 기간으로 50~100%, 전압 승압은 4~7년으로 100~200%의 용량 증가가 가능하다고 제시했다.
다만 이들 기술이 신규 전력망 건설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송전망 증설이 완료되기까지 발생하는 병목을 완화하면서 기존 설비의 활용도를 높이는 과도기적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게 보고서의 분석이다.
◆한국의 과제…'더 짓기'와 '더 효율적으로 쓰기' 병행
국내 전력망 병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송전망을 얼마나 빨리 건설할 것인지와 함께 이미 확보한 계통 용량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등을 통한 건설 기간 단축과 함께 실제 사업 가능성이 낮은 접속 신청을 걸러내고 계통 상황에 따라 출력 제어를 수용하는 조건부 접속을 확대하는 방식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전력망 병목 문제는 송전망을 새로 건설하는 '확충'과 기존 전력망을 최대한 활용하는 '효율화'를 동시에 추진해야 풀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발전설비와 전력수요가 전력망보다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는 망 확충 속도뿐 아니라 접속 대기열과 계통 이용 방식 자체를 개선하고 지역별 여건에 맞는 전력망 운영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새로운 과제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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